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 같은 고민

얼마 전에 KSAN(네덜란드 한국 학생회) 주최로 네덜란드에 있는 한국인 학생들에게 IT 업계의 업무 문화와 환경, 내가 하는 일, 그리고 머신러닝 등의 기술이 실무에서 어떻게 활용되는 지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기술보다는 ‘진로’에 초점을 맞춘 행사로, 나를 포함한 4명의 연사가 돌아가면서 본인들 분야 관련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마지막에 4명의 패널이 앞에 나와 질문/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2시간 정도로 짧은 행사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3시간이 훌쩍 넘을 정도로 길었고, 특히나 학생들의 질문들이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많아서 시간이 꽤나 걸렸다.

ksan.jpg
해당 행사 홍보 문구(많이 과장 되어 있다)
델프트 공대에서 열린 행사 모습(YTN 취재 기사 중)

생각보다 간절하게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하는 친구들을 보고, ‘사회’에 대한 동경과 함께 두려움이 가득했던 12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특히 해외에는 대규모로 신입사원을 뽑는 ‘공채’도 없고, 아시아인으로서 minority이기 때문에, 더 진로 고민이 ‘구체화’ 될 수 밖에 없다. ‘회사’만 들어가면 되는 게 아니고 ‘어떤 일’을 하느냐에 대한 고민도 미리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남학생의 경우는 ‘군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기에, 군대를 다녀온 후 다시 해외로 나와 학업이나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민을 많이 했을 수록, 네덜란드라는 나라(혹은 해외)에서 일하고 살고 싶은 생각이 강할수록, 진로에 대한 고민은 더 간절해 질 수 밖에 없다.

질문을 나에게 돌려봤다. 나는 왜 여기 나와 있을까? 한국에서 나름 직장생활 잘 하고 있었고, 거쳐온 회사들에서 능력/성과도 인정 받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계속 달고 살았다. 직장에서 ‘성공’을 하기 위해선 내 시간을 헌신해야 하는 문화. 허나 회사를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했던 아버지 세대와 같이 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내가 삼성전자라는 껍데기를 벗으면 내 가치는 얼마 짜리일까?’와 같은 고민을 달고 살았다. 그러던 중 네덜란드에 있는 회사로 취업을 성공하여 이직과 함께 이민을 하게 되었다. 네덜란드라는 곳의 흔히 말하는 워라벨(Work life balance)는 확실히 보장되고, 미세먼지도 거의 없었다. ‘아이가 행복한 나라 세계 1위’.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부러워할 가능성이 높은 환경이다.

하지만 이민 후 1년 반이 지난 지금 내 고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 얼마나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가슴에 품고 있다. 내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은 편이긴 하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내 한 몸(이젠 내 한 가족) 챙길 사람은 나 뿐이다’ 마음가짐으로 18년을 살아왔다. 독기까진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살아왔고, 꾸준히 자기계발을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고, 직장문화가 인간적인 네덜란드에 와서도 나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 계속되는 긴장감은 젊을 때는 자기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내 진로 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챙겨야 하는 현재 상황에서는 오히려 일찍 지쳐버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왜 계속 긴장을 놓지 않고 있을까?

첫번째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유전적으로 폐가 안 좋을 가능성이 높은데, 미세먼지가 많은 환경에서 내가, 그리고 내 (유전자를 받은) 아들이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는 정말로 ‘살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심리적인 배수진을 치고 있다.

두번째 이유 — 아마도 가장 큰 이유 — 는 아마도 나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계속 minority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는 굉장히 international한 회사다. 실무자급(나는 Tech 부서에 있다)에서는 어림잡아 20~30% 정도만이 네덜란드인 정도로 보인다. 허나 Director급(부장, 이사 급) 이상을 보면 네덜란드인 비중이 상당히 높다. 훨씬 더 로컬한 회사인 경우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하지 않을까 한다. 어떻게 보면 외지인으로서 ‘유리천장’을 좀 일찍 확인한 것 같다.  사실 아직 승진 프로세스를 진행해 본 적도 없고, 평가가 나쁘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이직 후 1년 반 동안 내 생각보다 업무 성과가 잘 보이지 않아, 자신감이 좀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에서의 생활이 재미있긴 힘들다. 나는 여지껏 거쳐온 두 직장에서, 일이 힘들 때는 많았어도, 항상 ‘재미있었다’. 재미가 없으면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요즘 벌써 ‘재미가 없다’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다행히도 유럽에 있는 네덜란드에서 ‘해고’는 쉽지 않다. 그러나 출근하는 게 즐겁지 않으면 삶이 즐겁지 않는 것과 같다고 본다. 아무리 야근이 없는 네덜란드라고 하지만, 하루 24시간 중 1/3은 회사에 있다. 이 시간이 즐거워야 삶이 즐거워 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무실에서의 시간이 즐거워질까? 사실 아직까지 ‘일을 잘해서 성과를 내야지!’ 외에는 답을 찾진 못했다. 이 답도 지속가능한 답은 아닌 것 같다. 20년 동안 계속 성과를 잘 내긴 쉽지 않을테니까.  그래서 결국은 ‘내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한국에 있는 직장인들도 많이들 이 생각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에 있으나, 네덜란드에 있으나, 살아남는 것에 대한 고민은 똑같고, 그 최종 종착점도 비슷해 보인다. 다만 내가 가진 장점/단점이 환경(국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이에 따라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함께 달라진다. 정답은 없다.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환경(이민 환경)을 파악하고, 이 환경에서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 후에, 나름의 해결책을 도출한 후 기회를 찾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수천 km를 날아와서 연고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다. 그런데 내 고민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삶의 ‘재미’라고 해야 할까?

한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갑질

며칠 전 네덜란드 한인회 웹사이트에 ‘L모 기업 지사장의 갑질’ 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모 한국회사 네덜란드 지사장의 한국인 현채인(주재원이 아닌 현지에 살고 있는 한인)에 대한 갑질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글 속의 지사장은 한국인 현채인들을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욕설을 하고, (지사장 본인의) 사적인 일을 시키고, 마음에 안드는 직원은 변호사와 계획을 세워 내보내는 등 욕이 저절로 나올 만큼 심한 내용이었다. 글을 읽으며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었으면 이런 곳에까지 글을 올렸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 한국에서 일하던 회사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있었다. 브라질 법인 임원이었던 그 사람은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었고, 한인 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막 대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내부 직원이 ‘인격 모독’으로 노동청에 고소를 하게 되고, 브라질에서 거의 추방 당했던 걸로 기억을 한다.

물론 위 두 가지 사례들은 ‘심한’ 케이스에 속한다. 하지만 위와 같이 막 나가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한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막 대하는 경우를 해외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본인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 의전을 한다던지, 현지인들이 다 퇴근한 후에 한국인들만 남아서 일하던지, 같은 ‘현지 채용’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 시점에서 나는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역만리 먼 곳 까지 나와서 왜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이를 아래와 같이 4가지 이유로 설명해 보았다. 4가지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복합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1. 회사 구조의 이유

한국에서 해외영업부서에서 일하며 실제로 대기업의 해외법인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 지 그리고 법인 내 상황은 어떤지 경험할 수 있었다. 회사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법인의 주재원들은 영업 실적은 기본이고, 본사가 매일 문의/요청하는 업무를 처리하는 데 바쁘다. 본사와 시차가 많이 난다면 더 힘들다. 낮에는 현지 업무하느라 바쁘고, 새벽이나 저녁에는 본사와 통화하고 미팅하느라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본사가 보내오는 숙제를 그대로 현지 직원들에게 위임하기도 힘들다. 이메일 자체가 영어로 되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한글로 메일을 보내오는 경우도 많다. 업무를 지시하거나 요청할 때 주재원이 영어나 ‘현지어’를 원활하게 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 이럴 경우 요청하는 사람도, 요청받는 사람도 힘들다. 

그래서 법인장이나 주재원은 한국인 현지채용인에게 일 시키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본사에서는 손님(주로 임원급) 의전 등 본 업무의 범위를 넘어서는 업무를 시키는 경우도 다반사인데, “내 일이 아닌데 왜 시키느냐”라며 반발할 게 뻔한 현지인에게 시키느니, 상대적으로 일 시키기 편한 한국인에게 일을 시키게 된다. 

2. 현지 기업 취업의 어려움

한인 현채인들도 한국회사가 본인들을 채용하는 이유를 안다. 본인들의 장점(한국어로 업무 가능하고,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점)을 활용하여 취직을 하고 업무를 한다. 이 점이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족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인 현채인들이 현지 기업으로 쉽게 이직을 해서 수입을 대체할 수 있다면, 한국 기업의 부당한 요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며, 한국 기업에서도 직원들의 이탈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를 덜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인들이 현지 기업으로 이직을 해서 일하는 경우를 많이 보진 못했다. 언어(현지어)의 문제가 가장 클 것이라 생각한다. 영어로 일을 할 수 있더라도 현지인들이 대부분인 회사에서 영어로 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사무실에서는 직접적인 업무 외에도 많은 정보들이 구두로 오고 간다. 이런 정보들을 접하지 못하면 업무 효율 뿐 아니라 승진 등 보상 관련 부분까지도 불이익을 보기 쉽다. 

이런 제약사항을 회사도 안다. 그래서 좀 더 쉽게 한인 현채인을 대한다고 생각한다. 

3. 조직 문화의 이유

한국 사람들의 경직된 조직문화의 중심엔 상명하복에 익숙한 군대문화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군대는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조직이며, 하급자가 상급자에 도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런 특징이 그대로 조직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본사에서 떨어진 폐쇄적인 구조의 법인/지사에서 법인장/지사장은 사무실을 군림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보다 돈이 위에 있다는 인식,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권리는 존중하지 않는 천민 자본주의가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결합하면 무서운 결과를 야기한다.  

4. 폐쇄적인 이민 사회

미국은 잘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의 한인 사회는 굉장히 작다. 2017년 외교부 자료로 약 3천명 정도의 한국인이 네덜란드에 거주한다.(영주권, 시민권자 포함) 작은 사회이다 보니, 한국 회사에서 다른 한국 회사로 이직을 할 시 ‘평판’에 민감할 수 있다. 회사의 부당한 요구에 적법하고 정당하게 대응을 하고 퇴사를 하더라도, 이전 회사의 주재원 혹은 법인장이 부정적인 평가를 퍼뜨린다면, 이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외의 한인 사회는 상당히 폐쇄적이며 입소문이 빠르게 퍼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인 현채인은 회사에 강하게 어필하지 않고, 어느 정도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이다. 

한인 현채인이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회사 측면에서는 업무 효율도 높일 수 있고, 자국민에게 일자리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직원 측면에서도 일자리를 얻어 본인의 경력을 이어갈 수 있으며 현지에 남아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win-win 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상적으로 돌아가진 않는다. 위에서 얘기한 조직 문화와 실적주의 등이 엮이다 보면,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고 가해가자 된다. 한국 사회는 경쟁적이며 빠르게 돌아간다. 본사에서의 빠른 속도와 실적을 그대로 해외의 법인에 요구를 하게 되고, 이 부분에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본다. 나라마다 사회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사회가 돌아가는 속도가 다르다. 하지만 한국 회사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이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본국/본인의 속도를 요구한다. 이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지의 한국인들이다. 

하지만, 이 한국인들은 work-life balance를 위해, 본인과 배우자 그리고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이민을 택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한국 회사에서 무리한 요구를 계속한다면, 이는 직원들 측면에서도 지속 가능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런 문제들이 곪고 있다가 터진 것이 바로 이번 L사 사건이다. 



그럼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너무 거대담론이 될 것 같고, ‘개인 혹은 인간을 존중하는 의식이 자리잡아야 한다’와 같은 나이브한 소리만 하게 될 것 같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답은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화란(네덜란드) 한인 커뮤니티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어 질 지, 어떤 식으로 사건을 회고하고 미래를 그려나갈 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우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좀 더 들어보고, 생각을 나눠보고, 그 후에 해결책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