내일 뭐 해먹지?

내일 뭐 해먹지?

아마 모든 사람들이 매일 하는 고민일 것이다. 삼시세끼 누군가가 해주는 밥을 먹거나 먹을 것이 모자라서 메뉴의 고민도 사치일 수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선 말이다.

네덜란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은 아침과 점심을 회사에서 먹었고 퇴근 후 저녁은 주로 아내가 해주었다. 코로나19로 만 1년 동안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은 패턴이 조금 달라졌다. 아침은 주로 씨리얼 혹은 샌드위치, 점심과 저녁은 아내와 내가 요리를 했지만 아내가 좀 더 많이 한 편이었다. 이 패턴이 확 바뀐 계기는 둘째의 출산이었다.

작년 11월 30일 둘째가 태어났다. 상상 가능하겠지만 신생아는 지속적인 케어가 필요하고 모유를 먹는다. 끊임없이 우는 아이를 달래다보면 부모는 금방 지친다. 특히 아기와 계속 붙어있는 엄마는 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지치기 마련이다. 엄마(부모님) 찬스를 쓸 수 없는 해외에 있는데다 배달 음식이나 외식도 비싸기 때문에 나는 집의 단독 주방장이 되었다.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잘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6개월 동안 많이 늘었다) 그렇기에 요리를 해야 하는 건 큰 부담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저녁 요리를 준비하는 오후 5시 – 6시 시간을 업무(오전 9시 – 오후 5시)의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으로 활용하였다. 주방에서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요리를 하며 맥주 한 병씩 마시는 그 순간은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가끔씩 실패하기도 했지만 유투브에서 봐왔던 여러가지 요리를 시도해보는 것도 큰 재미였다. 하지만 3-4주 정도 지난 후 부터는 매일 새로운 요리를 내놓기 힘들어졌다. 흔히 말하는 ‘레파토리가 떨어졌다’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일 뭐 해먹지?

나는 음식을 먼저 생각하고 요리를 하는 편이 아닌, 있는 재료를 보고 음식을 구상해서 요리를 하는 편이다. 이에 하루에도 몇 번씩 냉장고를 열고 닫을 때 냉장고 내의 재고를 스캔하고 그걸 기반으로 오늘 해 먹을 요리를 생각했다. 물론 어떤 때는 먹고 싶은 메뉴를 기반으로 장을 봐와서 요리를 해먹기도 한다. 어떤 방식이든 ‘메뉴’를 정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오늘/내일 뭐 해먹지?’라는 질문이 이렇게 힘든 것임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 요리하던 때는 하지 않던 고민이었다. 심지어 밤에 조깅을 하며 비즈니스 팟캐스트를 듣는 와중에도 문득문득 ‘내일 뭐 해먹지?’라는 고민을 무의식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직업병 때문일까? 이런 고민을 해결하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가지 방안을 고민해봤다.

우선 요리도 결국 냉장고에 있는 재료(재고)를 기반으로 요리(공급)를 하는 것이기에, 스트레드시트에 주요 레시피의 기본 재료들을 표기해놓고, 재고(냉장고 내에 있는 재료) 상태에 따라 메뉴를 결정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봤다. 예를 들어, 냉장고에 당근, 버섯이 있고 양파도 있는 상태(기본 재료)에 스파게티면(탄수화물)이 꽤 많이 남아있는 상태면 채소와 치킨스톡을 사용해 육수를 낸 후 우유를 추가해서 간단한 크림 스파게티를 만들 수 있다. 지금 재고가 있는 당근, 버섯, 양파, 스파게티면과 같은 재료들을 ‘O'(요리에 필요한 재료라는 뜻) 해놓은 레시피만 스프레드시트에서 찾아서 요리를 하면 된다.

하지만 이 방식의 단점이라면 ‘수요(먹고 싶은 요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며, 이에 따라 있는 재료로만 요리를 하게 되어 메뉴가 단조로워 진다. (그래서 고객님의 항의가 있었다) 그래서 ‘수요’ 또한 중요한 요인에 넣기로 하였다. 그렇다. 그전까진 주방장 마음대로 메뉴를 정했다는 얘기다.

내일 뭐 해먹지?

수요 파악이라고 해봤자 1) 아내가 먹고 싶은 것, 2) 첫째 아이가 먹고 싶은 것, 3) 내가 먹고 싶은 것 셋 중의 하나이다. 앞으로 2-3일간의 수요를 파악해서 재고 공급(장 보기)을 하고 그걸 기반으로 요리를 하는 패턴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먹고 싶은 거 있어?’라고 물어봤자 생각보다 작은 풀에서 답이 나온다. 며칠, 몇 주 지나면 그 메뉴가 그 메뉴라는 것이다. 다시 그 질문으로 돌아오게 됐다.

내일 뭐 해먹지?

유투브에서 더 다양한 요리 채널을 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레시피가 있으면 저장해놓고 필요한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백종원 아저씨, 에드워드권 아저씨 채널은 진리이고, 고든램지, 이탈리아 할아버지, 중화요리 셰프분들의 유투브 채널을 섭렵하며 다양한 요리들을 알아보았다. (지금도 내 유투브 추천의 1/3은 요리, 1/3은 농구, 나머지 1/3은 정치 및 시사 관련 컨텐츠다) 이후 메뉴에 대한 고민을 좀 덜 하게 되었다. 요리 동영상을 계속 보면서 ‘패턴’에 대해 익히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요리들이 다 달라보이지만 결국 기본 베이스는 비슷하다. 그 베이스를 알면 그걸 기반으로 더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나는 (1) 냉장고의 재고, (2) 고객(아내, 첫째 아이)의 요구, (3) 유투브에서 배운 신메뉴를 머리 속에서 프로세싱하여 다음 며칠 간의 메뉴를 생각해 낸다. 그리고 ‘퓨전 요리’를 나름대로 연구해서 시도해 보기도 한다. 나만의 레시피인 퓨전 요리는 실패율(고객의 클레임 기반)이 조금 더 높아지긴 하지만 매일 똑같은 음식 먹는 것을 싫어하고 comfort zone을 벗어나는 것을 즐기는 나에겐 좋은 동기부여 수단이다.

그럼 이제 문제가 해결됐을까? ‘내일 뭐 해먹지?’는 이제 답하기 쉬운 질문일까?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처럼 보이는 단독 주방장 체제 — 둘째 출산 후 백일이 지나면서 아내도 가끔씩 요리를 하기 시작했지만 — 이지만, 여전히 “내일 뭐 해먹지?”는 쉽게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수요의 예측’이란 게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내일 삼계탕이 먹고 싶다가도 막상 내일이 되면 자장면이 먹고 싶은 게 우리의 마음이다. 예측한 수요가 그대로 유지되기 힘들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아무리 내가 할 수 있는 요리의 풀이 넓어졌다고 하지만, 나는 족발이나 돼지국밥 같이 재료를 푸욱 끓여야 하는 요리나, 발효 및 오브닝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제빵제과도 기피하는 편이다. 재택근무가 끝나는 5시부터 시작해서 1시간 내에 요리를 마쳐야, 저녁을 일찍 먹고 아이를 8시에 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요리의 수에 제약이 있다. 요리의 수에 제약이 있는 상태에서 ‘맨날 먹는 요리’를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기에 여전히 ‘내일 뭐 해먹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자동화하기 힘든 ‘인간적인’ 영역으로 남아 있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4개월 동안 이런 생활을 했다. 요리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솔직히 피곤한 일과 후에는 하기 싫을 때도 있다.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 밥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아직 4개월 밖에 안되었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느낀 게 있다면 ‘삼시세끼 밥 해주는 것’만 해도 상당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주말에는 아침, 점심, 저녁을 내가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한 아침을 만들어 같이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책을 조금 읽다가, 첫째랑 놀다보면 점심을 해야 한다. 점심을 만들어 먹고 설겆이를 하고 조금 쉬다가 아이랑 밖에서 놀다 돌아오면 저녁을 해야 할 시간이다. 저녁을 만들어 먹고 치우고 씻고 아이를 재우고 저녁 8시가 넘어가면 그제서야 온전한 내 시간이다. 나는 4개월 밖에 안했지만 매일이 이런 패턴인 분들도 많을 것이다. 쉽지 않을 것 같다. 꼭 우리네 어머님들이나 주부를 위한 찬가는 아니다. 꼭 여성들만 그럴 것이라는 것도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성별을 떠나 그러한 상황에 있고 그럼에도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계신 모든 분들에 대한 존경이다. 내가 책을 출판하고나서 ‘책이 재미가 있든 없든 책을 출판까지 해낸 모든 작가들은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결이다.

생각해보니 한 번도 아내에게 (아내가 요리를 주로 할 무렵) ‘나 XXX 먹고 싶어. 해줄 수 있어?’ 라고 말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내가 더 부담감을 가질 것 같았고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마음 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내가 요리를 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에 ‘아무거나’라는 대답보다는 먹고 싶은 메뉴를 확실히 얘기하는 게 부담을 덜 주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뜬금없지만 이것도 4개월 간의 ‘내일 뭐 해먹지?’ 고민 끝에 배운 것 중 한가지겠다.

* 나는 요리 사진을 잘 안 찍는다. 일단 저녁에 조명이 예쁘지 않으며 요리 뿐 아니라 테이블 세팅 등까지 하다보면 사진 찍을 정신은 없기 때문이다. 그 중 내 스마트폰에 남아 있는 사진들은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간장버터치킨구이를 올린 리조또, 약식 깐풍기, 탄탄면을 흉내낸 국수요리, 게살죽에 고추장삼겹살구이 그리고 맥주 한 잔 하면서 즐기던 요리 과정. 이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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