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나는 어쩌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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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2019년 10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고백한다.
나는 사실 군 입대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대학 입학 시 논술도 보지 않았다. 글쓰기가 싫어 논술이 있는 ‘정시’ 대신 ‘특차’로 입학하는 걸 택할 정도였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부터 개인 블로그에, 회사 블로그에 글을 쓰더니, 올해는 처음으로 ‘돈을 받고’ 글을 써보는 경험도 해보았다. 뭐든 관심이 가는 대상이 생기면 훅 파고드는 성격 덕분일 수도 있지만, 나도 나 자신이 언제부터 글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어떤 계기에서 시작을 했고, 무엇이 나를 계속 글을 쓰도록 동기부여를 했을까? 그래서 잠시 뒤돌아 보았다. 크게 보면 3번의 '때(계기)'가 있었던 것 같다.

군대에서 편지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2000년 초반에는 군대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은 상상도 못 했고, 개인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훈련소에서부터 가족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랬다. 이 편지들이 내가 제대로 글을 써 본 첫 계기인 것 같다. 가족들과, 밖에 있는 친구들과, 다른 부대에 있는 친구들과, 심지어 외국에 유학 가 있던 친구들과도 편지를 계속 주고받았다. 주로 개인적인 내용이었다.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주고받고, 인생에 대한 고민 조금 하고, 쓸데없는 말도 자주 지껄이는, 그런 소소한 편지들이었다.

그리고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오랜 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신 후 얼마 후에 입대를 했다. 신병 시절 혼자 이불속에서 숨죽여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답답했고 뭔가 토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제대하고도 한동안 일기를 썼다. 그리고 그 습관 덕분인지 혼자 유럽과 중국 배낭여행을 다닐 때도 ‘여행 일기’를 썼고, ‘아랍의 봄’ 운동이 막 시작된 이집트를 여행할 때도 일기를 썼다. (당시 카이로 시내가 불타는 상황이어서 관광지는 문 닫고 공항에서 노숙도 했었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일기를 안 쓰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신입사원 시절 2년간 매주 발송하던 문화 주간지

신입사원 때, 연애를 안(못)하던 시절, 썸녀든, 여사친이든, 혼자든 주말마다 계속 돌아다녔다. 영화를 보고, 여행도 가고, 미술관도 갔다. 휴대폰 제조업체에 개발자로 입사를 했지만, 일이 내 성향에 맞지 않았고, 이에 회사생활이 답답했다. 또한, 대기업이라 굉장히 수직적이었고, 오전 8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9시 반 ~ 11시에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주말은 해방구였다. 한 동안 소개팅을 꽤 많이 했는데, ‘사랑’을 찾아다닌 것보다, ‘맛있는 것 같이 먹고, 같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행위라고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보고, 듣고, 생각한 걸 주말에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걸 매주 월요일 아침에 사내 지인들(우리 팀 포함해서 100여 명)에게 메일로 보냈다. 선배들과 동기로부터 듣는 칭찬과 격려가 동인이었다.

글의 내용은 주로 도서, 영화, 전시회, 공연 리뷰였다. 한 때는 일 년에 책을 70여 권까지 읽었던 적도 있었을 정도로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토해냈다. 20대 후반은 인생과 커리어에 대해 고민이 많은 시기였는데, 아빠가 참으로 보고 싶었다. 아빠와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를 대체할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은 단순히 관용 표현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책 속에서 인생의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다 정리했다. (* 아직도 네이버 블로그에 남아 있는데, 문제는 내가 해외에 있다 보니, 네이버 아이디, 비번을 찾을 수가 없어 관리가 불가한 상황이다)

네덜란드로 이민을 왔고 이직을 했다. 다른 차원의 고민들이 시작됐다.

이직을 하면서 전혀 다른 환경의 국가로 이민을 왔고, 이에 새로운 사람들과 조직문화에 적응하느라 고생을 좀 했다. 그 내용은 브런치(혹은 블로그)의 이전 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은 사회생활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지만, 내가 처한 환경(30대 후반의 나이에 유럽에 있는 글로벌 업체 본사에 현지 채용되어 일하는 케이스)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에 내가 겪은 내용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하고 싶었다.

이 고민들의 해결책 중 많은 부분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편향된 생각은 아닌지 되짚어보고, 결론을 내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들을 매주, 매달 겪으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반복했다. 이런 훈련들이 내가 업무를 잘 수행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지만, 글을 더 잘 쓰기 위한 훈련도 되는 것 같다.

피드백의 중요성

아버지가 투병시절 독일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나와 주고받은 편지가 있다. 그 편지의 내용은 그전에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비평이었다. 중학생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치고는 좀 특이하긴 했다. 그 당시의 나(글쓰기를 싫어하던 나)는 전혀 공감하지 못할 내용이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내가 직장인이 된 후에 우연히 다시 읽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굉장히 달랐다. 몇 장의 편지를 요약하자면 ‘초등학생은 계곡에 핀 꽃을 보고 한 줄로 설명하겠지만, 대학생 즘 되면 이를 몇 장에 걸쳐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나중에 직장생활을 하면 글쓰기가 굉장히 중요하다.’의 내용이었다.

어찌보면 그냥 단순한 편지지만, 암 투병을 하고 계신 분이 독일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와중에 중학생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만큼 꼭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 편지가 내 글에 대한 첫 ‘피드백’인 것 같기도 하다.

10대 시절 글쓰기를 그렇게 무서워했던 것과는 달리, 20대에 들어서는 자연스럽게 글을 쓰기 시작하고, 주위에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반복했다. 사실 글쓰기라는 게 내 머리 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 잘 정리한 후,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잘 보여주는 과정인데, 나는 이 ‘보여주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나는 내 생각을 토해내고 싶었다. 이런 내 성향도 글쓰기 실력이 느는데 한몫을 한 것 같다. 종종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에 ‘다음엔 이런 걸 유의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종종 내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난 후 주위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묻는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얘기가 오해없이 전달이 되는지, 불필요한 내용은 없었는지 등의 질문에 대한 피드백은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나 혼자 쓰는 일기라면 모르겠지만, 결국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읽을 글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오해없이 전달되었는지, 이해하기는 쉬웠는지 등에 대한 확인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