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는 내가 개발자로 입사를 해서 어떻게 해외영업부서로 옮겼는지를 다루었다. 이번 글에선 내가 삼성전자 해외영업/마케팅 팀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정리해 보겠다. 단, 아래 몇 가지를 꼭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이 글은 좁은 경험에서 온 글이다. 나는 해당 부서 경험을 단 2년 밖에 하지 않았고, ‘제품 관리’에 가까운 역할을 맡았다. 나랑 같이 일했던 분들 중에는 해외영업 업무만 20년 넘게 하신 분들도 많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2013-2015년)의 경험으로 지금은 조직도,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대기업인 삼성전자에서의 해외 영업이다. 종합상사나 중견/중소 회사에서의 해외 영업과 다르다. 솔직히 나는 해외영업 ‘지원’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Account managing(거래선 관리)을 하고 day-to-day operation을 하는 것은 현지에 있는 법인(예, San Tiago에 있는 삼성전자 칠레 법인)이지, 본사의 중남미해외영업팀은 아니다. 내가 합류했을 때는 신규 거래선을 개척하는 단계를 지나 기존 거래선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더 많은 물량을 수출할 수 있게 지원하는 단계였다. (중남미에서만 무선사업부 1년 매출이 $10B(100억불)을 넘었다)
내가 처음 입사했던 2007년 경에는 ‘수출팀’으로 불렸고 (예, 중남미수출), 이후 내가 조인했을 때는 ‘PM(Product Marketing)그룹’(예, 중남미PM그룹)으로 부서명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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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던 부에노스 아이레스 호텔 앞 모습>
담당 업무 분류
당시 내가 일했던 중남미PM그룹(50여명 규모)는 대략 아래와 같이 담당 업무가 나뉘었다. 이 그룹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제품(스마트폰/피쳐폰, 태블릿, 스마트워치, VR, 악세서리 등 HW제품)을 중남미에 판매하는 책임을 갖고 있으며 우리 부서는 아래와 같이 담당자들이 나뉘었다.
- (국가 지원) 국가별 영업 지원: 중남미에 있는 여러 개 삼성전자 법인(예, 브라질,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등)과 Pairing 되어서 해당 국가에서 영업활동을 하고 지속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일. SCM(Supply Chain Management) 관련한 업무 포함하여 필요한 물량이 제때 도착해서 문제없이 판매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등 여러 일을 함. 부서의 2/3 정도가 이 ‘국가별 담당’ 업무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브라질 같은 큰 국가(중남미 물량의 40%)는 4-5명 이상이, 볼리비아 같은 작은 국가는 1-2명만 한국 본사에서 담당을 했다.
- (권역 지원) 제품 포트폴리오 담당: 중남미에 판매하는 제품 포트폴리오(Product Life Cycle 포함 – 특히, 런칭 준비) 관리, 중남미 제품 개발팀(H/W, S/W 포함)과 협업을 통한 중남미향 제품 개발 지원(각 권역/국가마다 주파수 등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HW 및 SW가 달라진다), 주기적인 시장조사, 거래선 미팅 시 제품 포트폴리오 프리젠테이션 및 제품 데모 시연 등
- (권역 지원) 매출/물량/가격 담당: 중남미의 판매 실적 등 주요 숫자를 담당. 말로는 쉬워보이지만 가장 일이 많았던 보직이기도 하다. 국가별로 요구사항 및 이슈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이를 중간에서 정리하기도 하는 부서장(전무,상무)의 Staff 같은 업무도 했다.
- (권역 지원) 대형 거래선 담당: 중남미에는 여러 나라에 걸쳐 비즈니스를 하는 대형 통신사들이 있다 (America Movil, Telefonica). 이들에 대한 영업은 국가 차원에서 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본사와도 비즈니스를 한다. 이 업무를 지원한다.
- (권역 지원) 마케팅 담당: 본사 마케팅 (미디어, 소셜, 리테일 매장 등) 부서와의 접점. 각 법인/지사가 본사 가이드라인에 맞게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부서. 애플 스토어와 같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를 하는 리테일 마케팅도 지원한다.
읽어보면 어쩔 수 없이 휴대폰 및 통신 업계 특화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제품이 각 국가의 통신 인증을 받아야 한다거나, (당시) 많은 스마트폰 제품들이 중남미 통신사들의 통신 주파수를 지원하도록 튜닝해야 했던 점 등 말이다. 그래도 몇 부분을 빼고 보면 자기 브랜드(’Samsung Mobile’)를 가지고 일반 소비재를 제조, 생산해서 다른 나라에 수출해서 B2B(통신사나 도/소매상)로 판매하기도 하고, B2C(Samsung Mobile 리테일 매장)로 직접 판매하기도 하는 등 소비재 수출 판매의 대부분은 커버한 것 같다.
다만, ‘무역 실무’ 관련된 부분은 파트너 물류업체에서 진행을 했기 때문에, 삼성전자 본사에서 직접 처리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이슈가 생기면 뛰어들어서 해결해야 했다. 다른 권역(유럽, 북미, 동남아, 서남아, 중동아프리카, CIS, 중국, 일본) 수출팀도 다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업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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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ro – 중남미 최대 통신사 America Movil의 자회사들로 대부분 중남미 나라에 있었다. (본사: 멕시코)>
구체적으로 내가 했던 일
나는 위에서 분류했던 업무 중 제품 포트폴리오 담당 업무를 했다. 내부적으로는 ‘제품팀’ 혹은 ‘제품 담당’이라고 불렀다.
- 제품 PLC (Product Life Cycle) 관리 – 신 제품의 중남미향 개발 관련 요구사항 정리 및 개발팀 대응 (시장의 니즈, 현재 운영중인 모델의 수명, 개발의 난이도 등 고려) 및 구 모델의 단종 검토
- 주기적인 시장조사 및 제품 포트폴리오 업데이트 (가격, 국가별 도입 여부 등 전반적인 사항 파악)
- 모든 제품 관련한 중남미 수출팀 대표자 (상품기획이나 개발팀과의 컨택 포인트)
- 주기적인 클라이언트 미팅 지원 (제품 포트폴리오 자료 및 영어 프리젠테이션)
- 대형 거래선 분기별 조달(구매) 프로세스 지원 (제품 포트폴리오 프리젠테이션 및 데모 지원 등)
- 중남미 법인/지사 및 본사 수출팀(우리 팀) 내부 제품(HW, SW) 정보 제공 및 교육. 신모델 데모 (예, 새로 나온 Galaxy Note 3와 Galaxy Watch를 소비자로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등)
‘해외 영업’이라는 키워드를 보고 온 독자분들은 위이 내용이 ‘기대와 맞지 않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다. 기술이 집약된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대기업의 해외 영업이다보니, 제품과 기술을 잘 아는 담당자가 각 영업팀에 필요하기에, 개발과 상품기획 배경을 가진 내가 적임자였던 것이다.
삼성전자라는 회사가 워낙 크기 때문에, 당시 50여명이었던 본사 중남미 영업팀(팀장: 상무/전무급) 외에 중남미 해외 조직을 총괄하는 중남미 총괄(장: 전무/부사장급)과 여러 개의 법인(장: 상무급)과 지사들, 그리고 브라질에 있는 휴대폰 생산공장 등 현지의 조직도 굉장히 컸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결국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많은 제품들 — 스마트폰, 피쳐폰, 태블릿, 스마트워치, VR기기, 악세서리 등 — 을 만들어(제조), 옮기고(물류), 파는(영업)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 제품들의 정보를 중간에서 정리하고, 알려주고, 현지의 정보를 취합하고, 본사 다른 조직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일들이 중요할 수 밖에 없었다. 매일 하는 일은 결국 ‘커뮤니케이션’이었고, 일과 중에는 각 국가 혹은 타 부서 담당자들과 업무 협의를 하고, 아침 일찍 혹은 저녁 늦게 중남미 현지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구 반대편에 있다) 또한, 프리젠테이션 자료 등 자료 작성 업무는 늘 저녁을 먹고 야근을 하면서 했었다.
우리 부서 주요업무의 또 다른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지원’ 담당업무도 해보고 싶었고, 실제로 해외영업부서 3년 차에는 중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 담당으로 보직을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 나는 이미 쿠팡이라는 회사로 이직을 진행 중이었던 때였고, 존경하던 당시 브라질 담당 부장님께 (죄송하게도) 퇴사를 얘기할 수 밖에 없었다. 왜 그 좋은 회사와, 그렇게 가고 싶었던 부서를 떠나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본 글의 가장 아래에 공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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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법인 직원 대상으로 Galaxy S3 제품 교육을 하던 때로 기억한다>
커뮤니케이션
언어
중남미 영업임에도 대부분의 제품 프리젠테이션 및 법인 커뮤니케이션은 영어로 했다. 글로벌 기업이기에 사내(법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영어가 기본이었고, 클라이언트들 대부분이 각 회사의 대표 및 구매 담당 임원급이었기 때문에 영어 발표가 가능할 수 있었다. 또한, 중남미 영업부서의 담당자라고 해서 모두 포르투갈어(브라질)나 스페인어(그 외 중남미)를 다 잘 했던 것도 아니다. 솔직히 스페인어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했던 분들은 20-30%도 안 되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은, 스페인어 전공자가 아님에도 정말 유창한 스페인어로 멕시코 법인 직원들을 다독거리고 클라이언트와 소통을 하셨던 분으로 중남미의 에이스 중 한 분이셨다. 네덜란드에 9년 살았음에도 아직까지 기초 수준의 Dutch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내 영어 수준과 영어 실력을 어떻게 늘렸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글 을 통해 확인해보시는 게 좋겠다. 하나만 짧게 언급하자면, 영어 발표 및 리더십 스킬을 향상시키는 데 목적을 둔 Toastmasters라는 조직의 활동을 오랫동안 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해외 영업부서에서 제품 프리젠테이션을 100회 이상 할 수 있게 도와준 것 같다. 발표는 자신감이다.
자료 작성
정확한 자료를 만들어 현지에 배포를 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이다. 워낙 제품의 종류가 많고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이런 내용들을 본사의 담당자인 내가 각 법인/지사에 전달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신제품 관련 자료의 경우 물론 본사의 상품기획이나 마케팅 팀에서 기본 자료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백지에 글씨를 채우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중남미향으로 개발되는 제품의 사양(spec)이 다르고, 가격 및 일정 등도 다르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수정해야 했다. 관련 부서와 두번, 세번 확인하고 배포하는 것은 물론이다.
클라이언트 미팅의 경우, 기존 자료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스토리를 짜서 처음부터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는 해당 거래선 담당자(본사, 법인)와 미리 조율을 한 후, 해당 미팅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따라 프리젠테이션의 스토리 라인과 공개할 정보를 결정하고 자료를 만들어 발표를 하곤 했다. 특히 제안 가격 확인은 필수다. 실수로라도 잘못된 클라이언트에게 offer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프리젠테이션
클라이언트 미팅은 항상 긴장된다. 그들이 본사를 방문할 때면 부서장인 전무 및 다른 임원과 상사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기도 했고, 발표 대상자도 모두 (클라이언트 회사의) 대표(CEO)나 구매담당 임원급이다. 나보다 잔뼈가 굵은 분들 앞에서 제품 포트폴리오를 소개하고 각 제품별 특징을, 특히 신제품의 특장점을, 소개해야 한다. 100번을 넘게 발표를 했지만 모든 미팅은 분위기가 다 다르고 같은 내용의 발표라도 다른 방향으로 전개가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클라이언트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우리(법인)와 관계는 어떤지, 여지껏 판매량은 어떤지, 기존 불만은 어떤 것이었는지, 이 거래선이 가장 많이/적게 판매한 우리 제품은 무엇인지 등 최대한 많은 정보를 사전에 확보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프리젠테이션에서 내가 강조하거나 피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인지 미리 생각할 수 있고, 발표 중 받을 수 있는 질문도 미리 예상해 볼 수 있다. 민감한 질문들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며, 이에 대한 답변을 해당 클라이언트를 담당하는 우리 측 account manager와 미리 합을 맞춰 놓으면 훨씬 마음 편하게 발표를 할 수 있다. 영업은 결국 누군가에게 제품을 파는 것이고, 상대방이 가려울 만한 곳을 잘 긁어주어야 판매로 전환이 더 쉬워진다.
긴장도 됐지만 난 그 프리젠테이션들을 나름 즐겼다.
출장
단 2년만 근무했지만, 그 2년의 1/6을 하늘 혹은 출장지에서 보냈다. 출장의 목적은 단 하나, 제품 프리젠테이션이었다. (이는 내가 제품 포트폴리오 담당자였기 때문이며, 다른 국가/사업자 담당자들은 각 국가로 출장을 가서 현지 주재원이나 직원들 지원을 실시간으로 해주곤 했다.)
당시는 반기(6개월)마다 플래그쉽 제품이 출시가 되는 사이클이었다. 봄에 Galaxy S 시리즈가, 가을에 Galaxy Note 시리즈가 공개된다. 나는 이 신제품들의 샘플을 들고 여러 국가를 돌면서 제품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예를 들어, 데모 가능한 Galaxy Note 4의 신제품 샘플이 이번 주에 나온다고 하면 나는 이를 들고 주말에 비행기를 타서 브라질 → 아르헨티나 → 칠레 → 페루 → 멕시코 → 중미의 다른 국가 등을 돌고 2주만에 한국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브라질 내에서는 법인과 주요 클라이언트들이 있는 수도 상파울로에서 2-3일 지내면서 하루에 2-3 차례 클라이언트 미팅을 하고, 법인 직원들 대상으로도 신제품 교육을 하고, Samsung Mobile 리테일샵을 방문을 하고, 또 다른 하루는 주요 클라이언트(4대 통신사 중 하나인 Oi 였던 걸로 기억) 하나가 있는 리우데자네이루도 방문해서 1-2개 미팅을 하고 당일 비행기로 다시 상파울로로 돌아온 후, 그 다음 날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이동을 하는 식이었다. 이 일정을 4-6개 나라를 반복하는 것이니 꽤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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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체력이 좋았다. 밤에 이동해서 다음 날 아침 미팅을 한다>
출장을 갈때면 늘 샘플 때문에 고생이었다. 신제품 샘플이 비행기 탈 시간 전에 내 손에 들어와야 했고, 플래그쉽 신제품 외에도 다른 모델들의 샘플들도 한 두 개씩 챙겨가야 했다. 항상 15-25개 정도의 휴대폰 샘플을 들고 다녔고, 인천공항에서 나갈 때, 각 국가들을 들어가고 나올 때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공식적인 프로세스를 따르려면 당국에 신고를 먼저 하고 반입을 해야 하지만, 워낙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기에, 분초를 다투며 4-6개 국가를 다녀야 했던 일정 때문에 솔직히 (마치) 밀반입같이 샘플들을 들고 입국을 하고 업무를 마친 후 그대로 갖고 출국(이동)을 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하루 업무를 마치면 동행했던 분들 (대부분 상사)이나 주재원분들과 저녁을 먹고 호텔로 밤 11시가 넘어 돌아온다. 하루 종일 미팅을 하고 (대부분) 술도 여러 잔 하고 돌아온 상태이기 때문에 바로 자고 싶지만 중요한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하나는 샘플의 배터리를 충전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고서를 쓰는 것이다. 제품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클라이언트 반응은 어땠는지, 우리가 offer한 가격과 구매량에 대한 반응은 어떤지, 제품 피드백은 어떤지, 그 외 다른 이슈는 없었는지 등을 워드로 정리한 후 본사로 보내놓고 잠을 청했다. 너무 피곤한 경우, 다음 날 아침 5-6시 경에 본사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고, 국가 이동을 위해 공항에 가서 라운지 혹은 벤치에서 보고서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긴장되고 힘들었던 출장들이었지만 내가 얻었던 것이라면 경험과 마일리지였겠다. 밤에 혼자 공항에 내려 스페인어로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고 식당에서 주문을 하는 등 기초 수준의 스페인어로 현지인들과 소통을 했던 기억들이 참 좋았다. 현지에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도 아직 기억에 남는다. 특히 부에노스 아이레스(아르헨티나)에서 먹었던 스테이크와 Malbec 와인, 아사도 스테이크들, 페루 리마의 해변 식당에서 먹었던 세비체(생선회가 들어간 요리),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에서 먹었던 악어고기 세비체, 과테말라의 노천 식당에서 먹은 음식들과 악기 연주자분들, 칠레의 맛있는 와인 등 맛있는 음식들을 정말 많이 먹었다.
비즈니스석도 처음으로 타봤다. 내 첫 비즈니스석 경험은 운 덕분이었다. A380(2층짜리 가장 큰 항공기)을 타고 미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체크인을 하고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에 막 앉았을 무렵 승무원이 와서 “double booking이 되어서, 죄송하지만 위층으로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라고 물어보는게 아닌가? 미소를 최대한 감추며 캐리어를 꺼내 위로 이동할 때의 그 기분 — 말로만 듣던 ‘태평양을 누워서’ 가는 경험을 했다. 그 이후 과장이 되었을 때도 여러 번 비즈니스 석을 탈 수 있었다. 당시 삼성전자 사내 정책으로 ‘과장급 이상이고 총 비행 시간이 20시간 이상’이면 비즈니스 석을 탈 수 있었다. 인천에서 중남미까지는 항상 미국을 경유해서 갔고, 중미보다 남쪽 국가들을 갈 때면 늘 20시간을 넘겼기 때문에 올때 혹은 갈때 비즈니스 석을 이용할 수 있었다. 좋아보이겠지만 2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면 비즈니스 석도 힘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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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고기 세비체. 생선회 세비체랑 크게 다르진 않았던 것 같다>
또한, 장거리 비행을 하기 때문에 마일리지도 많이 쌓였다. 한 번 출장을 가면 1만 마일 이상이 쌓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게 쌓인 마일리지는 나중에 퇴사 후에 아내와 여행을 할 때 썼던 걸로 기억한다.
아쉽게도 출장 중에 여행/관광은 많이 못했다. 일정이 워낙 빡셌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퇴근 시간 후에도 법인 사무실에 남아 업무 정리를 하고 주재원과 함께 식사를 하고 밤 늦게 호텔로 돌아갔고, 주말에는 주로 공항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을 했다. 그나마 하루 정도 남는 시간에 도시 관광을 조금 한 정도이다. 예를 들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보카(La Boca; 그 유명한 축구팀 보카 주니어스가 있는 동네)를 구경하고 시장에서 아사도 고기를 맛본다던지, 상파울로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 페스티벌을 구경하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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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 아이레스 보카>
무엇을 배웠나
2년 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해외영업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솔직히 이 글 하나에 다 담기도 힘들고 글로 풀어내기도 힘들 것 같지만 일단 아래와 같이 짧게 열거해 본다.
- 기본적인 B2B 구매 프로세스
-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을 어떻게 준비하고 수행해야 하는지 (위에 많이 언급했음)
- 기본적인 제조/수출/물류/SCM 관련 지식과 경험. 특히 삼성전자는 생산기지가 여러 곳(베트남, 중국, 브라질 등)에 있고, 중남미 나라별 정책/요구사항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맥락들 안에서 Lead time을 어림잡고 forecast를 하는 등의 활동이 모두 학습의 대상이었다.
- 국가별로 제품의 PLC(Product Life Cycle)에 따른 가격 변경과 제품 포트폴리오 관리.
- 리서치 자료 (예, 지난 달 중남미 전체 스마트폰 모델별 판매규모)를 기반으로 국가별 시장점유율 에측 및 제품 전략 수립
- 리테일 마케팅의 기본
- 스페인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삼성전자 시절에는 수출과 무역의 ‘실무’를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그림을 보고 무역이 일어나도록 하는 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제조업(삼성전자는 제조업이다)에서 어떻게 제품을 기획하고 제조하고 이를 판매까지 이어지게 하는지, 해외 영업과 마케팅은 어떻게 하는지, 생산과 선적, 판매 등 SCM 측면 등의 전반적인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누구에겐 별거 아닌 숫자일 수 있지만) 백 번 넘게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제품 프리젠테이션 및 데모를 했던 경험도 추억과 함께 자신감으로도 돌아왔다.
왜 그만뒀나?
해외영업 직무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해외영업을 하면서 느낀 점 때문이다.
나는 대부분의 클라이언트 미팅을 좋은 회의실에서 의사결정자인 임원급과 했다. 이런 출장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비즈니스석도 타보고….) 뭔가 어깨에 뽕이 올라간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 페루 혹은 아르헨티나의 대형 리테일러와 미팅을 할 때 나는 다른 경험을 했다. 북적거리는 Seller 미팅 구역에서 의자에 앉아서 다른 십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내 담당 매니저(MD)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매니저와 함께 작은 회의실에서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면서 미팅을 했다. 작은 회사에서 영업을 시작한 분들께선 당연한 것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지만 나에겐 좀 다른 경험이었다. 이때 들었던 생각이 ‘내가 삼성전자 껍데기를 벗고 있다면 이 사람들이 나를 만나주기나 할까?’였다. 내가 회사 브랜드 없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답은 ‘너무 늦기 전에 대기업을 떠나자’였다.
또한, 당시 나는 갓 태어난 아기가 있는 애기 아빠였다. 이대로 중남미 영업부서에 있으면 몇 년 후에 주재원으로 갈 것이 틀림없었다. 해외 주재원. 멋지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그 주재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고 있었다. 특정 국가들의 경우 치안 문제 때문에 주재원 가족들도 답답한 삶을 살아야 했다. 밖에 맘 편하게 나가지도 못하는데 (주재원인) 남편은 맨날 야근하고 늦게 들어오고 주말엔 법인장이랑 골프치러 나가는 환경이 내 가족에게 — 특히 아내 — 얼마나 힘든 환경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내가 존경하던 (해외 법인에 나가 계신) 부장님과 차장님이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지는 걸 봤기 때문이다. 재밌고 보람된 일처럼 보이지만 내 몸 망가뜨리고 가족들이 힘들다면 이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산다고 오바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주재원의 삶은 내가 살고 싶은 삶과 결이 달랐다.
그래서 나가서 부딪혀보자고 생각했고, 좋은 기회에 해외영업은 아니지만 쿠팡이라는 당시 성장하기 시작한 회사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쿠팡에서의 경력 덕분에 네덜란드로도 오게 되었으니, 재밌게도 주재원은 아니지만 또 다른 기회로 해외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수출과 해외영업에 대한 로망은 남아있다. 그리고 중남미에 대한 그리움도 남아있다. 30대 초반의 그 2년을 정말 진하게 살았던 것 같고 비행기 갈아타며 중남미 십여개 나라(세보니 Telefonica의 본사가 있는 스페인 포함 12개 나라 출장을 다녔다)를 돌아다니던 그때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