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사람들을 한 회사에 오래 다니게 만들까?

2019년 5월에 ‘일하는 사람들의 컨텐츠 플랫폼’ Publy의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션 글로 발행한 글입니다. Publy에서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중단했기에, 제가 작성했던 본문(‘큐레이터의 말’)을 Publy 동의 하에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삼성전자에서 8년 동안(사실 이제 삼성전자 전체 평균 근속 기간이 10년이 넘었다고 들어서, 8년이 그리 길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 있겠네요) 일 할 수 있었던 요인을 제 경험과 고민을 토대로 풀어내봤습니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었던 비결

나는 첫 직장인 삼성전자에서 8년이나 일했다. 만 8년을 채우고 퇴사하는 날, 시원섭섭했던 그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재밌게도 입사 시 목표는 3년을 채우고 장기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떻게 8년을 일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인생과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바로 배움과 성장이다. 이 부분을 회사가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S/W 엔지니어로 입사 후 3년 간 개발팀에서 일했고, 이후 상품기획 업무 3년, 그리고 해외영업 부서에서 2년 동안 일하며 여러 직무를 경험했다.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성격이었지만, 단순히 계속 ‘다른 일’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사용자와 회사(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개발팀에서 S/W의 일부분을 개발하는 일보다는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의 더 영향력이 커보였고, 실제 고객(스마트폰/태블릿을 구매하는 통신사나 리테일 업체)과의 접점에 있는 해외영업 업무가 더 임팩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쿠팡으로 이직을 결심한 계기 중 하나도 내 제품의 실제 사용자를 더 가까이에서 분석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오해는 마시길. 지금 돌이켜보면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업무는 없었고, 오히려 개발자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운이 좋았는지,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일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여러 직무를 거치면서 나에게 맞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고, 업무 능력도 많이 성장했다. 

스스로 차근차근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회사의 인사 시스템이 이를 지원해주지 않았거나, 보수적인 문화가 가득한 조직이었다면 조직 이동은 힘들었을 것이다. 회사에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 경험을 역으로 생각해 봤다. 회사가 좋은 직원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직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파악한 후, 직원들이 가장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조직과 일을 찾아주는 게 아닐까 한다. 진부하고 나이브한 생각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리소스’를 관리하는 게 아닌 ‘사람’을 관리한다고 생각한다면, 어찌보면 당연한 생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회사의 가치와 문화는 왜 중요한가

이 경험을 역으로 생각해 봤다. 회사가 좋은 직원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UC버클리와 스탠포드 비즈니스스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직원들이 회사에 잘 적응하고 근속할 수 있게 하는 두 가지 요인은 1)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 2) 조직문화와 얼마나 공명할 수 있는지였다고 한다. 

이를 회사(혹은 미래의 창업자)와 직원(혹은 구직자) 입장에서 각각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내가 스타트업의 CEO인데 우리 회사에 직원을 끌어오고, 열심히 일하게 하고, 오랫동안 같이 일 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원들의 입맛에 맞추기보다는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내가 이루고자 했던 일, 풀고자 하는 문제와 지향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잘 뽑는게 최선일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본다면 대표가 없어도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할 것이다. 이를 통해 목표하던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직원의 이탈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직이나 구직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이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가 나와 같은지, 이 회사의 업무 문화가 나와 맞는지 등을 면밀히 알아보고 지원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복지와 보상도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매일 ⅓ 이상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야 하는데 가치와 문화적인 핏이 맞지 않는 조직에서 일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의 경우 네덜란드에 있는 Booking.com으로의 이직을 긍정적으로 고려했던 이유는몇 가지가 있다. 우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동료들과 좌충우돌 영어로 업무를 하는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좀 더 성숙한 제품관리 조직에서 많이 배우고 싶었으며, 한국보다 훨씬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두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승진과 연봉도 중요하지만 가족, 특히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 배움과 성장, 그리고 자율이라는 내가 지향하는 가치·문화와 회사가 어느 정도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해 본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직과 이민을 결정할 수 있었다. 

나를 잘 안다는 것

회사나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가 내가 지향하는 바와 같은 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30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어느 해 연말, 혼자 회고의 시간을 가지면서 종이 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언제 행복한지 등을 써내려가면서 알게된 것이었다.

그 전까지는 스스로를 ‘호기심은 많지만 끈기가 부족하고, 자주 관심사를 바꾸는 사람’으로 파악했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깨닫고 나서는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됐다. 설령 새로운 직장·조직에서 생각보다 성과가 안 난다 하더라도 매달 혹은 매분기 나를 되돌아보면 나는 항상 ‘나아져 있었다’. 그리고 계속 나아지다 보면 예전과 같이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건 조직도 나를 믿어주고 기다려주었기 때문이다. 빠른 시간 안에 숫자로 보이는 성과를 요구하는 조직이었다면 훨씬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직원의 적응과 성장을 기다려주는 것 역시 회사나 조직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문화다. 

창업도 해 본 적 없고, 큰 조직을 이끌어 본 적도 없다.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다만 내가 확실히 아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어하고, 어떤 업무 문화를 좋아하는가’이다. 

이걸 알면 내가 어떤 회사에 가면 더 즐겁고 열정적으로 일 할 수 있을 지 알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창업을 한다면 어떤 조직문화의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바로 알기 위해 노력하고, 회사도 지향하는 가치를 확실히 하고, 더 나아가 회사가 조직원 개개인의 가치를 바로 알아준다면, 직원도 회사도 윈-윈 하고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비전과 제품(Product) 리더쉽

* 2018년 2월에 Brunch에 쓴 글입니다. 

 

우리는 업무와 일상 중에 “비전(Vision)”이란 말 참 많이 쓴다. Product management에서도 이 비전이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어찌보면 ‘성과를 내는 팀(high performing team)’을 빌딩하고, 이 팀을 기반으로 고객에게 가치를 주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 같다.

벌써 네덜란드로 이주해 숙소예약업체인 B사에서 Product owner(이하 PO)로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다. 실제로 내 팀을 꾸리고 무언가 만들어나기기 시작한 것은 4분기(10~12월)부터니까 진짜 PO로 일한 것은 4개월 남짓 된 셈이다. 지난 해 말에 4분기 회고(Retrospective meeting ;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팀이 잘한 점, 부족한 점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성과를 내는 팀이 될 수 있을 지 논의하는 미팅)를 했을 때 팀원들이 언급한 부분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비전’이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비전을 명확하지 않아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방향이 헷갈린다는 점이었다. 팀의 PO 입장에서 부끄러웠다. 사실 회고 전에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특정 상황에서 내가 팀을 잘못 리드하여 시간을 좀 허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도 내가 못한 점, 고생한 부분으로 얘기를 시작한다. ‘해외에서 외국인들을 이끌고 멋진 서비스를 개발하는 PO’이고 싶었으나 다시 한 번 ‘좌충우돌하는 외노자 3년차 PO’ 버전으로 ‘비전’에 대해 잠깐 얘기해보고자 한다.

* 이 글에서는 편의를 위해 비전(vision), 방향, 목표(objective) 등을 섞어서 썼으나, 엄밀히 말하면 비전/미션/목표 등은 조금씩 다른 개념이고, 회사마다 정의가 다른 경우도 있다. 여기서는 굳이 정확히 나눠서 얘기하진 않겠다.


비전, 의사결정의 중요 요인

솔직히 4분기 동안 ‘비즈니스 지표’ 입장에선 못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신생팀이지만 굉장히 좋은 성적을 냈었다. 그러나 솔직히 이는 쉬운 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우리 팀은 우리 조직(팀의 상위부서) 10개 제품팀 중 유일한 모바일 앱 개발팀이다. 우리 팀의 첫 시작이었던 4분기에는 기존에 PC Web에서 성공적이었던 기능들을 모바일 앱으로도 제공을 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공이 예측가능한 기능들이었다.

그러나 우리 팀의 목표(Objective)에는 이 비즈니스 지표 외에 새로운 영역을 발굴하는 목표도 있었다. 비전의 부재는 이 두번째 목표 달성을 위한 기능을 기획, 디자인, 구현하는데 있어 큰 영향을 끼쳤다.

미지의 영역인 만큼 처음에는 사용자(우리 팀의 경우는 호텔리어나 숙소 소유주가 end user이다)가 어떤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어떤 기능들을 요구하는지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여러 목소리를 듣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우선순위화(prioritize)하고 첫번째 기능에 대한 요구사항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 조직의 주요 목표는 우리 회사 웹사이트 상에 ‘예약 가능한 방/호텔’을 늘리는 게 목표인데, 우리 팀은 ‘방이 더 잘 팔리게(방이 booking되는 것)’ 웹 사이트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둘 다 우리 사용자의 비즈니스가 잘 되도록 돕는 것은 맞았으나, 우리 조직의 주요 목표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기능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PO인 나는 조직의 요구사항을 대신하여 목소리를 냈고, 이 과정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다. 목표 지표가 확정되지 않았고, 구체적인 개발 사양도 확정하지 못한 채 몇 주의 시간이 지났다. 결국 조직의 목표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결론이 났고, 이 방향대로 구현을 완료하여 실제 사용자를 대상으로 테스트를 했으나,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하였다.

테스트의 성공 여부를 떠나, 지난 4분기 말을 되돌아보면, 이 테스트 하나 때문에 팀이 좀 힘든 시기를 겪었다. 서두에서 얘기했지만, 회고 미팅 시 ‘비전’에 대해 얘기가 나온 것이 이 테스트 때문이었다.

그럼 왜 ‘비전’이 언급되었을까? 그건 바로 우리가 의사결정의 갈피를 잡기 힘들었던 이유가, 우리 팀이 가야할 방향에 대해 모든 팀원들의 이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비전은 쉽게 말하면 북극성(North star)과 같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가야 할/달성해야 할 목표점이다. 제품(Product)의 비전을 설정하고 이를 향해 팀을 리드해야 할 책임이 어느 정도 PO에게 있기 때문에, 나는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팀을 잘못 리드한 것도 그렇고, 팀원들의 팀 목표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던 이유도 어찌보면 나에게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핑계를 대자면 많이 댈 수 있다. 해외로 이직 후 맞이한 첫 분기이기 때문에, 회사의 문화와 프로세스에 대해 이해가 얕을 수 있고, 호텔 비즈니스 자체에 대해서도 아직 완전히 따라잡진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핑계를 떠나 모자람을 인정하고 다음 분기(2018년 1분기)를 도모하는 것이 더 나은 모습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1분기가 다가왔다.


제품의 가치, 가야할 방향

벌써 18년 1분기가 반 정도 지나간 상황이다. 솔직히 아직 성과는 없었다. 비전 때문은 아니고 1월에 많은 회사 행사(회사 전체 annual event, 해커톤 등)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말부터 모든 팀원들이 함께 팀의 비전을 설정했고, 그 이후로도 팀원들에게 가야할 방향에 대해 계속 언급을 했다. 그 덕분인지 팀원들의 팀 목표에 대한 이해도는 좀 더 높아진 것 같다. 1월 말에 팀원들에게 ‘우리 팀 목표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그 목표가 너를 가슴 뛰게 하는지’, ‘우리 목표가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하는지’ 3가지 질문으로 비밀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는 아래와 같이 생각보단 괜찮았다.

이와 별개로 1분기에 개발/런칭하고자 하는 주요 기능들에 대해 팀원들과 논의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배운 점이 있다. 몇 가지를 잠시 언급해보고자 한다.

1. 모든 팀원들이 팀의 방향에 완전히 align 하기 전에는, 팀원들과 커뮤니케이션 시 ‘다른 목표’에 대해서 언급을 자제하자.

팀이 어느 정도 제 궤도에 올랐다 생각을 하고 팀의 미래(라고 해봤자 몇주/달 앞) 먹거리를 찾기 위해 잠시 조금 다른 쪽을 살펴보고 분석을 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팀원들이 ‘이게 바로 다음에 Focus해야 할 것인가보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진행을 멈췄다. 자칫하면 다시 한 번 팀원들이 팀의 주요 목표/방향에 대해 헷갈려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팀원들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그 과정에서 ‘작은 성공’을 맛본 후에 다른 목표에 대해 언급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물론 회사/팀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2. 명문화하지만 말고 비전을 시각화(Visualize)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몇 줄의 문장으로 비전을 명문화 할 수도 있지만, 대충이지만 미래 제품의 모습을 스케치하여 팀과 소통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이 스케치의 방향대로 갈 지 안 갈지도 정해지진 않은 것이지만, 우리 제품의 가치를 드러내고 미래에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이미지화하는 것은 상호 이해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호텔리어들은 무지 바쁘다. 우리 제품은 모바일 앱 기반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상황을 실시간으로/간결하게 알려주고 수행해야 할 일을 제안하자. 클릭 한 번으로 Yes/No 선택하여 본인들의 호텔을 쉽게 관리하게 하자.”라는 내용을 모바일 화면으로 스케치하여 소통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 제품의 기능 신규 기획이나 개선을 할 때, 팀원들과 근원적인 부분(Why?)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하면서, 이에 대한 답이 비전과 같은 방향임을 확인하자.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이걸 “왜 해야 하고”, 사용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 지 고민하지 않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계속 “왜”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이에 대한 답이 제품의 비전과 같은 방향인지 확인을 해야 ‘팀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4. 제품 로드맵 설정 및 의사결정 시 항상 다시 ‘비전’을 되짚어보자. 이와 같은 방향이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기능이라도 우선순위가 낮아야 한다. (위의 Why?와 어느 정도 연관된 부분)

‘비전’은 연초, 분기초에만 언급하는 게 아니다. 팀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수시로 되돌아가서 짚어봐야 하는 나침반 같은 것이다. 아무리 좋은 가치를 제공하는 기능이라 할지라도 팀의 비전과 방향이 맞지 않는다면 우선순위를 낮춘 후 다음에 다시 고려하거나, 이를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다른 팀을 찾는 게 좋다.


비즈니스 모델이 있기 전에 비전이 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Publy라는 서비스를 눈여겨 봐왔다. 워낙 글 읽는 것을 좋아해서 질 좋은 컨텐츠처럼 보이는(안 읽어봤으니 평가하기 힘든 상태) Publy의 글을 읽어보려 했으나, ‘개별 구매’가 불가능했던 점 때문에 결제를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중 Facebook에서 우연히 Publy의 이승국PO가 태그된 글을 봤고, 궁금했던 점을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아래의 인용글은 내가 “왜 컨텐츠 개별구매는 안되고 월 subsciption 비즈니스 모델만 운영하나요? 저는 읽고 싶은 것만 돈내고 읽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대한 이승국PO의 답변이다. (사실 이 분은 Chief Product Officer이다. 그러나 질문을 던질 당시에는 이를 모르는 상태였다)

서인용님 안녕하세요. 제 글을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subscription만 운영하는 이유는 비전/미션과 연결된 부분도 있습니다.
개별 콘텐츠를 유료로 팔게 되면 소비가 아무래도 자신의 관심사 위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요.
그러다 보면 오히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모르거나,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더 큰 그림에서 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subscription으로 구매를 하게되면 처음에는 관심 분야의 콘텐츠를 보는 것으로 시작하겠지만, 남은 기간 다른 콘텐츠를 보는데 있어 훨씬 자유로워지고 이런 시도에서 자신이 몰랐던 콘텐츠에서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저희는 고객들이 이런 콘텐츠 소비 패턴을 갖추어서 좀 더 다양한 분야에 깊이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 서비스를 만족스럽게 쓰고 있는 고객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가 PUBLY에 어떤 관심사가 있어서 그 콘텐츠를 보러 들어오는게 아니라 PUBLY가 추천해주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들어와서 본다는 것입니다.

사실 몇몇 콘텐츠가 개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콘텐츠 개별 구매에 대한 문의도 많이 들어오지만, 우선 멤버십을 활용해서 봐달라고 하고 있으며 이 과정을 통해서 멤버십의 가치를 느끼고 좀 더 오래 유지하는 것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1달 멤버십 가격이 개별 콘텐츠 구매 가격보다 딱히 비싸지도 않습니다.)

다만 현재 초기 예약 판매가 개별 판매의 기능도 하고 있는데요. 이 부분에서 실제로 멤버십 구매와 서로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어떻게 해결을 할지 고민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넷플릭스만큼 쉽게 해지하고 쉽게 재결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글의 정의를 내리긴 어렵지만, 전 개인적으로 한국에 좋은 글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 시대에 영문 콘텐츠까지 그 범위를 넓힐 수 있겠지만,
1) 언어적인 측면에서 생각보다 영문 콘텐츠를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또는 적어도 한글 콘텐츠를 훨씬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요.
2) ‘지식’이라는 측면에서 영문이든 한글이든 콘텐츠의 universal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그 것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는 우리 문화에서 이루어지는 바, 우리 문화의 맥락을 담은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3) 지식 콘텐츠는 그 문화 안에서 소비하고, 활용하고, 논의하면서 그 경험을 지속적으로 축적시켜나가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결론은 우리가 아예 영미권 문화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우리 내부에서 좋은 콘텐츠가 계속 나오는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해외카드’ 결제 지원이 안되어서 아쉽게도 유료서비스 사용을 못하고 있지만, 솔직히 위 답변을 듣고 바로 유료회원 가입을 할 작정이었다. 읽어보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을 이루고 싶은지, 그리고 자신들의 서비스가 고객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한 믿음(I believe that – !)을 확인할 수 있고, 실제 고객들의 피드백까지 언급하고 있다.

나는 단순히 ‘왜 컨텐츠 개별 구매가 안돼요?’라고 물어봤을 뿐인데, 이승국PO는 고맙게도 본인의 생각을 장문의 메시지로 답변해주었다. 물론 Publy도 여러가지 비즈니스 모델로 시뮬레이션도 하고 실제 테스트도 많이 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의 비즈니스 모델은 수많은 재무 시뮬레이션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의 대화를 통해 다시 한 번 비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마침 이때가 2018년 1분기 시작하는 1월 초 시점이었기에 더 그 의미가 크게 다가왔던 것 같기도 하다.

* 위 대화 내용은 이승국PO님께 허락을 구하고 인용하였습니다.


제품 리더쉽(Product leadership)

한국에서 직장 생활 10.5년을 하고 네덜란드로 온 지 반년이 지났다. 한국 직장생활 중 대부분인 8년을 대기업 S사에서 보냈는데, 솔직히 ‘스마트폰을 많이 팔자’ 외에는 회사가 무엇을 이루려 했는지, 어떤 가치를 지향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회사 다닐 당시에도 몰랐던 것 같다. 그렇다고 직장생활을 못한 것도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이상해 보이지만, Top-down으로 주요 목표가 내려오는 한국 대기업의 특성상 굳이 알아야 할 필요도 못느꼈던 것 같다. 주로 ‘어떻게 실행할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다.

지금의 회사도 규모로 보면 대기업이다. 사실 매출 규모로만 보면 애플/구글/아마존/페이스북 그리고 중국의 거인들(알리바바, 텐센트) 바로 다음에 위치한다. 그러나 팀의 목표는 팀에서 정한다. 팀의 상위 조직에도 목표가 있으나,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바로 아래의 팀을 쪼는 경우는 아직 못봤다. 스타트업도 아닌 대기업인데 회사 문화는 굉장히 자율적이다. 이 글 서두에서 언급한 사례와 같이 팀이 가야 할 큰 방향 자체는 정해져 있지만(예를 들어, 신규회원 유입이 목표인 마케팅 조직이 갑자기 고객 감동서비스를 하겠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던 회사는 크게 터치하지 않는다.

참 좋아보이지만 PO로서 힘든 점도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만큼 하고 싶은 것도 많으나 모두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개발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하고, 그곳에 팀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결국은 ‘사용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사용자가 우리 서비스를 통해 이루려 하는 것이 뭔지, 우리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지, 사용자들이 어떤 부분에서 불편함을 겪는지 등에 대해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을 하고, 각종 리서치/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PO는 자신의 팀이 개발하는 제품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팀을 이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품이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가치는 무뎌지고, 팀원들은 열정적으로 일할 동기를 잃는다. 이것이 Product leadership이며 이는 비전에서 시작한다.

(솔직히 지난 몇 개월 동안 나는 이 부분을 잘 못했다. 그래서 회고를 통해 다시 한 번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