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글쓰기 실력을 늘릴 수 있을까?

고백한다.
나는 사실 군 입대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대학 입학 시 논술도 보지 않았다. 글쓰기가 싫어 논술이 있는 ‘정시’ 대신 ‘특차’로 입학하는 걸 택할 정도였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부터 개인 블로그에, 회사 블로그에 글을 쓰더니, 올해는 처음으로 ‘돈을 받고’ 글을 써보는 경험도 해보았다. 뭐든 관심이 가는 대상이 생기면 훅 파고드는 성격 덕분일 수도 있지만, 나도 나 자신이 언제부터 글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어떤 계기에서 시작을 했고, 무엇이 나를 계속 글을 쓰도록 동기부여를 했을까? 그래서 잠시 뒤돌아 보았다. 크게 보면 3번의 ‘때(계기)’가 있었던 것 같다.

군대에서 편지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2000년 초반에는 군대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은 상상도 못 했고, 개인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훈련소에서부터 가족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랬다. 이 편지들이 내가 제대로 글을 써 본 첫 계기인 것 같다. 가족들과, 밖에 있는 친구들과, 다른 부대에 있는 친구들과, 심지어 외국에 유학 가 있던 친구들과도 편지를 계속 주고받았다. 주로 개인적인 내용이었다.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주고받고, 인생에 대한 고민 조금 하고, 쓸데없는 말도 자주 지껄이는, 그런 소소한 편지들이었다.

그리고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오랜 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신 후 얼마 후에 입대를 했다. 신병 시절 혼자 이불속에서 숨죽여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답답했고 뭔가 토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제대하고도 한동안 일기를 썼다. 그리고 그 습관 덕분인지 혼자 유럽과 중국 배낭여행을 다닐 때도 ‘여행 일기’를 썼고, ‘아랍의 봄’ 운동이 막 시작된 이집트를 여행할 때도 일기를 썼다. (당시 카이로 시내가 불타는 상황이어서 관광지는 문 닫고 공항에서 노숙도 했었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일기를 안 쓰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신입사원 시절 2년간 매주 발송하던 문화 주간지

신입사원 때, 연애를 안(못)하던 시절, 썸녀든, 여사친이든, 혼자든 주말마다 계속 돌아다녔다. 영화를 보고, 여행도 가고, 미술관도 갔다. 휴대폰 제조업체에 개발자로 입사를 했지만, 일이 내 성향에 맞지 않았고, 이에 회사생활이 답답했다. 또한, 대기업이라 굉장히 수직적이었고, 오전 8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9시 반 ~ 11시에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주말은 해방구였다. 한 동안 소개팅을 꽤 많이 했는데, ‘사랑’을 찾아다닌 것보다, ‘맛있는 것 같이 먹고, 같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행위라고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보고, 듣고, 생각한 걸 주말에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걸 매주 월요일 아침에 사내 지인들(우리 팀 포함해서 100여 명)에게 메일로 보냈다. 선배들과 동기로부터 듣는 칭찬과 격려가 동인이었다.

글의 내용은 주로 도서, 영화, 전시회, 공연 리뷰였다. 한 때는 일 년에 책을 70여 권까지 읽었던 적도 있었을 정도로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토해냈다. 20대 후반은 인생과 커리어에 대해 고민이 많은 시기였는데, 아빠가 참으로 보고 싶었다. 아빠와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를 대체할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은 단순히 관용 표현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책 속에서 인생의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다 정리했다. (* 아직도 네이버 블로그에 남아 있는데, 문제는 내가 해외에 있다 보니, 네이버 아이디, 비번을 찾을 수가 없어 관리가 불가한 상황이다)

네덜란드로 이민을 왔고 이직을 했다. 다른 차원의 고민들이 시작됐다.

이직을 하면서 전혀 다른 환경의 국가로 이민을 왔고, 이에 새로운 사람들과 조직문화에 적응하느라 고생을 좀 했다. 그 내용은 브런치(혹은 블로그)의 이전 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은 사회생활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지만, 내가 처한 환경(30대 후반의 나이에 유럽에 있는 글로벌 업체 본사에 현지 채용되어 일하는 케이스)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에 내가 겪은 내용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하고 싶었다.

이 고민들의 해결책 중 많은 부분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편향된 생각은 아닌지 되짚어보고, 결론을 내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들을 매주, 매달 겪으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반복했다. 이런 훈련들이 내가 업무를 잘 수행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지만, 글을 더 잘 쓰기 위한 훈련도 되는 것 같다.

피드백의 중요성

아버지가 투병시절 독일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나와 주고받은 편지가 있다. 그 편지의 내용은 그전에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비평이었다. 중학생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치고는 좀 특이하긴 했다. 그 당시의 나(글쓰기를 싫어하던 나)는 전혀 공감하지 못할 내용이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내가 직장인이 된 후에 우연히 다시 읽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굉장히 달랐다. 몇 장의 편지를 요약하자면 ‘초등학생은 계곡에 핀 꽃을 보고 한 줄로 설명하겠지만, 대학생 즘 되면 이를 몇 장에 걸쳐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나중에 직장생활을 하면 글쓰기가 굉장히 중요하다.’의 내용이었다.

어찌보면 그냥 단순한 편지지만, 암 투병을 하고 계신 분이 독일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와중에 중학생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만큼 꼭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 편지가 내 글에 대한 첫 ‘피드백’인 것 같기도 하다.

10대 시절 글쓰기를 그렇게 무서워했던 것과는 달리, 20대에 들어서는 자연스럽게 글을 쓰기 시작하고, 주위에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반복했다. 사실 글쓰기라는 게 내 머리 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 잘 정리한 후,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잘 보여주는 과정인데, 나는 이 ‘보여주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나는 내 생각을 토해내고 싶었다. 이런 내 성향도 글쓰기 실력이 느는데 한몫을 한 것 같다. 종종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에 ‘다음엔 이런 걸 유의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종종 내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난 후 주위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묻는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얘기가 오해없이 전달이 되는지, 불필요한 내용은 없었는지 등의 질문에 대한 피드백은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나 혼자 쓰는 일기라면 모르겠지만, 결국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읽을 글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오해없이 전달되었는지, 이해하기는 쉬웠는지 등에 대한 확인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무엇이 사람들을 한 회사에 오래 다니게 만들까?

2019년 5월에 ‘일하는 사람들의 컨텐츠 플랫폼’ Publy의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션 글로 발행한 글입니다. Publy에서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중단했기에, 제가 작성했던 본문(‘큐레이터의 말’)을 Publy 동의 하에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삼성전자에서 8년 동안(사실 이제 삼성전자 전체 평균 근속 기간이 10년이 넘었다고 들어서, 8년이 그리 길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 있겠네요) 일 할 수 있었던 요인을 제 경험과 고민을 토대로 풀어내봤습니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었던 비결

나는 첫 직장인 삼성전자에서 8년이나 일했다. 만 8년을 채우고 퇴사하는 날, 시원섭섭했던 그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재밌게도 입사 시 목표는 3년을 채우고 장기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떻게 8년을 일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인생과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바로 배움과 성장이다. 이 부분을 회사가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S/W 엔지니어로 입사 후 3년 간 개발팀에서 일했고, 이후 상품기획 업무 3년, 그리고 해외영업 부서에서 2년 동안 일하며 여러 직무를 경험했다.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성격이었지만, 단순히 계속 ‘다른 일’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사용자와 회사(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개발팀에서 S/W의 일부분을 개발하는 일보다는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의 더 영향력이 커보였고, 실제 고객(스마트폰/태블릿을 구매하는 통신사나 리테일 업체)과의 접점에 있는 해외영업 업무가 더 임팩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쿠팡으로 이직을 결심한 계기 중 하나도 내 제품의 실제 사용자를 더 가까이에서 분석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오해는 마시길. 지금 돌이켜보면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업무는 없었고, 오히려 개발자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운이 좋았는지,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일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여러 직무를 거치면서 나에게 맞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고, 업무 능력도 많이 성장했다. 

스스로 차근차근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회사의 인사 시스템이 이를 지원해주지 않았거나, 보수적인 문화가 가득한 조직이었다면 조직 이동은 힘들었을 것이다. 회사에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 경험을 역으로 생각해 봤다. 회사가 좋은 직원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직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파악한 후, 직원들이 가장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조직과 일을 찾아주는 게 아닐까 한다. 진부하고 나이브한 생각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리소스’를 관리하는 게 아닌 ‘사람’을 관리한다고 생각한다면, 어찌보면 당연한 생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회사의 가치와 문화는 왜 중요한가

이 경험을 역으로 생각해 봤다. 회사가 좋은 직원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UC버클리와 스탠포드 비즈니스스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직원들이 회사에 잘 적응하고 근속할 수 있게 하는 두 가지 요인은 1)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 2) 조직문화와 얼마나 공명할 수 있는지였다고 한다. 

이를 회사(혹은 미래의 창업자)와 직원(혹은 구직자) 입장에서 각각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내가 스타트업의 CEO인데 우리 회사에 직원을 끌어오고, 열심히 일하게 하고, 오랫동안 같이 일 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원들의 입맛에 맞추기보다는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내가 이루고자 했던 일, 풀고자 하는 문제와 지향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잘 뽑는게 최선일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본다면 대표가 없어도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할 것이다. 이를 통해 목표하던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직원의 이탈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직이나 구직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이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가 나와 같은지, 이 회사의 업무 문화가 나와 맞는지 등을 면밀히 알아보고 지원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복지와 보상도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매일 ⅓ 이상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야 하는데 가치와 문화적인 핏이 맞지 않는 조직에서 일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의 경우 네덜란드에 있는 Booking.com으로의 이직을 긍정적으로 고려했던 이유는몇 가지가 있다. 우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동료들과 좌충우돌 영어로 업무를 하는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좀 더 성숙한 제품관리 조직에서 많이 배우고 싶었으며, 한국보다 훨씬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두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승진과 연봉도 중요하지만 가족, 특히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 배움과 성장, 그리고 자율이라는 내가 지향하는 가치·문화와 회사가 어느 정도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해 본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직과 이민을 결정할 수 있었다. 

나를 잘 안다는 것

회사나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가 내가 지향하는 바와 같은 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30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어느 해 연말, 혼자 회고의 시간을 가지면서 종이 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언제 행복한지 등을 써내려가면서 알게된 것이었다.

그 전까지는 스스로를 ‘호기심은 많지만 끈기가 부족하고, 자주 관심사를 바꾸는 사람’으로 파악했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깨닫고 나서는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됐다. 설령 새로운 직장·조직에서 생각보다 성과가 안 난다 하더라도 매달 혹은 매분기 나를 되돌아보면 나는 항상 ‘나아져 있었다’. 그리고 계속 나아지다 보면 예전과 같이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건 조직도 나를 믿어주고 기다려주었기 때문이다. 빠른 시간 안에 숫자로 보이는 성과를 요구하는 조직이었다면 훨씬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직원의 적응과 성장을 기다려주는 것 역시 회사나 조직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문화다. 

창업도 해 본 적 없고, 큰 조직을 이끌어 본 적도 없다.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다만 내가 확실히 아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어하고, 어떤 업무 문화를 좋아하는가’이다. 

이걸 알면 내가 어떤 회사에 가면 더 즐겁고 열정적으로 일 할 수 있을 지 알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창업을 한다면 어떤 조직문화의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바로 알기 위해 노력하고, 회사도 지향하는 가치를 확실히 하고, 더 나아가 회사가 조직원 개개인의 가치를 바로 알아준다면, 직원도 회사도 윈-윈 하고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고 극복하려면?

반년 전,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현 회사의 면접을 통과하고 나서 ‘외국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나에게 큰 장애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어는 업무에 사용할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고(이 글 참고), 그 당시 다니던 회사와 동일한 Product owner라는 직무(이 글 참고)로 그대로 이직을 한 것이었고, 또한 기존 회사들에서 외국인들과의 업무 경험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주에 올린 ‘토론 문화’ 관련된 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네덜란드 이직 3개월 차에 나에게 ‘문화적 차이’는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살아온 환경이 우리를 만든다. 다르다는 걸 인식하는 게 첫 걸음

네덜란드, 미국 등 미주/북유럽 계 서양권 사람들은 비판적으로 토론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렇게 교육받고 자라왔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2년 동안 미국에서 지냈던 것을 제외하면 순수히 한국에서만 30년 이상 살아온 토종이기 때문에, 이해될 때까지 계속 질문하고 상대방을 direct하게 비판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이것이 지난 주에 ‘토론 문화’ 관련 글을 올린 이유이기도 했다. 그 후 한 주 동안 회사 내의 몇몇 사람들에게 내 고민을 열어놓고 의견을 물어봤다. 사람 성격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만 이 고민을 했던 게 아니었다는 것이 재미있었고, 또한 이로 인해 조금 마음이 놓였다. 몇 가지 피드백들을 잠시 소개해본다.

– Data scientist from Russia : “나도 여기 처음 왔을 땐 똑같이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목소리가 높은 동료(기존에 일하던 Data scientist)를 옆에서 보면서 따라 해보니까 극복이 되더라”
– Product director from England : “나는 사실 너와 반대였어. 나는 영국에서 스타트업 쪽에서만 계속 일했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해야 했기 때문에 직설적인 커뮤니케이션 위주였어. 여기(현재 회사) 와서 처음에는 동료 중 한 명을 울리기까지 했고, 그 후 오히려 좀 더 Tone down 하게 되었어”
– Product manager from India : “나도 너처럼 처음에는 직설적인 피드백에 적응하기 힘들었어. 인도도 비평은 돌려서 하는 경향이 있거든. 시간이 해결해 준 것 같아. 너도 그럴거야. Improve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넌 잘 하고 있어. 다만 익숙해지기 시간이 걸릴 뿐이지”
– Business 관련 직무 from America/Korea : “나는 이 전 회사(네덜란드 내 컨설팅 회사)에서 고생을 엄청했어. 네덜란드 사람들은 토론 시 엄청 직설적인데, 나는 말 잘 하기로는 최고인 컨설팅 회사에 입사를 했으니 더 힘들었지.”

정도와 방향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기에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고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이 차이를 좁혀나간다. ‘적응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Gap을 좁혀나가는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이 Gap과 이에 대한 원인을 자가 인식/진단하여 주위 사람들과 공유를 했고, 이런 활동이 어느 정도 내 스트레스와 걱정을 덜어주었다. “Once you identify your sickness, you are halfway cured“라고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젠가 회사에 120% 적응해서 멋지구리하게 일해보리라 하는 생각도 다시 하게 되었다.

위에서 ‘네덜란드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던 한국인’이라고 소개한 친구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자라고 한국 대기업(나와 같은 S모 회사)에서 잠깐 일하다 프랑스 INSEAD에서 MBA를 마치고 암스테르담에 있는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다 현재의 회사로 이직을 했다. 한국인이라고 했지만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한 친구이기에 토종 한국인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겠다. 어쨋든 이 친구가 본인도 이런 차이 때문에 고생을 했다고 했을 때 사실 좀 놀라웠다. 영어가 Native language이고 실제 말도 논리적으로 잘 하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가뜩이나 직설적으로 토론하는 네덜란드에서 말빨이라면 최고라는 컨설턴트(최고 컨설팅 업체 중 하나다)들과 같이 일하다보니, 힘든 점이 좀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똑같은 고생을 했다는 ‘공감’을 넘어서 나는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의견이 절실했기에 이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렇게 해서 추천받은 책이 바로 “The Culture Map” 이라는 책(Amazon 링크)이다. 이 친구도 실제로 이 책을 읽은 후에 고민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바로 책을 빌렸고, 주말 동안 금방 읽었다. 책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 때 문화적 차이로 인해 여러가지 측면에서 나라마다 성향이 다르다. 그 차이를 인식하고, 필요/상황에 따라 이를 좁혀나가면 성공적인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이다.


8가지 측면에서 바라본 문화적 차이

이 책에서는 글로벌 비즈니스(회사 대 회사일 수도 있고, multi culturer team일 수도 있고) 시에 Conflict을 만들 수 있는 원인을 8가지 측면으로 구분하여 나라별로 그 ‘정도’를 측정하여 비교하였다. 그 예를 아래의 그림으로 확인해보자.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저자는 국가별로 아래 8가지 항목을 비교하였다.

  1. 의견 전달이 분명하고 직접적인 방식인지, 문맥의 파악이 중요한 방식인지(전체 맥락 내에서 해석을 해야 하는지 등)
  2. Negative 피드백을 직설적으로 하는지, 돌려서 하는지
  3. 상대방을 설득 시(예, Presentation) 해결책을 중시하는지, 그 원리(결과를 도출한 방식)를 더 중요시하는지
  4. 수평적인 조직문화인지, 수직적인지
  5. 의사결정 시 모두의 동의가 우선시 하는지, Boss가 결정하는 문화인지
  6. ‘능력’으로 신뢰가 생기는지, ‘관계’에서 신뢰가 생기는지
  7. 상대방 의견에 동의 못할 때 바로 맞서는지, 아니면 갈등을 피하는 편인지
  8. 시간 약속에 칼 같은지, 유연한 지

이 책은 내용도 좋지만, 굉장히 이해하기 쉽고, 실제 업무/생활에 적용하기 좋게 구성되어 있다. 누가 MBA 교수 아니랄까봐 실제 사례들을 풍부히 제시한다. 예를 들자면, 미국 회사와 독일 회사가 함께 일할 때 Persuading 항목에서 Application first인 미국 사람은 프리젠테이션 시 바로 결론/해결책부터 얘기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 Principle first에 속하는 독일 사람은 처음부터 그 결론이 어떻게 해서 도출됐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일이 안 풀리게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흥미로운 사례들로 채워져 있다.

본인이 만약 글로벌 비즈니스 혹은 팀워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위 8가지 항목 중 하나로 인해 고생하고 있을 확률이 높을 것 같다. 일단 위 항목들 중 본인의 상황에 적합한 항목을 찾고, 해당 섹션에서 제시하는 해결책(방향)을 참고하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다시 나의 상황으로 돌아와보자. 한국은 꽤 많은 항목에서 네덜란드와 반대 지점에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솔직히 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이며, consensus를 중시하는 의사결정 문화이다. 그리고 disagree도 굉장히 강한 편이다. 반면에 한국 사람은 부정적인 피드백은 돌려서 하고, 수직적인 조직문화이며 의사결정도 Top-down인 편이다. Public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disagree도 좀 꺼려하는 편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네덜란드 회사에 적응을 할 때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한국 내에서 이직만 해도 스트레스가 큰데, 이민에 이직까지 했으니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이상한 것일 수도 있고…)

출처 : Flickr

다름을 인정하자. 조금씩 맞춰나가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 스트레스의 원인이 ‘토론 문화’의 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난 후는 좀 더 세분화하여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문화적인 차이’ 외에 개인 성향도 상황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인이지만 내 스스로 ‘전형적인 한국인 같지 않다’고 느끼는 부분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도 결국 ‘집단 내에서 특수한 경우’이지, 이 집단의 문화적 성향을 완전히 벗어나긴 어렵다고 본다.

학술적으로 내 상황을 분석해보고자 했던 건 아니지만, 차이를 제대로 인식을 해야 제대로 된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어서인지, 더 빠져들어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최근에 내가 하고 있던 고민이 책의 내용과 굉장히 align하고 있기에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는 걸 머리로 다시 한 번 인식하는 게 첫걸음이다. 이것을 계속 의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좀 더 전략적으로 & 조금씩 그 차이를 좁혀나가는 게 머나먼 타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어떻게 전략적으로 접근할까’에 대해서는 이 책의 내용을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다. 네덜란드에서 살고/일하고 있는 나의 예를 계속 들었기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표현을 몇 번 썼지만, 사실 이 책은 외국과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한국 회사, 외국인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한국 회사 직원들에게도 굉장히 유용한 책이라 생각한다.

고로, 이 책 추천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지만 그 일 제대로 하려면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

* 덧글 1 (업데이트) : 오늘은 이스라엘 출신 동료랑 같은 주제로 얘기해봤는데, 워낙에 직설적이고 수평적인 문화로 유명한 이스라엘 사람답게, 본인은 여기(현재 회사) 와서 Tone down 해야 했다고 …

업무용 통화와 퇴근 후 메시지

네덜란드에 있는 회사에서 세 달여간 일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시간 관련해서 한국과 다르다고 느낀 점 몇 가지가 있다. 이번에는 이 내용들을 잠시 다뤄보고자 한다.

1. 업무용으로 전화를 써 본 적이 없다.

일단 나는 IT 기업 개발(Tech)팀에서 Product owner라는 직무로 일하고 있다. 주로 개발자/디자이너/데이터 과학자들과 함께 일하며, 다른 팀과 컨택할 경우도 자주 있으나 그들도 대부분 개발조직 내부에 있다. 파트너 (호텔리어나 숙소 주인) 쪽 Product을 다루기에 그들의 요구사항을 듣기 위해 가끔 호텔리어들을 만나기는 하나, 그들과 직접/자주 컨택할 일은 많지 않다.

한국에서 일할 때도 같은 상황이긴 했다. 파트너가 아닌 실제 고객을 대하는 Product라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허나 같은 상황임에도 두 회사간 1:1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좀 달랐다. 네덜란드에서 세 달 동안 업무를 위한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리고 동료들이 누군가에게 업무상 전화를 하는 걸 본 적도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해봤다.

  1. 나라에 따라 문화가 다르다. 한국에선 급한 일의 경우 자주 전화를 걸어 문제를 해결했으나, 여기선 메신저(사내 메신저)로 @태그를 걸어 Notification을 보내고 기다린다. 사전 동의없이 상대방의 시간을 직접적으로 뺏는 행위를 지양하는 것 같다.
  2. 그리고 이 @태그를 보내면 답변을 곧 하리란 믿음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답변도 생각보다 빠르다.
  3. 영어가 공용어이나 모든 사람들이 영어로 원활히 통화하는 건 아니다. Written English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4. 뭐든지 증거를 남기는 게 좋다. 전화 통화는 휘발적이다.

이게 좋은 문화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편한 점도 있으나 답답한 점이 더 크다. 물론,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화영어가 좀 더 비효율적인 부분도 있으나, 급한 경우는 전화로 얘기하는 게 빠를 때도 많은데 말이다.

2. 업무시간 후에 메세지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딱 한 명 (이 사람 역시 성격 급한 PO다) 제외하고는 저녁 7시 이후에 업무성격의 메시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도 그런 메시지를 보낼 수가 없었다. 어디 명문화된 Rule은 아니나 분위기가 그렇다.

이 역시 장단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애기를 재우고 밤에 종종 일하곤 하는데, 이때 팀과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도 참았다가 다음 날 아침에 보내곤 한다. Work-life balance를 꿈꾸며 네덜란드에 왔는데, 이런 걸로 답답해하는 내 모습을 보며 참 모순적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같이 고민하고 싶을 뿐인데 말이다. (개발자분들이 보면 싫어할 상이다)

짧게 정리하자면, 업무가 사생활을 침해할 수는 없다는 게 전체적인 분위기인 것 같다. 유사한 의미로, 휴가 사용 관련해서도 관대한 편이고, 휴가 중에는 업무 관련 커뮤니케이션은 전혀 하지 않는다.

 


간만에 짧은 글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에 적응해가고 있으나, 반면에 모자란 점도  많이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좀 더 잘하고 싶고(비즈니스 성과), 개발팀을 잘 리드하고 싶다는 마음(리더쉽)이 큰 상황이나, 언어적인/상황적인 요인 때문에 생각만큼 잘 되진 않는다. 이에 마음이 급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으나, 위에서 언급한 긍정적인 부분들 덕분에 너무 쪼이지 않고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 같다.

유럽에서 Product manager(owner)로 일하는데 있어서 느낀 부분이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문화적인 부분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짧은 시간 내에 중요한 일부터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것이다.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되 팀원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결정이어야 하기에(a.k.a 데이터+논리에 기반한 결정) 효율적인 업무는 정말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