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해외영업부서로 가고 싶습니다!”
2007년 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입사 후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인사팀과 면담을 했을 때다. 문제는 내가 엔지니어 직군으로 입사를 한, 그것도 대학 시절 1년 동안 회사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입사한 ‘기술’ 장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런 놈이 입사하자마자 해외영업을 하고 싶다고 하니 인사담당자들은 아마 “이 ㅅㄲ 미쳤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 의견은 당연히 무시당하고 난 SW 개발부서로 배치됐다.
“책임님, 저 해외영업 해보고 싶습니다.”
SW개발부서에서 몇 달 간 지낸 후 팀장님과 면담을 할 때였다. 팀장님은 좋은 말로 일단 몇 년 간 더 일해보고 그래도 팀 이동을 하고 싶으면 다시 얘기해보자고 했다. 재밌는 건, 그 날 저녁 팀 회식이 있었는데, 회식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한 선배가 “야 인용아, 너 딴 데 가고 싶다고 얘기했다며?”라고 대놓고 물어봤다. 팀장님과 1:1 면담을 한 단 몇 시간 이후였다.
아마도 (군대로 따지자면) 관심사병으로 분류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내 SW개발 능력은 눈에 띌 정도로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주위의 엔지니어들과 달랐던 건, 더 나은 영어 실력(내 영어 관련된 얘기는 여기를 확인) 그리고 ‘나서는’ 성향(MBTI로 따지면 ‘E’ 성향)이었다. 사내행사에서 춤도 추고, 기타치며 노래도 부르고, 그 행사들을 기획하고, 매 주말마다‘ 문화체험기(책, 콘서트, 영화 감상 글)’ 글을 써서 월요일 오전에 백여명에게 보내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인도에 새로 설립한 SW연구소와의 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팀장님은 나를 지목했고, 나는 부서(300명 규모)의 대표로 인도에 가서 엔지니어/테스터들을 교육하고, 양 부서 간의 협업을 원활히 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문서화를 주도했다.
그럼에도 내 해외영업의 꿈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졌다. 회사에서는 각 부서별로 역할이 다르다. 그 당시 내가 느낀 SW개발팀의 위치는 해외영업, 검증(테스트), 심지어 HW개발실보다 아래였다.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해외영업과의 관계만 살짝 얘기하자면, 보통 해외영업부서에서 클라이언트와 협의를 하여 요구사항을 정리하면, SW개발부서에서는 그 요구사항을 ‘구현’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정말 안되는 걸 되게 할 수는 없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해외영업은 항상 우리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납기일을 지키도록 푸쉬하는 위치였다. 그리고 솔직히 ‘뭔가 멋있었다’. 더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직군 전환을 할 수 있을지 알아봤다. 정확한 기준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난 몇 년 간 인사고과가 몇 이상이고 영어 말하기(OPIC) 점수가 Advanced Low’(최고 점수) 여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OPIC 시험을 봤고 Advanced Low 점수를 얻어냈다. 내가 입사 2년차 였을 때였던 것 같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두근두근 긴장된 마음으로 직군전환 신청서를 작성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실제로 인사팀에서 연락이 온 건 꽤 오래 지난 후, 입사 4년차 때였다. 갤럭시S가 막 출시됐던 때였고, 회사에서는 스마트폰에 탑재될 SW서비스들을 기획할 부서와 사람이 필요했다. 내 최종 목표는 여전히 해외 영업이었지만 같은 ‘상품전략팀’에 있는 상품기획부서도 재미있어 보였다. 일단 해보자고 생각했다. 부서장(상무)과 면담을 실시하고 팀 이동 결정이 되었다. 그때 기분은 참으로 미묘했다. 기쁘기도 했지만 긴장도 많이 됐다. 기술과 개발 이외에는 아는 게 없었는데 마케팅 직군으로 이동을 한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사내에서는 E(엔지니어)직군, M(마케팅)직군으로 분류했다.)
2010년 9월, SW서비스기획부서로 출근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첫 주간미팅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예를 들면, ‘revenue share’라는 쉬운 말도 정확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바로 그 다음 주에 갤럭시 탭(첫번째 모델)에 들어갈 서비스의 파트너업체(미국, 캐나다)들과 3일 동안 영어로 워크숍을 했고, 대화의 반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매일 야근을 하며 문서를 읽고 일하고 공부했다. 그러던 중 팀 내부에서 담당 업무 조정이 있었고 나는 중남미(아메리카 대륙에서 멕시코부터 그 남쪽 국가들) 국가들에 출시할 제품들에 탑재될 SW서비스를 담당하는 업무를 하게 되었다. 중남미 해외영업부서와 가깝게 붙어 일하게 되었고, 갤럭시S3 출시 지원을 위한 (9일 동안 5개 나라를 돌며 프리젠테이션과 신제품 데모를 하는) 출장에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중남미 해외영업부서의 실무 담당자들 뿐 아니라 중남미 국가에 있는 주재원들과도 가까워지게 되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해외영업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을 전했고, 결국 중남미해외영업 부서장(전무)까지 만나 면담을 했다.
“저 해외영업 가고 싶습니다.”
당시 내 팀장에게 말했다. 큰 소리를 내면서 논쟁까지 벌였고 (복잡한 스토리들은 생략하고) 결국 2013년 3월 꿈에 그리던 해외영업부서에서 내 직장생활 세 번째 직군(SW개발 → 상품기획 → 해외영업)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 전공 공부만 하고 SW개발 일만 하던 나는 어떻게 해외영업부서로 이동할 수 있었을까? 위를 보면 알겠지만 나는 6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계속 어필을 했다. 내 상사(팀장)들은 모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았다. 솔직히 내 인사고과에 도움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내 상사들은 내 의지와 성향을 이해했고, 필요할 때마다 나에게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예를 들면, 순수한 SW개발이 아닌 해외연구소와의 협업의 구심점 역할을 맡긴다던지, 스마트폰/태블릿 SW서비스기획의 중남미 담당을 맡긴다는 식으로 ‘해외 업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런 점들이 모여 결국 해외영업부서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영어 실력을 빼놓을 수 없다. 회사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당시(2010년 경)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내에서 마케팅 직군으로 이동하려면 높은 영어 말하기 시점 점수가 필요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점수를 충족했을 뿐더러 개발실에서 해외 소통 업무를 계속했고 주말마다 영어 토론 모임에 나가 말하기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했다. 정말 cliche 같은 말이지만 ‘준비가 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 맞다. 나는 거기다 ‘기회를 만들려면 내 주위 사람들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 눈치 보지 말고 계속 질러보면 결국 기회는 오지 않을까 한다. 안되면 말고.
중남미영업팀에서 첫날도 기억한다. 그 어색했던 공기와 중압감. 전무 주관하에 매주 진행하는 실적 관련 회의 등 여지껏과는 다르게 ‘숫자’로 얘기하는 환경 등 개발실에서 상품기획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보다 오히려 더 변화가 컸던 느낌이다. 그래도 적응을 잘 해서 다음 해에 흔히 말하는 ‘특진(특별 진급)’으로 동기들보다 먼저 과장 직급을 달고, 1년의 ¼ (3개월)을 출장지에서 보내면서 100차례 넘는 거래선과의 미팅에서 제품 포트폴리오 및 데모 프리젠테이션을 도맡아 하는 등 다이내믹한 2년의 시간을 보냈던 시절이었다. 지난 19년의 직장생활 중 손꼽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재밌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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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다니던 시절, 아침 호텔방에서 출근 준비하며>
인생 참으로 재미있다. 한때는 이게 전부인 것처럼 중남미로 (해외 수출 관련) 일을 했었는데, 지금은 저 멀리 유럽에서 한국의 수출을 돕는 일을 시작하고 있다니. 장기적인 목표 없이 재미와 열정 따라 뛰어다녔던 지난 20년이지만,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뭐든지 허투루 하면 안되고 어떤 인연이든 소중히 해야 한다.
이 해외영업부서에서 무슨 일을 했고, 어떤 것을 배웠는지는 다음 글에서 풀어내보겠다. 관심 있으신 분은 본 매거진 혹은 저를 구독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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