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와 자신감

네덜란드 와서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활동이라 하면 한달에 한 두 번 주말에 회사 동료(혹은 퇴사자)들로 이루어진 그룹원들과 농구를 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 외에는 같이 농구를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엔 긴장도 했고 좀 주눅이 들어있던 건 사실이었다. 탄력 좋은 흑인들이나, 키 크고 힘 좋은 네덜란드나 동유럽 친구들이랑 비교하자면, 나는 체력적, 신체적으로 열세이니까 (30대 후반의 나이에 키 170cm의 단신). 하지만 일년 조금 넘게 같이 운동하다보니 몇 가지 사항만 유의하면 할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1. 기본기 중의 기본기에 충실할 것 : 공을 잘 ‘잡고’, 뺏기지 않고, 동료들에게 패스하여 기회를 열어주는 것. 사실 여지껏 한 번도 공을 잘 ‘잡는게’ 기본기라는 생각 못했는데, 이것을 잘못하면 실책이 많아진다. 실책은 골을 못 넣는 것보다 못한 것이고, 팀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2. 내 장점을 극대화 시키는 것 : 내가 생각했을 때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은 드리블을 하다 바로 위로 올라가 중거리슛을 쏘는 것이다. 아마추어들끼리 게임을 하다보면 사람들의 중거리슛(점퍼) 성공률이 생각보다 낮다. 이것만 잘해도 팀에 많은 도움이 된다.
  3. 3점슛 시도를 해 보는 것 :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이라 항상 자유투 라인 앞뒤 정도 거리에서 점프슛을 쏘곤 했었는데, 가드에게 3점슛이 없으면 제약이 참 많아진다. 연습할 때와 경기 때는 리듬이 틀려진다. 이에 잘 안되더라도 경기 중에 3점슛 시도를 점점 많이 해보고 있다.
  4. 그리고 1, 2, 3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실수해도 주눅들지 않고, 내가 익숙한 움직임으로 내 게임을 뛰면 된다. 그리고, 잘 안되더라도, 그냥 웃어 넘기는 것도 자신감인 것 같다. 스트레스 해소하려고 운동하면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는 일은 피해야겠다.

매일밤 농구 유투브 영상을 보면서 내 마음은 앨런 아이버슨이나 카이리 어빙급이지만 사실상 화려한 드리블러의 꿈은 접었다. 위 3개만 잘해도 팀에 가장 기여를 많이 하는 선수가 될 수 있다. 이에, 한 동안은 위 3개만 집중해서 운동을 해볼까 한다. 3점슛터가 될 수 있을지는 일년 후에 다시 되돌아보는 것으로 하고.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위에 언급한 4가지는 일터에서도 필요한 마음가짐인 것 같다.

  1. 기본기에 충실할 것. 본인 직무에 요구되는 기본적인 사항들은 충실히 수행하고, 이에 대한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히 할 것.
  2. 내 장점을 극대화 시키는 것. 내가 잘못하는 부분을 강화하는 것도 좋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 장점을 찾아 이를 극대화시키는 게 더 필요하다. 사실 ‘잘못하는, 모자라는’ 점을 찾으면 끝이 없다.
  3. 나만의 무기를 찾는 것. 2번과 어느 정도 겹칠 수 있겠지만, 나만의 한 방을 찾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 일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4. 내 생각과 업무에 자신감을 갖는 것. 내가 항상 책임을 피하거나, 일을 개차반처럼 하지 않은 이상, 내가 내 일/제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최소한 내가 어떤 행동이나 말을 했다면 그 뒤에는 적절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게 최선의 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틀린 답은 아닐 것이다. 본인이 한 일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준을 갖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내가 적었지만 사실 2번과 4번은 아직도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다. 논리적으로 따져보자면 2번을 잘 하면 4번이 따라올 가능성도 높겠다. 그럼 앞으로 내 숙제는 일터에서 내 장점을 찾아 더 발전시키는 것일까? 생각해 봐야 하겠다.

농구하면서 깨달은 점을 간단히 Facebook에 남기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본인에 대한 자성(自省)으로 되돌아 올 진 몰랐다. 이런 게 글쓰기의 장점 중 하나인 것 같다.

일하기 좋은 나라, 네덜란드에서 살아가기

본 글은 제가 처음으로 돈을 받고 기고해 본 글입니다. 독립잡지 ‘나이이즘’이라는 잡지의 2호(2019년 봄 발행)지에 실린 글입니다. 잡지 발행된 지 시간이 오래 지나 제 블로그에 원문을 올려봅니다. 올해 초에 이미 제 블로그에 써놓은 글과 비슷한 내용의 글이긴 합니다.

인생 버킷리스트에 도전하다

“해외에서 일하고 살아보는 것”.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상위권에 항상 있던 바람이었다. 1980년대 말,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버지의 미국 MBA 수학으로 2년간 미국에서 살아볼 기회가 있었다. 아버지 입장에선 늦은 나이에 간 유학이었기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지만, 나는 워낙 어렸기 때문에 그 시절에 대해선 밝은 기억만 있다. 위의 바람이 버킷리스트에 항상 있었던 이유다. 

30대 중반에 결혼을 한 후 아이를 출산했다. 대기업과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10여년 간 일하면서, 한국에서 일과 삶(특히 아이가 있을 때)의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다고 느꼈다. 또한, 그 와중에 미세먼지가 사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가까운 가족 중 두 분이 폐질환으로 삶을 마감한 가족력이 있기에, 미세먼지 이슈는 나에겐 ‘생존’의 문제였다. 한국을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회사에서는 나름 성과도 잘 내고 있었고, 더 잘 하고 더 많이 벌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이 성치 않고, 가족과의 시간 — 특히 아이와의 시간 — 이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이 안되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결정을 내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두 가지 옵션으로 이민을 준비했다. 한 옵션은 내가 쌓아온 많은 것을 포기하고 다시 학업부터 해야 하는 옵션이었고, 다른 옵션은 당시 다니던 회사의 미국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비자였고,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비자 발급 자체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둘 다 미래가 막연한 옵션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네덜란드에 있는 헤드헌터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글로벌 온라인 여행 예약 서비스 회사로의 이직을 도전해보지 않겠냐는 메일이었다.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면접 몇 번 통과하면 공짜로 암스테르담 관광 할 수 있겠네!”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최종면접을 위해 암스테르담행을 눈앞에 두니, 욕심이 생겼고 갑자기 절실해졌다. 준비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최종 합격을 했다. 

외국에서 일하며 산다는 것

2017년 7월 말, 무척 더웠던 한국을 떠나 도착한 네덜란드는 생각보다 추웠다. 햇빛보다는 비와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환경의 변화 때문일까? 아이는 오자마자 고열로 며칠 동안 고생했다. 신고식을 하는 느낌이었다.

2주간의 서류 처리 및 적응기간을 거치고 8월에 입사를 했다. 수십개국에서 온 동료들과 영어로 일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솔직히 첫 6개월은 언어와 문화 차이로 인해 고생을 많이 했다. 한국에서 영어로 종종 업무를 하곤 했지만, 하루 종일 영어로 일하는 환경은 처음이었다. 또한, 직설적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사람들과 일하는 것도 처음엔 힘들었다. 오해를 많이 했다. 1:1 미팅 중에 나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그들의 어법이 문화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한국 내에서 이직만 해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스트레스가 크다고 하는데, 나는 이직과 함께 이민을 한 경우이다. 모든 고등교육과 직장생활을 한국에서 하다가 유럽으로 바로 넘어온 케이스이기 때문에 업무 및 생활이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날씨 또한 예상외의 복병이었다. 부슬비가 계속 오고, 바람이 세며, 오후 4시부터 어두워진다. 이런 날씨가 4~5개월 동안 이어진다. 날씨 때문에 이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국인들도 많다.  

반면 내가 네덜란드에 바랐던 점들은 확실히 보장받았다. 우선 미세먼지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고, 개인/가족의 삶을 존중하는 문화답게 업무시간은 유연했다. 야근은 1년 반 동안 해본 적이 없고, 퇴근 후 업무 때문에 연락받은 적도 없다. 또한,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 세계 1위인만큼, 내 아이도 나중에 좋아하는 일 하면서 행복하게 자랐으면 하는 희망을 가졌다. 

이곳에서 언제까지 일 할 수 있을까?

이제 이직 후 1년 반 정도가 지나고 두번째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솔직히 이직 초기에는 업무 적응을 위해 가끔 밤에 업무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젠 집에서까지 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업무에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회사에서 나한테 그 정도까지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상사도 나를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압박하지 않는다. 아이의 방학이나 휴학 등 가족 일이 있을 경우는 눈치보지 않고 가족 일을 우선 챙길 수 있고, 내 업무의 양과 속도는 내가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성격의 고민을 한다. 바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이다. ‘유리천장’이 있다는 것을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회사의 고위 관리자 및 임원급 자리는 네덜란드인(특히 백인)의 비중이 높다. 다른 로컬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네덜란드 회사이기 때문에 당연할 수 있고, 벌써부터 이른 걱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만약 다른 나라로 가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면, 아직 30대인 지금 가야 하는 것 아닐까?”와 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좀 더 행복하기 위해 이민을 왔고, 환경도 나름 괜찮은데, 나는 왜 이런 고민을 할까? 어쩌면 내가 아직도 열심히, 경쟁적으로 일하는 한국인의 피가 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 사람들 중에도 밤낮없이 일해서 성공과 부를 성취하려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굳이 그렇게까지 일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 고소득일수록 세율이 엄청나게 높고(2018년 기준 연 소득 68,507 유로, 한화로 대략 8,700만원, 이상인 경우 소득세율 51.75%[링크]), 저소득 계층에 대한 교육 및 주거 등의 지원이 좋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좀 더 이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까?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이제 네덜란드어를 배우는 등의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몇 년 후에는 내가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며 나이가 들고 있을 지 궁금하다. 

나는 어쩌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글쓰기 실력을 늘릴 수 있을까?

고백한다.
나는 사실 군 입대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대학 입학 시 논술도 보지 않았다. 글쓰기가 싫어 논술이 있는 ‘정시’ 대신 ‘특차’로 입학하는 걸 택할 정도였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부터 개인 블로그에, 회사 블로그에 글을 쓰더니, 올해는 처음으로 ‘돈을 받고’ 글을 써보는 경험도 해보았다. 뭐든 관심이 가는 대상이 생기면 훅 파고드는 성격 덕분일 수도 있지만, 나도 나 자신이 언제부터 글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어떤 계기에서 시작을 했고, 무엇이 나를 계속 글을 쓰도록 동기부여를 했을까? 그래서 잠시 뒤돌아 보았다. 크게 보면 3번의 ‘때(계기)’가 있었던 것 같다.

군대에서 편지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2000년 초반에는 군대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은 상상도 못 했고, 개인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훈련소에서부터 가족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랬다. 이 편지들이 내가 제대로 글을 써 본 첫 계기인 것 같다. 가족들과, 밖에 있는 친구들과, 다른 부대에 있는 친구들과, 심지어 외국에 유학 가 있던 친구들과도 편지를 계속 주고받았다. 주로 개인적인 내용이었다.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주고받고, 인생에 대한 고민 조금 하고, 쓸데없는 말도 자주 지껄이는, 그런 소소한 편지들이었다.

그리고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오랜 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신 후 얼마 후에 입대를 했다. 신병 시절 혼자 이불속에서 숨죽여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답답했고 뭔가 토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제대하고도 한동안 일기를 썼다. 그리고 그 습관 덕분인지 혼자 유럽과 중국 배낭여행을 다닐 때도 ‘여행 일기’를 썼고, ‘아랍의 봄’ 운동이 막 시작된 이집트를 여행할 때도 일기를 썼다. (당시 카이로 시내가 불타는 상황이어서 관광지는 문 닫고 공항에서 노숙도 했었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일기를 안 쓰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신입사원 시절 2년간 매주 발송하던 문화 주간지

신입사원 때, 연애를 안(못)하던 시절, 썸녀든, 여사친이든, 혼자든 주말마다 계속 돌아다녔다. 영화를 보고, 여행도 가고, 미술관도 갔다. 휴대폰 제조업체에 개발자로 입사를 했지만, 일이 내 성향에 맞지 않았고, 이에 회사생활이 답답했다. 또한, 대기업이라 굉장히 수직적이었고, 오전 8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9시 반 ~ 11시에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주말은 해방구였다. 한 동안 소개팅을 꽤 많이 했는데, ‘사랑’을 찾아다닌 것보다, ‘맛있는 것 같이 먹고, 같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행위라고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보고, 듣고, 생각한 걸 주말에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걸 매주 월요일 아침에 사내 지인들(우리 팀 포함해서 100여 명)에게 메일로 보냈다. 선배들과 동기로부터 듣는 칭찬과 격려가 동인이었다.

글의 내용은 주로 도서, 영화, 전시회, 공연 리뷰였다. 한 때는 일 년에 책을 70여 권까지 읽었던 적도 있었을 정도로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토해냈다. 20대 후반은 인생과 커리어에 대해 고민이 많은 시기였는데, 아빠가 참으로 보고 싶었다. 아빠와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를 대체할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은 단순히 관용 표현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책 속에서 인생의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다 정리했다. (* 아직도 네이버 블로그에 남아 있는데, 문제는 내가 해외에 있다 보니, 네이버 아이디, 비번을 찾을 수가 없어 관리가 불가한 상황이다)

네덜란드로 이민을 왔고 이직을 했다. 다른 차원의 고민들이 시작됐다.

이직을 하면서 전혀 다른 환경의 국가로 이민을 왔고, 이에 새로운 사람들과 조직문화에 적응하느라 고생을 좀 했다. 그 내용은 브런치(혹은 블로그)의 이전 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은 사회생활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지만, 내가 처한 환경(30대 후반의 나이에 유럽에 있는 글로벌 업체 본사에 현지 채용되어 일하는 케이스)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에 내가 겪은 내용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하고 싶었다.

이 고민들의 해결책 중 많은 부분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편향된 생각은 아닌지 되짚어보고, 결론을 내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들을 매주, 매달 겪으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반복했다. 이런 훈련들이 내가 업무를 잘 수행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지만, 글을 더 잘 쓰기 위한 훈련도 되는 것 같다.

피드백의 중요성

아버지가 투병시절 독일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나와 주고받은 편지가 있다. 그 편지의 내용은 그전에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비평이었다. 중학생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치고는 좀 특이하긴 했다. 그 당시의 나(글쓰기를 싫어하던 나)는 전혀 공감하지 못할 내용이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내가 직장인이 된 후에 우연히 다시 읽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굉장히 달랐다. 몇 장의 편지를 요약하자면 ‘초등학생은 계곡에 핀 꽃을 보고 한 줄로 설명하겠지만, 대학생 즘 되면 이를 몇 장에 걸쳐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나중에 직장생활을 하면 글쓰기가 굉장히 중요하다.’의 내용이었다.

어찌보면 그냥 단순한 편지지만, 암 투병을 하고 계신 분이 독일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와중에 중학생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만큼 꼭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 편지가 내 글에 대한 첫 ‘피드백’인 것 같기도 하다.

10대 시절 글쓰기를 그렇게 무서워했던 것과는 달리, 20대에 들어서는 자연스럽게 글을 쓰기 시작하고, 주위에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반복했다. 사실 글쓰기라는 게 내 머리 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 잘 정리한 후,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잘 보여주는 과정인데, 나는 이 ‘보여주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나는 내 생각을 토해내고 싶었다. 이런 내 성향도 글쓰기 실력이 느는데 한몫을 한 것 같다. 종종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에 ‘다음엔 이런 걸 유의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종종 내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난 후 주위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묻는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얘기가 오해없이 전달이 되는지, 불필요한 내용은 없었는지 등의 질문에 대한 피드백은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나 혼자 쓰는 일기라면 모르겠지만, 결국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읽을 글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오해없이 전달되었는지, 이해하기는 쉬웠는지 등에 대한 확인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한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갑질

며칠 전 네덜란드 한인회 웹사이트에 ‘L모 기업 지사장의 갑질’ 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모 한국회사 네덜란드 지사장의 한국인 현채인(주재원이 아닌 현지에 살고 있는 한인)에 대한 갑질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글 속의 지사장은 한국인 현채인들을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욕설을 하고, (지사장 본인의) 사적인 일을 시키고, 마음에 안드는 직원은 변호사와 계획을 세워 내보내는 등 욕이 저절로 나올 만큼 심한 내용이었다. 글을 읽으며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었으면 이런 곳에까지 글을 올렸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 한국에서 일하던 회사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있었다. 브라질 법인 임원이었던 그 사람은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었고, 한인 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막 대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내부 직원이 ‘인격 모독’으로 노동청에 고소를 하게 되고, 브라질에서 거의 추방 당했던 걸로 기억을 한다.

물론 위 두 가지 사례들은 ‘심한’ 케이스에 속한다. 하지만 위와 같이 막 나가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한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막 대하는 경우를 해외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본인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 의전을 한다던지, 현지인들이 다 퇴근한 후에 한국인들만 남아서 일하던지, 같은 ‘현지 채용’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 시점에서 나는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역만리 먼 곳 까지 나와서 왜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이를 아래와 같이 4가지 이유로 설명해 보았다. 4가지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복합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1. 회사 구조의 이유

한국에서 해외영업부서에서 일하며 실제로 대기업의 해외법인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 지 그리고 법인 내 상황은 어떤지 경험할 수 있었다. 회사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법인의 주재원들은 영업 실적은 기본이고, 본사가 매일 문의/요청하는 업무를 처리하는 데 바쁘다. 본사와 시차가 많이 난다면 더 힘들다. 낮에는 현지 업무하느라 바쁘고, 새벽이나 저녁에는 본사와 통화하고 미팅하느라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본사가 보내오는 숙제를 그대로 현지 직원들에게 위임하기도 힘들다. 이메일 자체가 영어로 되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한글로 메일을 보내오는 경우도 많다. 업무를 지시하거나 요청할 때 주재원이 영어나 ‘현지어’를 원활하게 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 이럴 경우 요청하는 사람도, 요청받는 사람도 힘들다. 

그래서 법인장이나 주재원은 한국인 현지채용인에게 일 시키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본사에서는 손님(주로 임원급) 의전 등 본 업무의 범위를 넘어서는 업무를 시키는 경우도 다반사인데, “내 일이 아닌데 왜 시키느냐”라며 반발할 게 뻔한 현지인에게 시키느니, 상대적으로 일 시키기 편한 한국인에게 일을 시키게 된다. 

2. 현지 기업 취업의 어려움

한인 현채인들도 한국회사가 본인들을 채용하는 이유를 안다. 본인들의 장점(한국어로 업무 가능하고,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점)을 활용하여 취직을 하고 업무를 한다. 이 점이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족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인 현채인들이 현지 기업으로 쉽게 이직을 해서 수입을 대체할 수 있다면, 한국 기업의 부당한 요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며, 한국 기업에서도 직원들의 이탈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를 덜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인들이 현지 기업으로 이직을 해서 일하는 경우를 많이 보진 못했다. 언어(현지어)의 문제가 가장 클 것이라 생각한다. 영어로 일을 할 수 있더라도 현지인들이 대부분인 회사에서 영어로 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사무실에서는 직접적인 업무 외에도 많은 정보들이 구두로 오고 간다. 이런 정보들을 접하지 못하면 업무 효율 뿐 아니라 승진 등 보상 관련 부분까지도 불이익을 보기 쉽다. 

이런 제약사항을 회사도 안다. 그래서 좀 더 쉽게 한인 현채인을 대한다고 생각한다. 

3. 조직 문화의 이유

한국 사람들의 경직된 조직문화의 중심엔 상명하복에 익숙한 군대문화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군대는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조직이며, 하급자가 상급자에 도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런 특징이 그대로 조직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본사에서 떨어진 폐쇄적인 구조의 법인/지사에서 법인장/지사장은 사무실을 군림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보다 돈이 위에 있다는 인식,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권리는 존중하지 않는 천민 자본주의가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결합하면 무서운 결과를 야기한다.  

4. 폐쇄적인 이민 사회

미국은 잘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의 한인 사회는 굉장히 작다. 2017년 외교부 자료로 약 3천명 정도의 한국인이 네덜란드에 거주한다.(영주권, 시민권자 포함) 작은 사회이다 보니, 한국 회사에서 다른 한국 회사로 이직을 할 시 ‘평판’에 민감할 수 있다. 회사의 부당한 요구에 적법하고 정당하게 대응을 하고 퇴사를 하더라도, 이전 회사의 주재원 혹은 법인장이 부정적인 평가를 퍼뜨린다면, 이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외의 한인 사회는 상당히 폐쇄적이며 입소문이 빠르게 퍼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인 현채인은 회사에 강하게 어필하지 않고, 어느 정도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이다. 

한인 현채인이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회사 측면에서는 업무 효율도 높일 수 있고, 자국민에게 일자리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직원 측면에서도 일자리를 얻어 본인의 경력을 이어갈 수 있으며 현지에 남아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win-win 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상적으로 돌아가진 않는다. 위에서 얘기한 조직 문화와 실적주의 등이 엮이다 보면,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고 가해가자 된다. 한국 사회는 경쟁적이며 빠르게 돌아간다. 본사에서의 빠른 속도와 실적을 그대로 해외의 법인에 요구를 하게 되고, 이 부분에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본다. 나라마다 사회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사회가 돌아가는 속도가 다르다. 하지만 한국 회사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이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본국/본인의 속도를 요구한다. 이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지의 한국인들이다. 

하지만, 이 한국인들은 work-life balance를 위해, 본인과 배우자 그리고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이민을 택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한국 회사에서 무리한 요구를 계속한다면, 이는 직원들 측면에서도 지속 가능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런 문제들이 곪고 있다가 터진 것이 바로 이번 L사 사건이다. 



그럼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너무 거대담론이 될 것 같고, ‘개인 혹은 인간을 존중하는 의식이 자리잡아야 한다’와 같은 나이브한 소리만 하게 될 것 같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답은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화란(네덜란드) 한인 커뮤니티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어 질 지, 어떤 식으로 사건을 회고하고 미래를 그려나갈 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우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좀 더 들어보고, 생각을 나눠보고, 그 후에 해결책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네덜란드에서 일하기

암스테르담에 있는 글로벌 온라인 여행 서비스 B사에서 일한지도 이제 10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그 동안 포스팅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한국에서 외국으로의 바로 이직은 생각보다 쉽진 않았다. [링크 참고]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성과를 잘 낸다고 할 만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회사의 문화, 프로세스, 사람들 그리고 내 Product에 많이 적응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3월이 지나면서 따뜻해지기 시작한 날씨도 ‘기분 좋아짐’에 한 몫을 한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각설하고, 오늘은 네덜란드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들을 짧게 정리해보려 한다. 혹시나 외국에서 일할 기회를 모색하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참고로 저는 IT 업체 개발부서(Product team)에서 Product owner라는 직무로 일하고 있습니다. [Product owner란?]

** 세계 수십 개국에서 모인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있는 회사/부서 특성상 일반 네덜란드 회사와 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하십시오.

출근

팀원 6명이 약속한 오전 10시 10분 전에만 출근하면 된다. 10시 10분에 standup 미팅이라고 각자 1) 어제 한 일, 2) 오늘 할 일, 3) 이슈를 공유한다. 미팅이 많은 나는 오전 9시 경에 출근해서 standup 미팅 시 팀원들과 확인해야 할 일 등 하루의 준비를 한다. 혹은 방해없이 집중이 필요한 업무를 한다.

보통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개인 볼 일 마치고 출근하는 경우도 많다.

퇴근 및 야근

퇴근은 5시~6시 정도에 한다. 미팅이 늦게 끝나는 경우 퇴근이 좀 늦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5시 ~ 5시 반 정도에 업무를 접을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출근하기에 눈치보지 않고 필요한 경우에는 5시나 그 전에도 퇴근하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야근’을 해서 수당을 받으려면 미리 결재를 받고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입사 후 9개월 동안 한 번도 신청해 본 적 없다. 야근이라고 해봤자 6시 반 정도까지 일하고 늦게 퇴근하는 정도였다. 6시 즈음이 되면 다들 퇴근을 하기에 더 남아서 일하고 싶은 기분도 안 든다. (억울한 기분?)

다만, 직무 특성상 ‘나 때문에 팀이 일하기 힘든 상황’을 막기 위해 가끔은 밤에 노트북을 펴고 업무를 한다. 특히 한 주의 시작을 앞둔 일요일 밤에 잠시 노트북을 열고 일하곤 한다. 월요일에 한 주의 업무를 정리하는 미팅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1:1 미팅, 개인 시간

실리콘밸리의 업무 문화 관련한 글이나, 캐나다에서 개발자로 근무중인 지인의 얘기에 따르면 1:1 대화도 일주일 전에 시간을 잡고 캘린더에 일정 저장 후 만난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곳도 마찬가지 일 줄 알았다. 어찌보면 개인의 권리가 더 강한 유럽 아닌가? 결과는? 어느 정도 맞긴 했지만 생각보다 빡빡하진 않았다. 처음엔 굉장히 조심스러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급한 일의 경우 한국식으로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고 답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눈치라면 “방해해서 미안해. 근데 온 김에 빨리 물어볼게”라고 빠르게 치고 들어가 답을 받거나, 최소한 주제에 대해 환기를 시켜주고 공식적인 1:1 대화 일정을 잡고 오곤 한다. 물론, 급하지 않은 경우는 대부분 구글 캘린더로 일정을 미리 잡고 만난다.

이전에 쓴 글과 같이 전화로 업무를 처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링크]

실리콘밸리의 업무시간은 엄청 빡빡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곳 친구들도 숨 쉴 시간 없이 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유럽’이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회사의 문화인 건지, 생각보다는 여유있게 일한다. 흡연자가 한국보다 훨씬 많은데, 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 씩 밑에 내려가 담배를 피고 온다. 다만, 한국처럼 우루루 내려가 잡담을 하면서 피거나, 여러 명이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케이스는 많지 않다. 대부분 개인적으로 볼 일만 보고(?) 바로 올라 온다.

육아와 일

육아 휴직은 3개월 정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주위에 출산 후 다시 복귀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Contract에 따라 다르지만 육아를 위해 근무 형태나 일시, 재택근무 비율 등을 HR과 조율하는 케이스도 봤다. 전체적으로 육아 관련해서 부모가 회사/상사 눈치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다만 금전적으로 day care가 무료는 아니고 어느 정도 돈이 들어간다. 정부에서 어느 정도 보조금은 주며, 무료 공교육은 자녀가 만4살이 된 이후에나 가능하다.

네덜란드라는 나라 자체가 맞벌이 비율이 굉장히 높은 나라라고 들었다. 내 생각이지만, 세금이 워낙 센 나라이기 때문에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애들 키우면서 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회식

‘벙개’로 술을 마시러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통은 며칠, 몇 주 전에 미리 날을 잡고 저녁이나 술을 마시러 간다. 모든 자리에 참석은 자유다. 팀 회식이라고 해서 꼭 갈 필요는 없다.

공식적인 팀 outing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팀(6~7명) 회식의 경우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저녁을 먹는다. 저녁 먹기 전에 방 탈출(‘escape’라고 한다)이나 레이저 서바이벌 게임 등의 활동을 하기도 한다. 한국 회사의 젊은 회식 분위기와 비슷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회식은, 암스테르담 canal 을 다니는 배를 빌려서 두 시간 동안 선상에서 저녁과 술을 먹고 춤도 추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경우다. 배에서 내릴 수도 없기 때문에 조용히 집에 가는 것도 불가능했던 반강제적으로 즐겨야 했던 회식이었다.

가장 적응 안됐던 건 6시부터 계속 맥주만 마시고 저녁을 안 먹는 것이었다. 보통 Pub에 가서 앉거나 (대부분) 서서 맥주를 마시는데, 손님들이 많은 경우 Pub에서 튀김 안주를 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이 튀김 안주를 저녁 삼아 먹는 경우가 많았다. 9시 넘어서까지 늦게까지 마시는 경우에는 2차로 버거를 먹으러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 관련해서는 이전에 적은 글들을 참고하길 바란다. 한 가지 이전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점은 over-communication도 좋을 것이라는 점이다. 해외에서 업무를 하는 것이고, 동아시아인들은 좀 조용한 편이라는 편견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조금은 과할 정도로 over communication을 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주위 사람들이 동아시아인들에 대해 편견을 언급한 적을 본 적은 없다. 허나 보통 서양에서의 아시안에 대한 stereotype이 ‘조용하고 순종적이다’라고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언급을 했다)

 한국인들은 ‘틀리면 어쩌나’하고, 무언가 확신이 있거나 자신이 있을 경우에만 다른 사람/팀과 공유를 하거나, 보고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고 ‘틀리는 것’에 두려움이 많은 문화 특성상 그런 것 같다. 나도 아직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는 ‘맞고 틀린 게 없다’. 서로 생각이 다른 것이고, 그 다른 생각이 어느 정도 논리와 데이터가 뒷받침된다면, 공유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개인적으로 올해 업무 목표 중 하나가 1) 명확하게 내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전달하는 연습을 하고, 2) 용기를 갖고 무조건 ‘많이 하자’다.

다양한 문화, 다양한 성격

한국 회사에도 성격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고, 별의별 사람들이 있지만, 이곳에서의 스펙트럼은 더 넓은 것 같다. 정말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인종의 직원들이 모여 함께 일하고 있고 성격도, 배경도, 영어 발음도 천차만별이다. 어찌보면 더 일하기 힘든 것 같지만, 한국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원하는 바와 불만, 반대의견을 얘기해주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는 오히려 한국보다 적은 것 같다. 다만 이제 겨우 10개월차 이기 때문에 어디가 좋다 나쁘다를 얘기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10년 업무 경력이 있다.)

성과에 대한 평가

이 부분을 적어보려 했는데, 나는 여지껏 분기 평가 두 번 진행한 것이 업무평가의 전부였다. 또한 매니저도 딱 한 명 경험해봤기에 회사 전체적으로 성과에 대한 평가가 공정한 지, 기준이 명확한 지 등에 대한 판단을 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다. 이 부분은 좀 오래 지난 후에 따로 주제를 잡아서 글을 써보겠다.

출퇴근 교통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의 수도이지만 서울과 그 크기를 비교할 순 없다. 20분 조금 넘게 메트로를 타면 남쪽 끝에서 북쪽 끝으로 이동할 수 있다. 나는 암스테르담 남쪽 끝에 거주하며 시내에 있는 사무실로 출퇴근한다. 메트로로 출퇴근하며 메트로 시간만 따지면 18분, 걷고 기다리고 하는 등의 시간을 다 합하면 30~35분 정도 걸린다.

주위를 봤을 때 나는 좀 오래 걸리는 편이다. 보통 암스테르담 시내에 거주하는 직원들은 자전거나 트램으로 출퇴근하며 10~20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특이하게 다른 도시에서 기차로 출퇴근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기차-메트로 연결이 잘 되어 있고 근교라고 해도 상당히 가깝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1시간을 넘는 경우는 딱 한 명 외에 본 적이 없다. 네덜란드 법상 출퇴근 거리에 따라 교통비 지급을 해주기 때문에 교통비 부담을 어느 정도 덜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