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문화에 익숙해지기

토론 문화에 익숙해지기
Photo by Dylan Gillis / Unsplash
  • 이 글은 2017년 12월에 작성된 글입니다.

지난 2주일은 고민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네덜란드 회사로 이직 후 3개월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업무 성과/속도가 나지 않는 것 같았고, 팀 내외적으로 챌린지도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스트레스도 많았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내가 지금 자신감이 적은 상태였고, 그에 따라 팀원이나 다른 팀에서 챌린지하는 부분에 대해 과민반응을 하고 있는 걸로 진단했다. 내가 아직 내가 하는 일/제품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상태였고, 이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쿡~ 찌르면 '잘 모른다'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조금은 감정적인 리액션이 나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나를 스스로 진단했지만 사실 비슷한 경우를 지난 회사에서도 겪었다. 그때는 내 상사가 나에게 이런 피드백을 주었다.

싼쵸님은 다른 사람이 본인과 다른 의견으로 챌린징하거나 질문하는 경우에 좀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보인다. 그냥 마음을 열고 맞는 말은 받아들이고, 아닌 경우라도 본인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논리적으로 주장을 하면 된다.

당시에는 이게 내 개인적인 성향/문제라고 생각을 했으나, 이번 계기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내 개인적인 성향 외에도 어느 정도는 '토론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겪는 진통이라고도 생각을 했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경우가 많다.

요새 내가 고민하는 것에 대해  예전 상사께 이메일로 조언을 구했고, 다음날 받은 장문의 피드백 중 일부를 아래와 같이 발췌해 본다(참고로, 이 분은 고등/대학교를 영어권 국가에서 나왔다.)

서양권 사람들은 예전부터 debate에 익숙하고, 토론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익숙한 반면, 한국 사람들은 공개적인 자리(미팅)에서 내 의견에 챌린지 하는 경우 공격받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일하면서 풀고 있는 문제들은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토론 시 내가 어떤 프레임워크로 고민을 했고 객관적인 증거(데이터 등)를 찾아봤는 지 등이 중요할 거다. 그게 결국 논리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경우가 많다. 어느 경우나 장/단점이 있고, 토론과 데이터 분석을 통해 최대한 리스크가 적은 판단을 하려 한다. 논리적으로 풀어낸 생각이고, 토론에 참여한 다수가 동의한다면 그게 그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이다.

그런데 나는 유의미한 생각들을 주고 받는 생산적인 토론보다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최대한 '방어'하는 토론을 하고 있었다. 서로 생각이 다른 미팅을 하다보면 "I would like to challenge you in that ~", "I am disappointed that you said~ I think~" 등으로 시작하는 말을 듣곤 한다. (사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disappointed 라는 표현은 잘 안 썼으나 좀 직설적인 네덜란드인이 썼다.) 한국말로 직역하자면 "도전한다(challenge)"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런 말을 들으면 속으로 "어?"라는 생각부터 들었고 이에 방어적이고 좀 부정적인 감정이 앞섰던 것 같다.

내 옛 상사가 얘기했던 것처럼 서양에서는 토론문화가 활발하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과 토론을 하다보면 내가 논리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는 (글로벌 회사지만) 네덜란드에서 창업하고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둔 회사기 때문에, 직원의 20% 정도는 네덜란드이다. 이들은 특히 영어도 잘 하고 토론도 잘 한다. (* 참고 : 국가별 영어 능력평가 1위 네덜란드,  네덜란드 토론 문화 참고) 이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팀을 대변하여 미팅을 하다보면 종종 논리에서 밀리게 되고 말을 더듬게 된다. 이 상황에서 내가 계속 '이기려고' 하면 감정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패배를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열리는 것 같다. 논리 대 논리에서 밀렸으면 깔끔히 패배를 인정하고("Good point!") 하나 배웠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논리에서는 밀렸으나 여전히 수긍이 안 가는 경우라면 "Let me think about it" 라고 하고 다른 각도에서 더 고민을 하거나 데이터를 찾아보고 다시 얘기를 할 수도 있겠다.

challenge

 

맨날 질 순 없잖아

열린 마음으로 토론을 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유연하게 수용한다고 해도, 맨날 토론에서 지면 안되지 않겠는가! 특히 나는 Product owner로서 나와 같이 일하는 개발팀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기에, 최소한 이들에게 피해는 입히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토론을 잘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 나는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해보려 한다. (지난 영어 관련 글과 마찬가지로, 나는 내 자신을 실험의 대상으로 한다)

1. 내 고객과 내 제품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아야 한다. 통계 및 주요 지표에 대한 데이터는 물론 고객 리서치 결과 등도 함께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감의 원천이다.

2. 챌린지가 예상되는 부분에 대해 내 생각과 근거를 뚜렷이 가지고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지금 완벽하지 않다면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놓는다.

3. 마지막으로 설득(persuasion) 관련 책을 읽어보고자 한다. 책 하나 읽는다고 갑자기 debate master가 되진 않겠지만 최소한 어떤 프레임으로 훈련을 해볼까 감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영어 훈련과 마찬가지로 토론에 대한 훈련도 짧은 시간 내에 효과를 확인하긴 힘들 것이다. 다만 하루하루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도전하고 배운다면 점진적으로 실력도 늘고 자신감도 붙지 않을까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냈고 직장생활의 80% 이상을 대기업에서 경험했다. 허나 이젠 암스테르담이란 곳에서 이곳 사람들과 부대끼고 있기 때문에 변하지 않으면 survival 하기 힘들 것이라고 느낀다. 심각해지긴 싫지만 이 또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도전하고 배운다면, 어느 순간 달라진 자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