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영업에서 무슨 일을 했나 (2편)

지난 편에는 내가 개발자로 입사를 해서 어떻게 해외영업부서로 옮겼는지를 다루었다. 이번 글에선 내가 삼성전자 해외영업/마케팅 팀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정리해 보겠다. 단, 아래 몇 가지를 꼭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이 글은 좁은 경험에서 온 글이다. 나는 해당 부서 경험을 단 2년 밖에 하지 않았고, ‘제품 관리’에 가까운 역할을 맡았다. 나랑 같이 일했던 분들 중에는 해외영업 업무만 20년 넘게 하신 분들도 많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2013-2015년)의 경험으로 지금은 조직도,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대기업인 삼성전자에서의 해외 영업이다. 종합상사나 중견/중소 회사에서의 해외 영업과 다르다. 솔직히 나는 해외영업 ‘지원’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Account managing(거래선 관리)을 하고 day-to-day operation을 하는 것은 현지에 있는 법인(예, San Tiago에 있는 삼성전자 칠레 법인)이지, 본사의 중남미해외영업팀은 아니다. 내가 합류했을 때는 신규 거래선을 개척하는 단계를 지나 기존 거래선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더 많은 물량을 수출할 수 있게 지원하는 단계였다. (중남미에서만 무선사업부 1년 매출이 $10B(100억불)을 넘었다)

내가 처음 입사했던 2007년 경에는 ‘수출팀’으로 불렸고 (예, 중남미수출), 이후 내가 조인했을 때는 ‘PM(Product Marketing)그룹’(예, 중남미PM그룹)으로 부서명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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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던 부에노스 아이레스 호텔 앞 모습>

담당 업무 분류

당시 내가 일했던 중남미PM그룹(50여명 규모)는 대략 아래와 같이 담당 업무가 나뉘었다. 이 그룹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제품(스마트폰/피쳐폰, 태블릿, 스마트워치, VR, 악세서리 등 HW제품)을 중남미에 판매하는 책임을 갖고 있으며 우리 부서는 아래와 같이 담당자들이 나뉘었다.

  • (국가 지원) 국가별 영업 지원: 중남미에 있는 여러 개 삼성전자 법인(예, 브라질,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등)과 Pairing 되어서 해당 국가에서 영업활동을 하고 지속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일. SCM(Supply Chain Management) 관련한 업무 포함하여 필요한 물량이 제때 도착해서 문제없이 판매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등 여러 일을 함. 부서의 2/3 정도가 이 ‘국가별 담당’ 업무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브라질 같은 큰 국가(중남미 물량의 40%)는 4-5명 이상이, 볼리비아 같은 작은 국가는 1-2명만 한국 본사에서 담당을 했다.
  • (권역 지원) 제품 포트폴리오 담당: 중남미에 판매하는 제품 포트폴리오(Product Life Cycle 포함 – 특히, 런칭 준비) 관리, 중남미 제품 개발팀(H/W, S/W 포함)과 협업을 통한 중남미향 제품 개발 지원(각 권역/국가마다 주파수 등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HW 및 SW가 달라진다), 주기적인 시장조사, 거래선 미팅 시 제품 포트폴리오 프리젠테이션 및 제품 데모 시연 등
  • (권역 지원) 매출/물량/가격 담당: 중남미의 판매 실적 등 주요 숫자를 담당. 말로는 쉬워보이지만 가장 일이 많았던 보직이기도 하다. 국가별로 요구사항 및 이슈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이를 중간에서 정리하기도 하는 부서장(전무,상무)의 Staff 같은 업무도 했다.
  • (권역 지원) 대형 거래선 담당: 중남미에는 여러 나라에 걸쳐 비즈니스를 하는 대형 통신사들이 있다 (America Movil, Telefonica). 이들에 대한 영업은 국가 차원에서 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본사와도 비즈니스를 한다. 이 업무를 지원한다.
  • (권역 지원) 마케팅 담당: 본사 마케팅 (미디어, 소셜, 리테일 매장 등) 부서와의 접점. 각 법인/지사가 본사 가이드라인에 맞게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부서. 애플 스토어와 같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를 하는 리테일 마케팅도 지원한다.

읽어보면 어쩔 수 없이 휴대폰 및 통신 업계 특화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제품이 각 국가의 통신 인증을 받아야 한다거나, (당시) 많은 스마트폰 제품들이 중남미 통신사들의 통신 주파수를 지원하도록 튜닝해야 했던 점 등 말이다. 그래도 몇 부분을 빼고 보면 자기 브랜드(’Samsung Mobile’)를 가지고 일반 소비재를 제조, 생산해서 다른 나라에 수출해서 B2B(통신사나 도/소매상)로 판매하기도 하고, B2C(Samsung Mobile 리테일 매장)로 직접 판매하기도 하는 등 소비재 수출 판매의 대부분은 커버한 것 같다.

다만, ‘무역 실무’ 관련된 부분은 파트너 물류업체에서 진행을 했기 때문에, 삼성전자 본사에서 직접 처리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이슈가 생기면 뛰어들어서 해결해야 했다. 다른 권역(유럽, 북미, 동남아, 서남아, 중동아프리카, CIS, 중국, 일본) 수출팀도 다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업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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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ro – 중남미 최대 통신사 America Movil의 자회사들로 대부분 중남미 나라에 있었다. (본사: 멕시코)>

구체적으로 내가 했던 일

나는 위에서 분류했던 업무 중 제품 포트폴리오 담당 업무를 했다. 내부적으로는 ‘제품팀’ 혹은 ‘제품 담당’이라고 불렀다.

  • 제품 PLC (Product Life Cycle) 관리 – 신 제품의 중남미향 개발 관련 요구사항 정리 및 개발팀 대응 (시장의 니즈, 현재 운영중인 모델의 수명, 개발의 난이도 등 고려) 및 구 모델의 단종 검토
  • 주기적인 시장조사 및 제품 포트폴리오 업데이트 (가격, 국가별 도입 여부 등 전반적인 사항 파악)
  • 모든 제품 관련한 중남미 수출팀 대표자 (상품기획이나 개발팀과의 컨택 포인트)
  • 주기적인 클라이언트 미팅 지원 (제품 포트폴리오 자료 및 영어 프리젠테이션)
  • 대형 거래선 분기별 조달(구매) 프로세스 지원 (제품 포트폴리오 프리젠테이션 및 데모 지원 등)
  • 중남미 법인/지사 및 본사 수출팀(우리 팀) 내부 제품(HW, SW) 정보 제공 및 교육. 신모델 데모 (예, 새로 나온 Galaxy Note 3와 Galaxy Watch를 소비자로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등)

‘해외 영업’이라는 키워드를 보고 온 독자분들은 위이 내용이 ‘기대와 맞지 않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다. 기술이 집약된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대기업의 해외 영업이다보니, 제품과 기술을 잘 아는 담당자가 각 영업팀에 필요하기에, 개발과 상품기획 배경을 가진 내가 적임자였던 것이다.

삼성전자라는 회사가 워낙 크기 때문에, 당시 50여명이었던 본사 중남미 영업팀(팀장: 상무/전무급) 외에 중남미 해외 조직을 총괄하는 중남미 총괄(장: 전무/부사장급)과 여러 개의 법인(장: 상무급)과 지사들, 그리고 브라질에 있는 휴대폰 생산공장 등 현지의 조직도 굉장히 컸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결국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많은 제품들 — 스마트폰, 피쳐폰, 태블릿, 스마트워치, VR기기, 악세서리 등 — 을 만들어(제조), 옮기고(물류), 파는(영업)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 제품들의 정보를 중간에서 정리하고, 알려주고, 현지의 정보를 취합하고, 본사 다른 조직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일들이 중요할 수 밖에 없었다. 매일 하는 일은 결국 ‘커뮤니케이션’이었고, 일과 중에는 각 국가 혹은 타 부서 담당자들과 업무 협의를 하고, 아침 일찍 혹은 저녁 늦게 중남미 현지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구 반대편에 있다) 또한, 프리젠테이션 자료 등 자료 작성 업무는 늘 저녁을 먹고 야근을 하면서 했었다.

우리 부서 주요업무의 또 다른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지원’ 담당업무도 해보고 싶었고, 실제로 해외영업부서 3년 차에는 중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 담당으로 보직을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 나는 이미 쿠팡이라는 회사로 이직을 진행 중이었던 때였고, 존경하던 당시 브라질 담당 부장님께 (죄송하게도) 퇴사를 얘기할 수 밖에 없었다. 왜 그 좋은 회사와, 그렇게 가고 싶었던 부서를 떠나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본 글의 가장 아래에 공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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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법인 직원 대상으로 Galaxy S3 제품 교육을 하던 때로 기억한다>

커뮤니케이션

언어

중남미 영업임에도 대부분의 제품 프리젠테이션 및 법인 커뮤니케이션은 영어로 했다. 글로벌 기업이기에 사내(법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영어가 기본이었고, 클라이언트들 대부분이 각 회사의 대표 및 구매 담당 임원급이었기 때문에 영어 발표가 가능할 수 있었다. 또한, 중남미 영업부서의 담당자라고 해서 모두 포르투갈어(브라질)나 스페인어(그 외 중남미)를 다 잘 했던 것도 아니다. 솔직히 스페인어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했던 분들은 20-30%도 안 되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은, 스페인어 전공자가 아님에도 정말 유창한 스페인어로 멕시코 법인 직원들을 다독거리고 클라이언트와 소통을 하셨던 분으로 중남미의 에이스 중 한 분이셨다. 네덜란드에 9년 살았음에도 아직까지 기초 수준의 Dutch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내 영어 수준과 영어 실력을 어떻게 늘렸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글 을 통해 확인해보시는 게 좋겠다. 하나만 짧게 언급하자면, 영어 발표 및 리더십 스킬을 향상시키는 데 목적을 둔 Toastmasters라는 조직의 활동을 오랫동안 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해외 영업부서에서 제품 프리젠테이션을 100회 이상 할 수 있게 도와준 것 같다. 발표는 자신감이다.

자료 작성

정확한 자료를 만들어 현지에 배포를 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이다. 워낙 제품의 종류가 많고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이런 내용들을 본사의 담당자인 내가 각 법인/지사에 전달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신제품 관련 자료의 경우 물론 본사의 상품기획이나 마케팅 팀에서 기본 자료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백지에 글씨를 채우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중남미향으로 개발되는 제품의 사양(spec)이 다르고, 가격 및 일정 등도 다르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수정해야 했다. 관련 부서와 두번, 세번 확인하고 배포하는 것은 물론이다.

클라이언트 미팅의 경우, 기존 자료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스토리를 짜서 처음부터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는 해당 거래선 담당자(본사, 법인)와 미리 조율을 한 후, 해당 미팅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따라 프리젠테이션의 스토리 라인과 공개할 정보를 결정하고 자료를 만들어 발표를 하곤 했다. 특히 제안 가격 확인은 필수다. 실수로라도 잘못된 클라이언트에게 offer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프리젠테이션

클라이언트 미팅은 항상 긴장된다. 그들이 본사를 방문할 때면 부서장인 전무 및 다른 임원과 상사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기도 했고, 발표 대상자도 모두 (클라이언트 회사의) 대표(CEO)나 구매담당 임원급이다. 나보다 잔뼈가 굵은 분들 앞에서 제품 포트폴리오를 소개하고 각 제품별 특징을, 특히 신제품의 특장점을, 소개해야 한다. 100번을 넘게 발표를 했지만 모든 미팅은 분위기가 다 다르고 같은 내용의 발표라도 다른 방향으로 전개가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클라이언트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우리(법인)와 관계는 어떤지, 여지껏 판매량은 어떤지, 기존 불만은 어떤 것이었는지, 이 거래선이 가장 많이/적게 판매한 우리 제품은 무엇인지 등 최대한 많은 정보를 사전에 확보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프리젠테이션에서 내가 강조하거나 피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인지 미리 생각할 수 있고, 발표 중 받을 수 있는 질문도 미리 예상해 볼 수 있다. 민감한 질문들은 이미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며, 이에 대한 답변을 해당 클라이언트를 담당하는 우리 측 account manager와 미리 합을 맞춰 놓으면 훨씬 마음 편하게 발표를 할 수 있다. 영업은 결국 누군가에게 제품을 파는 것이고, 상대방이 가려울 만한 곳을 잘 긁어주어야 판매로 전환이 더 쉬워진다.

긴장도 됐지만 난 그 프리젠테이션들을 나름 즐겼다.

출장

단 2년만 근무했지만, 그 2년의 1/6을 하늘 혹은 출장지에서 보냈다. 출장의 목적은 단 하나, 제품 프리젠테이션이었다. (이는 내가 제품 포트폴리오 담당자였기 때문이며, 다른 국가/사업자 담당자들은 각 국가로 출장을 가서 현지 주재원이나 직원들 지원을 실시간으로 해주곤 했다.)

당시는 반기(6개월)마다 플래그쉽 제품이 출시가 되는 사이클이었다. 봄에 Galaxy S 시리즈가, 가을에 Galaxy Note 시리즈가 공개된다. 나는 이 신제품들의 샘플을 들고 여러 국가를 돌면서 제품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예를 들어, 데모 가능한 Galaxy Note 4의 신제품 샘플이 이번 주에 나온다고 하면 나는 이를 들고 주말에 비행기를 타서 브라질 → 아르헨티나 → 칠레 → 페루 → 멕시코 → 중미의 다른 국가 등을 돌고 2주만에 한국에 돌아오는 일정이다. 브라질 내에서는 법인과 주요 클라이언트들이 있는 수도 상파울로에서 2-3일 지내면서 하루에 2-3 차례 클라이언트 미팅을 하고, 법인 직원들 대상으로도 신제품 교육을 하고, Samsung Mobile 리테일샵을 방문을 하고, 또 다른 하루는 주요 클라이언트(4대 통신사 중 하나인 Oi 였던 걸로 기억) 하나가 있는 리우데자네이루도 방문해서 1-2개 미팅을 하고 당일 비행기로 다시 상파울로로 돌아온 후, 그 다음 날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이동을 하는 식이었다. 이 일정을 4-6개 나라를 반복하는 것이니 꽤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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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체력이 좋았다. 밤에 이동해서 다음 날 아침 미팅을 한다>

출장을 갈때면 늘 샘플 때문에 고생이었다. 신제품 샘플이 비행기 탈 시간 전에 내 손에 들어와야 했고, 플래그쉽 신제품 외에도 다른 모델들의 샘플들도 한 두 개씩 챙겨가야 했다. 항상 15-25개 정도의 휴대폰 샘플을 들고 다녔고, 인천공항에서 나갈 때, 각 국가들을 들어가고 나올 때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공식적인 프로세스를 따르려면 당국에 신고를 먼저 하고 반입을 해야 하지만, 워낙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기에, 분초를 다투며 4-6개 국가를 다녀야 했던 일정 때문에 솔직히 (마치) 밀반입같이 샘플들을 들고 입국을 하고 업무를 마친 후 그대로 갖고 출국(이동)을 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하루 업무를 마치면 동행했던 분들 (대부분 상사)이나 주재원분들과 저녁을 먹고 호텔로 밤 11시가 넘어 돌아온다. 하루 종일 미팅을 하고 (대부분) 술도 여러 잔 하고 돌아온 상태이기 때문에 바로 자고 싶지만 중요한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하나는 샘플의 배터리를 충전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고서를 쓰는 것이다. 제품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클라이언트 반응은 어땠는지, 우리가 offer한 가격과 구매량에 대한 반응은 어떤지, 제품 피드백은 어떤지, 그 외 다른 이슈는 없었는지 등을 워드로 정리한 후 본사로 보내놓고 잠을 청했다. 너무 피곤한 경우, 다음 날 아침 5-6시 경에 본사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고, 국가 이동을 위해 공항에 가서 라운지 혹은 벤치에서 보고서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긴장되고 힘들었던 출장들이었지만 내가 얻었던 것이라면 경험과 마일리지였겠다. 밤에 혼자 공항에 내려 스페인어로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고 식당에서 주문을 하는 등 기초 수준의 스페인어로 현지인들과 소통을 했던 기억들이 참 좋았다. 현지에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도 아직 기억에 남는다. 특히 부에노스 아이레스(아르헨티나)에서 먹었던 스테이크와 Malbec 와인, 아사도 스테이크들, 페루 리마의 해변 식당에서 먹었던 세비체(생선회가 들어간 요리),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에서 먹었던 악어고기 세비체, 과테말라의 노천 식당에서 먹은 음식들과 악기 연주자분들, 칠레의 맛있는 와인 등 맛있는 음식들을 정말 많이 먹었다.

비즈니스석도 처음으로 타봤다. 내 첫 비즈니스석 경험은 운 덕분이었다. A380(2층짜리 가장 큰 항공기)을 타고 미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체크인을 하고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에 막 앉았을 무렵 승무원이 와서 “double booking이 되어서, 죄송하지만 위층으로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라고 물어보는게 아닌가? 미소를 최대한 감추며 캐리어를 꺼내 위로 이동할 때의 그 기분 — 말로만 듣던 ‘태평양을 누워서’ 가는 경험을 했다. 그 이후 과장이 되었을 때도 여러 번 비즈니스 석을 탈 수 있었다. 당시 삼성전자 사내 정책으로 ‘과장급 이상이고 총 비행 시간이 20시간 이상’이면 비즈니스 석을 탈 수 있었다. 인천에서 중남미까지는 항상 미국을 경유해서 갔고, 중미보다 남쪽 국가들을 갈 때면 늘 20시간을 넘겼기 때문에 올때 혹은 갈때 비즈니스 석을 이용할 수 있었다. 좋아보이겠지만 2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면 비즈니스 석도 힘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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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고기 세비체. 생선회 세비체랑 크게 다르진 않았던 것 같다>

또한, 장거리 비행을 하기 때문에 마일리지도 많이 쌓였다. 한 번 출장을 가면 1만 마일 이상이 쌓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게 쌓인 마일리지는 나중에 퇴사 후에 아내와 여행을 할 때 썼던 걸로 기억한다.

아쉽게도 출장 중에 여행/관광은 많이 못했다. 일정이 워낙 빡셌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퇴근 시간 후에도 법인 사무실에 남아 업무 정리를 하고 주재원과 함께 식사를 하고 밤 늦게 호텔로 돌아갔고, 주말에는 주로 공항에서 다른 국가로 이동을 했다. 그나마 하루 정도 남는 시간에 도시 관광을 조금 한 정도이다. 예를 들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보카(La Boca; 그 유명한 축구팀 보카 주니어스가 있는 동네)를 구경하고 시장에서 아사도 고기를 맛본다던지, 상파울로에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 페스티벌을 구경하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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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 아이레스 보카>

무엇을 배웠나

2년 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해외영업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솔직히 이 글 하나에 다 담기도 힘들고 글로 풀어내기도 힘들 것 같지만 일단 아래와 같이 짧게 열거해 본다.

  • 기본적인 B2B 구매 프로세스
  •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을 어떻게 준비하고 수행해야 하는지 (위에 많이 언급했음)
  • 기본적인 제조/수출/물류/SCM 관련 지식과 경험. 특히 삼성전자는 생산기지가 여러 곳(베트남, 중국, 브라질 등)에 있고, 중남미 나라별 정책/요구사항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맥락들 안에서 Lead time을 어림잡고 forecast를 하는 등의 활동이 모두 학습의 대상이었다.
  • 국가별로 제품의 PLC(Product Life Cycle)에 따른 가격 변경과 제품 포트폴리오 관리.
  • 리서치 자료 (예, 지난 달 중남미 전체 스마트폰 모델별 판매규모)를 기반으로 국가별 시장점유율 에측 및 제품 전략 수립
  • 리테일 마케팅의 기본
  • 스페인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삼성전자 시절에는 수출과 무역의 ‘실무’를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그림을 보고 무역이 일어나도록 하는 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제조업(삼성전자는 제조업이다)에서 어떻게 제품을 기획하고 제조하고 이를 판매까지 이어지게 하는지, 해외 영업과 마케팅은 어떻게 하는지, 생산과 선적, 판매 등 SCM 측면 등의 전반적인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누구에겐 별거 아닌 숫자일 수 있지만) 백 번 넘게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제품 프리젠테이션 및 데모를 했던 경험도 추억과 함께 자신감으로도 돌아왔다.

왜 그만뒀나?

해외영업 직무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해외영업을 하면서 느낀 점 때문이다.

나는 대부분의 클라이언트 미팅을 좋은 회의실에서 의사결정자인 임원급과 했다. 이런 출장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비즈니스석도 타보고….) 뭔가 어깨에 뽕이 올라간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 페루 혹은 아르헨티나의 대형 리테일러와 미팅을 할 때 나는 다른 경험을 했다. 북적거리는 Seller 미팅 구역에서 의자에 앉아서 다른 십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내 담당 매니저(MD)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매니저와 함께 작은 회의실에서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면서 미팅을 했다. 작은 회사에서 영업을 시작한 분들께선 당연한 것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지만 나에겐 좀 다른 경험이었다. 이때 들었던 생각이 ‘내가 삼성전자 껍데기를 벗고 있다면 이 사람들이 나를 만나주기나 할까?’였다. 내가 회사 브랜드 없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답은 ‘너무 늦기 전에 대기업을 떠나자’였다.

또한, 당시 나는 갓 태어난 아기가 있는 애기 아빠였다. 이대로 중남미 영업부서에 있으면 몇 년 후에 주재원으로 갈 것이 틀림없었다. 해외 주재원. 멋지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그 주재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고 있었다. 특정 국가들의 경우 치안 문제 때문에 주재원 가족들도 답답한 삶을 살아야 했다. 밖에 맘 편하게 나가지도 못하는데 (주재원인) 남편은 맨날 야근하고 늦게 들어오고 주말엔 법인장이랑 골프치러 나가는 환경이 내 가족에게 — 특히 아내 — 얼마나 힘든 환경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내가 존경하던 (해외 법인에 나가 계신) 부장님과 차장님이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지는 걸 봤기 때문이다. 재밌고 보람된 일처럼 보이지만 내 몸 망가뜨리고 가족들이 힘들다면 이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산다고 오바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주재원의 삶은 내가 살고 싶은 삶과 결이 달랐다.

그래서 나가서 부딪혀보자고 생각했고, 좋은 기회에 해외영업은 아니지만 쿠팡이라는 당시 성장하기 시작한 회사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쿠팡에서의 경력 덕분에 네덜란드로도 오게 되었으니, 재밌게도 주재원은 아니지만 또 다른 기회로 해외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수출과 해외영업에 대한 로망은 남아있다. 그리고 중남미에 대한 그리움도 남아있다. 30대 초반의 그 2년을 정말 진하게 살았던 것 같고 비행기 갈아타며 중남미 십여개 나라(세보니 Telefonica의 본사가 있는 스페인 포함 12개 나라 출장을 다녔다)를 돌아다니던 그때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개발자의 해외영업 직군 전환기 (해외영업 이야기 1부)

“저는 해외영업부서로 가고 싶습니다!”

2007년 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입사 후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인사팀과 면담을 했을 때다. 문제는 내가 엔지니어 직군으로 입사를 한, 그것도 대학 시절 1년 동안 회사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입사한 ‘기술’ 장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런 놈이 입사하자마자 해외영업을 하고 싶다고 하니 인사담당자들은 아마 “이 ㅅㄲ 미쳤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 의견은 당연히 무시당하고 난 SW 개발부서로 배치됐다.


“책임님, 저 해외영업 해보고 싶습니다.”

SW개발부서에서 몇 달 간 지낸 후 팀장님과 면담을 할 때였다. 팀장님은 좋은 말로 일단 몇 년 간 더 일해보고 그래도 팀 이동을 하고 싶으면 다시 얘기해보자고 했다. 재밌는 건, 그 날 저녁 팀 회식이 있었는데, 회식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한 선배가 “야 인용아, 너 딴 데 가고 싶다고 얘기했다며?”라고 대놓고 물어봤다. 팀장님과 1:1 면담을 한 단 몇 시간 이후였다.

아마도 (군대로 따지자면) 관심사병으로 분류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내 SW개발 능력은 눈에 띌 정도로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주위의 엔지니어들과 달랐던 건, 더 나은 영어 실력(내 영어 관련된 얘기는 여기를 확인) 그리고 ‘나서는’ 성향(MBTI로 따지면 ‘E’ 성향)이었다. 사내행사에서 춤도 추고, 기타치며 노래도 부르고, 그 행사들을 기획하고, 매 주말마다‘ 문화체험기(책, 콘서트, 영화 감상 글)’ 글을 써서 월요일 오전에 백여명에게 보내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인도에 새로 설립한 SW연구소와의 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팀장님은 나를 지목했고, 나는 부서(300명 규모)의 대표로 인도에 가서 엔지니어/테스터들을 교육하고, 양 부서 간의 협업을 원활히 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문서화를 주도했다.

그럼에도 내 해외영업의 꿈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졌다. 회사에서는 각 부서별로 역할이 다르다. 그 당시 내가 느낀 SW개발팀의 위치는 해외영업, 검증(테스트), 심지어 HW개발실보다 아래였다.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해외영업과의 관계만 살짝 얘기하자면, 보통 해외영업부서에서 클라이언트와 협의를 하여 요구사항을 정리하면, SW개발부서에서는 그 요구사항을 ‘구현’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정말 안되는 걸 되게 할 수는 없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해외영업은 항상 우리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납기일을 지키도록 푸쉬하는 위치였다. 그리고 솔직히 ‘뭔가 멋있었다’. 더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직군 전환을 할 수 있을지 알아봤다. 정확한 기준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난 몇 년 간 인사고과가 몇 이상이고 영어 말하기(OPIC) 점수가 Advanced Low’(최고 점수) 여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OPIC 시험을 봤고 Advanced Low 점수를 얻어냈다. 내가 입사 2년차 였을 때였던 것 같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두근두근 긴장된 마음으로 직군전환 신청서를 작성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실제로 인사팀에서 연락이 온 건 꽤 오래 지난 후, 입사 4년차 때였다. 갤럭시S가 막 출시됐던 때였고, 회사에서는 스마트폰에 탑재될 SW서비스들을 기획할 부서와 사람이 필요했다. 내 최종 목표는 여전히 해외 영업이었지만 같은 ‘상품전략팀’에 있는 상품기획부서도 재미있어 보였다. 일단 해보자고 생각했다. 부서장(상무)과 면담을 실시하고 팀 이동 결정이 되었다. 그때 기분은 참으로 미묘했다. 기쁘기도 했지만 긴장도 많이 됐다. 기술과 개발 이외에는 아는 게 없었는데 마케팅 직군으로 이동을 한 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사내에서는 E(엔지니어)직군, M(마케팅)직군으로 분류했다.)

2010년 9월, SW서비스기획부서로 출근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첫 주간미팅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예를 들면, ‘revenue share’라는 쉬운 말도 정확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바로 그 다음 주에 갤럭시 탭(첫번째 모델)에 들어갈 서비스의 파트너업체(미국, 캐나다)들과 3일 동안 영어로 워크숍을 했고, 대화의 반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매일 야근을 하며 문서를 읽고 일하고 공부했다. 그러던 중 팀 내부에서 담당 업무 조정이 있었고 나는 중남미(아메리카 대륙에서 멕시코부터 그 남쪽 국가들) 국가들에 출시할 제품들에 탑재될 SW서비스를 담당하는 업무를 하게 되었다. 중남미 해외영업부서와 가깝게 붙어 일하게 되었고, 갤럭시S3 출시 지원을 위한 (9일 동안 5개 나라를 돌며 프리젠테이션과 신제품 데모를 하는) 출장에도 함께 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중남미 해외영업부서의 실무 담당자들 뿐 아니라 중남미 국가에 있는 주재원들과도 가까워지게 되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해외영업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을 전했고, 결국 중남미해외영업 부서장(전무)까지 만나 면담을 했다.

“저 해외영업 가고 싶습니다.”

당시 내 팀장에게 말했다. 큰 소리를 내면서 논쟁까지 벌였고 (복잡한 스토리들은 생략하고) 결국 2013년 3월 꿈에 그리던 해외영업부서에서 내 직장생활 세 번째 직군(SW개발 → 상품기획 → 해외영업)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 전공 공부만 하고 SW개발 일만 하던 나는 어떻게 해외영업부서로 이동할 수 있었을까? 위를 보면 알겠지만 나는 6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계속 어필을 했다. 내 상사(팀장)들은 모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았다. 솔직히 내 인사고과에 도움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내 상사들은 내 의지와 성향을 이해했고, 필요할 때마다 나에게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예를 들면, 순수한 SW개발이 아닌 해외연구소와의 협업의 구심점 역할을 맡긴다던지, 스마트폰/태블릿 SW서비스기획의 중남미 담당을 맡긴다는 식으로 ‘해외 업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런 점들이 모여 결국 해외영업부서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영어 실력을 빼놓을 수 없다. 회사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당시(2010년 경)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내에서 마케팅 직군으로 이동하려면 높은 영어 말하기 시점 점수가 필요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점수를 충족했을 뿐더러 개발실에서 해외 소통 업무를 계속했고 주말마다 영어 토론 모임에 나가 말하기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했다. 정말 cliche 같은 말이지만 ‘준비가 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 맞다. 나는 거기다 ‘기회를 만들려면 내 주위 사람들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 눈치 보지 말고 계속 질러보면 결국 기회는 오지 않을까 한다. 안되면 말고.

중남미영업팀에서 첫날도 기억한다. 그 어색했던 공기와 중압감. 전무 주관하에 매주 진행하는 실적 관련 회의 등 여지껏과는 다르게 ‘숫자’로 얘기하는 환경 등 개발실에서 상품기획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보다 오히려 더 변화가 컸던 느낌이다. 그래도 적응을 잘 해서 다음 해에 흔히 말하는 ‘특진(특별 진급)’으로 동기들보다 먼저 과장 직급을 달고, 1년의 ¼ (3개월)을 출장지에서 보내면서 100차례 넘는 거래선과의 미팅에서 제품 포트폴리오 및 데모 프리젠테이션을 도맡아 하는 등 다이내믹한 2년의 시간을 보냈던 시절이었다. 지난 19년의 직장생활 중 손꼽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재밌었던 시간이었다.

<출장 다니던 시절, 아침 호텔방에서 출근 준비하며>

인생 참으로 재미있다. 한때는 이게 전부인 것처럼 중남미로 (해외 수출 관련) 일을 했었는데, 지금은 저 멀리 유럽에서 한국의 수출을 돕는 일을 시작하고 있다니. 장기적인 목표 없이 재미와 열정 따라 뛰어다녔던 지난 20년이지만,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뭐든지 허투루 하면 안되고 어떤 인연이든 소중히 해야 한다.

이 해외영업부서에서 무슨 일을 했고, 어떤 것을 배웠는지는 다음 글에서 풀어내보겠다. 관심 있으신 분은 본 매거진 혹은 저를 구독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내일 뭐 해먹지?

내일 뭐 해먹지?

아마 모든 사람들이 매일 하는 고민일 것이다. 삼시세끼 누군가가 해주는 밥을 먹거나 먹을 것이 모자라서 메뉴의 고민도 사치일 수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선 말이다.

네덜란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은 아침과 점심을 회사에서 먹었고 퇴근 후 저녁은 주로 아내가 해주었다. 코로나19로 만 1년 동안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은 패턴이 조금 달라졌다. 아침은 주로 씨리얼 혹은 샌드위치, 점심과 저녁은 아내와 내가 요리를 했지만 아내가 좀 더 많이 한 편이었다. 이 패턴이 확 바뀐 계기는 둘째의 출산이었다.

작년 11월 30일 둘째가 태어났다. 상상 가능하겠지만 신생아는 지속적인 케어가 필요하고 모유를 먹는다. 끊임없이 우는 아이를 달래다보면 부모는 금방 지친다. 특히 아기와 계속 붙어있는 엄마는 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지치기 마련이다. 엄마(부모님) 찬스를 쓸 수 없는 해외에 있는데다 배달 음식이나 외식도 비싸기 때문에 나는 집의 단독 주방장이 되었다.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잘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6개월 동안 많이 늘었다) 그렇기에 요리를 해야 하는 건 큰 부담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저녁 요리를 준비하는 오후 5시 – 6시 시간을 업무(오전 9시 – 오후 5시)의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으로 활용하였다. 주방에서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요리를 하며 맥주 한 병씩 마시는 그 순간은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가끔씩 실패하기도 했지만 유투브에서 봐왔던 여러가지 요리를 시도해보는 것도 큰 재미였다. 하지만 3-4주 정도 지난 후 부터는 매일 새로운 요리를 내놓기 힘들어졌다. 흔히 말하는 ‘레파토리가 떨어졌다’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일 뭐 해먹지?

나는 음식을 먼저 생각하고 요리를 하는 편이 아닌, 있는 재료를 보고 음식을 구상해서 요리를 하는 편이다. 이에 하루에도 몇 번씩 냉장고를 열고 닫을 때 냉장고 내의 재고를 스캔하고 그걸 기반으로 오늘 해 먹을 요리를 생각했다. 물론 어떤 때는 먹고 싶은 메뉴를 기반으로 장을 봐와서 요리를 해먹기도 한다. 어떤 방식이든 ‘메뉴’를 정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오늘/내일 뭐 해먹지?’라는 질문이 이렇게 힘든 것임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 요리하던 때는 하지 않던 고민이었다. 심지어 밤에 조깅을 하며 비즈니스 팟캐스트를 듣는 와중에도 문득문득 ‘내일 뭐 해먹지?’라는 고민을 무의식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직업병 때문일까? 이런 고민을 해결하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가지 방안을 고민해봤다.

우선 요리도 결국 냉장고에 있는 재료(재고)를 기반으로 요리(공급)를 하는 것이기에, 스트레드시트에 주요 레시피의 기본 재료들을 표기해놓고, 재고(냉장고 내에 있는 재료) 상태에 따라 메뉴를 결정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봤다. 예를 들어, 냉장고에 당근, 버섯이 있고 양파도 있는 상태(기본 재료)에 스파게티면(탄수화물)이 꽤 많이 남아있는 상태면 채소와 치킨스톡을 사용해 육수를 낸 후 우유를 추가해서 간단한 크림 스파게티를 만들 수 있다. 지금 재고가 있는 당근, 버섯, 양파, 스파게티면과 같은 재료들을 ‘O'(요리에 필요한 재료라는 뜻) 해놓은 레시피만 스프레드시트에서 찾아서 요리를 하면 된다.

하지만 이 방식의 단점이라면 ‘수요(먹고 싶은 요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며, 이에 따라 있는 재료로만 요리를 하게 되어 메뉴가 단조로워 진다. (그래서 고객님의 항의가 있었다) 그래서 ‘수요’ 또한 중요한 요인에 넣기로 하였다. 그렇다. 그전까진 주방장 마음대로 메뉴를 정했다는 얘기다.

내일 뭐 해먹지?

수요 파악이라고 해봤자 1) 아내가 먹고 싶은 것, 2) 첫째 아이가 먹고 싶은 것, 3) 내가 먹고 싶은 것 셋 중의 하나이다. 앞으로 2-3일간의 수요를 파악해서 재고 공급(장 보기)을 하고 그걸 기반으로 요리를 하는 패턴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먹고 싶은 거 있어?’라고 물어봤자 생각보다 작은 풀에서 답이 나온다. 며칠, 몇 주 지나면 그 메뉴가 그 메뉴라는 것이다. 다시 그 질문으로 돌아오게 됐다.

내일 뭐 해먹지?

유투브에서 더 다양한 요리 채널을 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레시피가 있으면 저장해놓고 필요한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백종원 아저씨, 에드워드권 아저씨 채널은 진리이고, 고든램지, 이탈리아 할아버지, 중화요리 셰프분들의 유투브 채널을 섭렵하며 다양한 요리들을 알아보았다. (지금도 내 유투브 추천의 1/3은 요리, 1/3은 농구, 나머지 1/3은 정치 및 시사 관련 컨텐츠다) 이후 메뉴에 대한 고민을 좀 덜 하게 되었다. 요리 동영상을 계속 보면서 ‘패턴’에 대해 익히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요리들이 다 달라보이지만 결국 기본 베이스는 비슷하다. 그 베이스를 알면 그걸 기반으로 더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게 된다.

이제 나는 (1) 냉장고의 재고, (2) 고객(아내, 첫째 아이)의 요구, (3) 유투브에서 배운 신메뉴를 머리 속에서 프로세싱하여 다음 며칠 간의 메뉴를 생각해 낸다. 그리고 ‘퓨전 요리’를 나름대로 연구해서 시도해 보기도 한다. 나만의 레시피인 퓨전 요리는 실패율(고객의 클레임 기반)이 조금 더 높아지긴 하지만 매일 똑같은 음식 먹는 것을 싫어하고 comfort zone을 벗어나는 것을 즐기는 나에겐 좋은 동기부여 수단이다.

그럼 이제 문제가 해결됐을까? ‘내일 뭐 해먹지?’는 이제 답하기 쉬운 질문일까?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처럼 보이는 단독 주방장 체제 — 둘째 출산 후 백일이 지나면서 아내도 가끔씩 요리를 하기 시작했지만 — 이지만, 여전히 “내일 뭐 해먹지?”는 쉽게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수요의 예측’이란 게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내일 삼계탕이 먹고 싶다가도 막상 내일이 되면 자장면이 먹고 싶은 게 우리의 마음이다. 예측한 수요가 그대로 유지되기 힘들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아무리 내가 할 수 있는 요리의 풀이 넓어졌다고 하지만, 나는 족발이나 돼지국밥 같이 재료를 푸욱 끓여야 하는 요리나, 발효 및 오브닝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제빵제과도 기피하는 편이다. 재택근무가 끝나는 5시부터 시작해서 1시간 내에 요리를 마쳐야, 저녁을 일찍 먹고 아이를 8시에 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요리의 수에 제약이 있다. 요리의 수에 제약이 있는 상태에서 ‘맨날 먹는 요리’를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기에 여전히 ‘내일 뭐 해먹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자동화하기 힘든 ‘인간적인’ 영역으로 남아 있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4개월 동안 이런 생활을 했다. 요리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솔직히 피곤한 일과 후에는 하기 싫을 때도 있다.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는 밥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아직 4개월 밖에 안되었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느낀 게 있다면 ‘삼시세끼 밥 해주는 것’만 해도 상당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주말에는 아침, 점심, 저녁을 내가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한 아침을 만들어 같이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책을 조금 읽다가, 첫째랑 놀다보면 점심을 해야 한다. 점심을 만들어 먹고 설겆이를 하고 조금 쉬다가 아이랑 밖에서 놀다 돌아오면 저녁을 해야 할 시간이다. 저녁을 만들어 먹고 치우고 씻고 아이를 재우고 저녁 8시가 넘어가면 그제서야 온전한 내 시간이다. 나는 4개월 밖에 안했지만 매일이 이런 패턴인 분들도 많을 것이다. 쉽지 않을 것 같다. 꼭 우리네 어머님들이나 주부를 위한 찬가는 아니다. 꼭 여성들만 그럴 것이라는 것도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성별을 떠나 그러한 상황에 있고 그럼에도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계신 모든 분들에 대한 존경이다. 내가 책을 출판하고나서 ‘책이 재미가 있든 없든 책을 출판까지 해낸 모든 작가들은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결이다.

생각해보니 한 번도 아내에게 (아내가 요리를 주로 할 무렵) ‘나 XXX 먹고 싶어. 해줄 수 있어?’ 라고 말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내가 더 부담감을 가질 것 같았고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마음 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내가 요리를 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에 ‘아무거나’라는 대답보다는 먹고 싶은 메뉴를 확실히 얘기하는 게 부담을 덜 주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뜬금없지만 이것도 4개월 간의 ‘내일 뭐 해먹지?’ 고민 끝에 배운 것 중 한가지겠다.

* 나는 요리 사진을 잘 안 찍는다. 일단 저녁에 조명이 예쁘지 않으며 요리 뿐 아니라 테이블 세팅 등까지 하다보면 사진 찍을 정신은 없기 때문이다. 그 중 내 스마트폰에 남아 있는 사진들은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간장버터치킨구이를 올린 리조또, 약식 깐풍기, 탄탄면을 흉내낸 국수요리, 게살죽에 고추장삼겹살구이 그리고 맥주 한 잔 하면서 즐기던 요리 과정. 이게 전부다.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 ‘골든 해빗’

누구나 인생의 ‘버킷 리스트’는 있죠. 20대 때 저의 버킷 리스트의 가장 위에 있는 꿈은 (1)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하기, (2) 회사 그만두고 전 세계로 장기 배낭여행을 떠나기, (3) 해외에서 일하면서 살아보기 였습니다. 30대가 되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장기 배낭여행은 좀 힘들어졌습니다만, 우여곡절 끝에 3번(해외에서 일하면서 살기)은 달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작년에 1번(도서 출간)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메일을 뒤져보니 작년(2019) 5월이었네요, 출판사의 편집자님으로부터 첫 연락이 온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고민을 하고,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고, “내가 이 짓을 왜 시작했지…”와 같은 자책도 종종 하였습니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였지만 집필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와 함께 했던 고민은 바로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였습니다.

이 책은 흔히 말하는 자기계발서입니다. 보통 자기계발서라고 하면 ‘성공한 누구누구가 자기가 걸어온 길에서 깨달은 것들을 전해주는 형식’이나, ‘성공한 사람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공통점을 잘 정리해서 알려주는 형식’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 한 번도 내가 ‘성공했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 나름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해외에서 일하기’를 달성한 점은 뿌듯하게 생각하나 제가 누구에게 조언을 해줄만큼 뛰어난 사람은 아니며 아직도 30대로 어린 축에 속하구요.

하지만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책의 모든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따르지 않죠. 다 각자 나름대로 해석을 하고 알아서 받아들입니다. 저도 그랬구요.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건 나의 경험에서 나온 나의 생각인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라는 것. 내가 굳이 ‘자격’에 대해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요.

책은 한국어로 집필했으며 한국에서만 출간합니다. 다음 주(10월 20일)부터 온라인 출고가 되며 그 다음 주(10월 26일 주) 정도에는 서점에서 확인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있기에 실제 어느 서점에 어떻게 깔릴지 실제로 확인은 못하겠습니다. 아쉽게두요. 책에 대한 설명은 아래 링크에 있는 도서 상세 페이지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구매해주시면 좋구요. 🤟🏻

다음 번에는 책을 쓰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닫고 느꼈던 것들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3734493

– 예스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93788210

–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58511920&orderClick=LAG&Kc=

  • ‘골든 해빗’이라는 제목은 솔직히 제가 짓진 않았습니다. 마케팅 측면을 많이 고려한 제목임을 알아 주시길 바랍니다. 😂

농구와 자신감

네덜란드 와서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활동이라 하면 한달에 한 두 번 주말에 회사 동료(혹은 퇴사자)들로 이루어진 그룹원들과 농구를 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 외에는 같이 농구를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엔 긴장도 했고 좀 주눅이 들어있던 건 사실이었다. 탄력 좋은 흑인들이나, 키 크고 힘 좋은 네덜란드나 동유럽 친구들이랑 비교하자면, 나는 체력적, 신체적으로 열세이니까 (30대 후반의 나이에 키 170cm의 단신). 하지만 일년 조금 넘게 같이 운동하다보니 몇 가지 사항만 유의하면 할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1. 기본기 중의 기본기에 충실할 것 : 공을 잘 ‘잡고’, 뺏기지 않고, 동료들에게 패스하여 기회를 열어주는 것. 사실 여지껏 한 번도 공을 잘 ‘잡는게’ 기본기라는 생각 못했는데, 이것을 잘못하면 실책이 많아진다. 실책은 골을 못 넣는 것보다 못한 것이고, 팀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2. 내 장점을 극대화 시키는 것 : 내가 생각했을 때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은 드리블을 하다 바로 위로 올라가 중거리슛을 쏘는 것이다. 아마추어들끼리 게임을 하다보면 사람들의 중거리슛(점퍼) 성공률이 생각보다 낮다. 이것만 잘해도 팀에 많은 도움이 된다.
  3. 3점슛 시도를 해 보는 것 :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이라 항상 자유투 라인 앞뒤 정도 거리에서 점프슛을 쏘곤 했었는데, 가드에게 3점슛이 없으면 제약이 참 많아진다. 연습할 때와 경기 때는 리듬이 틀려진다. 이에 잘 안되더라도 경기 중에 3점슛 시도를 점점 많이 해보고 있다.
  4. 그리고 1, 2, 3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실수해도 주눅들지 않고, 내가 익숙한 움직임으로 내 게임을 뛰면 된다. 그리고, 잘 안되더라도, 그냥 웃어 넘기는 것도 자신감인 것 같다. 스트레스 해소하려고 운동하면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는 일은 피해야겠다.

매일밤 농구 유투브 영상을 보면서 내 마음은 앨런 아이버슨이나 카이리 어빙급이지만 사실상 화려한 드리블러의 꿈은 접었다. 위 3개만 잘해도 팀에 가장 기여를 많이 하는 선수가 될 수 있다. 이에, 한 동안은 위 3개만 집중해서 운동을 해볼까 한다. 3점슛터가 될 수 있을지는 일년 후에 다시 되돌아보는 것으로 하고.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위에 언급한 4가지는 일터에서도 필요한 마음가짐인 것 같다.

  1. 기본기에 충실할 것. 본인 직무에 요구되는 기본적인 사항들은 충실히 수행하고, 이에 대한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히 할 것.
  2. 내 장점을 극대화 시키는 것. 내가 잘못하는 부분을 강화하는 것도 좋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 장점을 찾아 이를 극대화시키는 게 더 필요하다. 사실 ‘잘못하는, 모자라는’ 점을 찾으면 끝이 없다.
  3. 나만의 무기를 찾는 것. 2번과 어느 정도 겹칠 수 있겠지만, 나만의 한 방을 찾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 일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4. 내 생각과 업무에 자신감을 갖는 것. 내가 항상 책임을 피하거나, 일을 개차반처럼 하지 않은 이상, 내가 내 일/제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최소한 내가 어떤 행동이나 말을 했다면 그 뒤에는 적절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게 최선의 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틀린 답은 아닐 것이다. 본인이 한 일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준을 갖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내가 적었지만 사실 2번과 4번은 아직도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다. 논리적으로 따져보자면 2번을 잘 하면 4번이 따라올 가능성도 높겠다. 그럼 앞으로 내 숙제는 일터에서 내 장점을 찾아 더 발전시키는 것일까? 생각해 봐야 하겠다.

농구하면서 깨달은 점을 간단히 Facebook에 남기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본인에 대한 자성(自省)으로 되돌아 올 진 몰랐다. 이런 게 글쓰기의 장점 중 하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