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글쓰기 실력을 늘릴 수 있을까?

고백한다.
나는 사실 군 입대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대학 입학 시 논술도 보지 않았다. 글쓰기가 싫어 논술이 있는 ‘정시’ 대신 ‘특차’로 입학하는 걸 택할 정도였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부터 개인 블로그에, 회사 블로그에 글을 쓰더니, 올해는 처음으로 ‘돈을 받고’ 글을 써보는 경험도 해보았다. 뭐든 관심이 가는 대상이 생기면 훅 파고드는 성격 덕분일 수도 있지만, 나도 나 자신이 언제부터 글을 쓰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어떤 계기에서 시작을 했고, 무엇이 나를 계속 글을 쓰도록 동기부여를 했을까? 그래서 잠시 뒤돌아 보았다. 크게 보면 3번의 ‘때(계기)’가 있었던 것 같다.

군대에서 편지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2000년 초반에는 군대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은 상상도 못 했고, 개인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훈련소에서부터 가족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랬다. 이 편지들이 내가 제대로 글을 써 본 첫 계기인 것 같다. 가족들과, 밖에 있는 친구들과, 다른 부대에 있는 친구들과, 심지어 외국에 유학 가 있던 친구들과도 편지를 계속 주고받았다. 주로 개인적인 내용이었다.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주고받고, 인생에 대한 고민 조금 하고, 쓸데없는 말도 자주 지껄이는, 그런 소소한 편지들이었다.

그리고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오랜 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신 후 얼마 후에 입대를 했다. 신병 시절 혼자 이불속에서 숨죽여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답답했고 뭔가 토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제대하고도 한동안 일기를 썼다. 그리고 그 습관 덕분인지 혼자 유럽과 중국 배낭여행을 다닐 때도 ‘여행 일기’를 썼고, ‘아랍의 봄’ 운동이 막 시작된 이집트를 여행할 때도 일기를 썼다. (당시 카이로 시내가 불타는 상황이어서 관광지는 문 닫고 공항에서 노숙도 했었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일기를 안 쓰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신입사원 시절 2년간 매주 발송하던 문화 주간지

신입사원 때, 연애를 안(못)하던 시절, 썸녀든, 여사친이든, 혼자든 주말마다 계속 돌아다녔다. 영화를 보고, 여행도 가고, 미술관도 갔다. 휴대폰 제조업체에 개발자로 입사를 했지만, 일이 내 성향에 맞지 않았고, 이에 회사생활이 답답했다. 또한, 대기업이라 굉장히 수직적이었고, 오전 8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9시 반 ~ 11시에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주말은 해방구였다. 한 동안 소개팅을 꽤 많이 했는데, ‘사랑’을 찾아다닌 것보다, ‘맛있는 것 같이 먹고, 같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행위라고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보고, 듣고, 생각한 걸 주말에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걸 매주 월요일 아침에 사내 지인들(우리 팀 포함해서 100여 명)에게 메일로 보냈다. 선배들과 동기로부터 듣는 칭찬과 격려가 동인이었다.

글의 내용은 주로 도서, 영화, 전시회, 공연 리뷰였다. 한 때는 일 년에 책을 70여 권까지 읽었던 적도 있었을 정도로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토해냈다. 20대 후반은 인생과 커리어에 대해 고민이 많은 시기였는데, 아빠가 참으로 보고 싶었다. 아빠와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를 대체할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은 단순히 관용 표현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책 속에서 인생의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을 다 정리했다. (* 아직도 네이버 블로그에 남아 있는데, 문제는 내가 해외에 있다 보니, 네이버 아이디, 비번을 찾을 수가 없어 관리가 불가한 상황이다)

네덜란드로 이민을 왔고 이직을 했다. 다른 차원의 고민들이 시작됐다.

이직을 하면서 전혀 다른 환경의 국가로 이민을 왔고, 이에 새로운 사람들과 조직문화에 적응하느라 고생을 좀 했다. 그 내용은 브런치(혹은 블로그)의 이전 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은 사회생활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지만, 내가 처한 환경(30대 후반의 나이에 유럽에 있는 글로벌 업체 본사에 현지 채용되어 일하는 케이스)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에 내가 겪은 내용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하고 싶었다.

이 고민들의 해결책 중 많은 부분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편향된 생각은 아닌지 되짚어보고, 결론을 내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들을 매주, 매달 겪으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반복했다. 이런 훈련들이 내가 업무를 잘 수행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지만, 글을 더 잘 쓰기 위한 훈련도 되는 것 같다.

피드백의 중요성

아버지가 투병시절 독일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나와 주고받은 편지가 있다. 그 편지의 내용은 그전에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비평이었다. 중학생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치고는 좀 특이하긴 했다. 그 당시의 나(글쓰기를 싫어하던 나)는 전혀 공감하지 못할 내용이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내가 직장인이 된 후에 우연히 다시 읽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굉장히 달랐다. 몇 장의 편지를 요약하자면 ‘초등학생은 계곡에 핀 꽃을 보고 한 줄로 설명하겠지만, 대학생 즘 되면 이를 몇 장에 걸쳐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나중에 직장생활을 하면 글쓰기가 굉장히 중요하다.’의 내용이었다.

어찌보면 그냥 단순한 편지지만, 암 투병을 하고 계신 분이 독일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와중에 중학생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만큼 꼭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 편지가 내 글에 대한 첫 ‘피드백’인 것 같기도 하다.

10대 시절 글쓰기를 그렇게 무서워했던 것과는 달리, 20대에 들어서는 자연스럽게 글을 쓰기 시작하고, 주위에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반복했다. 사실 글쓰기라는 게 내 머리 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 잘 정리한 후,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잘 보여주는 과정인데, 나는 이 ‘보여주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나는 내 생각을 토해내고 싶었다. 이런 내 성향도 글쓰기 실력이 느는데 한몫을 한 것 같다. 종종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에 ‘다음엔 이런 걸 유의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종종 내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난 후 주위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묻는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얘기가 오해없이 전달이 되는지, 불필요한 내용은 없었는지 등의 질문에 대한 피드백은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나 혼자 쓰는 일기라면 모르겠지만, 결국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읽을 글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상대방에게 그대로 오해없이 전달되었는지, 이해하기는 쉬웠는지 등에 대한 확인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무엇이 사람들을 한 회사에 오래 다니게 만들까?

2019년 5월에 ‘일하는 사람들의 컨텐츠 플랫폼’ Publy의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션 글로 발행한 글입니다. Publy에서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중단했기에, 제가 작성했던 본문(‘큐레이터의 말’)을 Publy 동의 하에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삼성전자에서 8년 동안(사실 이제 삼성전자 전체 평균 근속 기간이 10년이 넘었다고 들어서, 8년이 그리 길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 있겠네요) 일 할 수 있었던 요인을 제 경험과 고민을 토대로 풀어내봤습니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었던 비결

나는 첫 직장인 삼성전자에서 8년이나 일했다. 만 8년을 채우고 퇴사하는 날, 시원섭섭했던 그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재밌게도 입사 시 목표는 3년을 채우고 장기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떻게 8년을 일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인생과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바로 배움과 성장이다. 이 부분을 회사가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S/W 엔지니어로 입사 후 3년 간 개발팀에서 일했고, 이후 상품기획 업무 3년, 그리고 해외영업 부서에서 2년 동안 일하며 여러 직무를 경험했다.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성격이었지만, 단순히 계속 ‘다른 일’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사용자와 회사(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개발팀에서 S/W의 일부분을 개발하는 일보다는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의 더 영향력이 커보였고, 실제 고객(스마트폰/태블릿을 구매하는 통신사나 리테일 업체)과의 접점에 있는 해외영업 업무가 더 임팩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쿠팡으로 이직을 결심한 계기 중 하나도 내 제품의 실제 사용자를 더 가까이에서 분석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오해는 마시길. 지금 돌이켜보면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업무는 없었고, 오히려 개발자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운이 좋았는지,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일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여러 직무를 거치면서 나에게 맞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고, 업무 능력도 많이 성장했다. 

스스로 차근차근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회사의 인사 시스템이 이를 지원해주지 않았거나, 보수적인 문화가 가득한 조직이었다면 조직 이동은 힘들었을 것이다. 회사에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 경험을 역으로 생각해 봤다. 회사가 좋은 직원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직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파악한 후, 직원들이 가장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조직과 일을 찾아주는 게 아닐까 한다. 진부하고 나이브한 생각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리소스’를 관리하는 게 아닌 ‘사람’을 관리한다고 생각한다면, 어찌보면 당연한 생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회사의 가치와 문화는 왜 중요한가

이 경험을 역으로 생각해 봤다. 회사가 좋은 직원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UC버클리와 스탠포드 비즈니스스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직원들이 회사에 잘 적응하고 근속할 수 있게 하는 두 가지 요인은 1)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 2) 조직문화와 얼마나 공명할 수 있는지였다고 한다. 

이를 회사(혹은 미래의 창업자)와 직원(혹은 구직자) 입장에서 각각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내가 스타트업의 CEO인데 우리 회사에 직원을 끌어오고, 열심히 일하게 하고, 오랫동안 같이 일 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원들의 입맛에 맞추기보다는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내가 이루고자 했던 일, 풀고자 하는 문제와 지향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잘 뽑는게 최선일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본다면 대표가 없어도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할 것이다. 이를 통해 목표하던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직원의 이탈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직이나 구직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이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가 나와 같은지, 이 회사의 업무 문화가 나와 맞는지 등을 면밀히 알아보고 지원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복지와 보상도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매일 ⅓ 이상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야 하는데 가치와 문화적인 핏이 맞지 않는 조직에서 일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의 경우 네덜란드에 있는 Booking.com으로의 이직을 긍정적으로 고려했던 이유는몇 가지가 있다. 우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동료들과 좌충우돌 영어로 업무를 하는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좀 더 성숙한 제품관리 조직에서 많이 배우고 싶었으며, 한국보다 훨씬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두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승진과 연봉도 중요하지만 가족, 특히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 배움과 성장, 그리고 자율이라는 내가 지향하는 가치·문화와 회사가 어느 정도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해 본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직과 이민을 결정할 수 있었다. 

나를 잘 안다는 것

회사나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가 내가 지향하는 바와 같은 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30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어느 해 연말, 혼자 회고의 시간을 가지면서 종이 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언제 행복한지 등을 써내려가면서 알게된 것이었다.

그 전까지는 스스로를 ‘호기심은 많지만 끈기가 부족하고, 자주 관심사를 바꾸는 사람’으로 파악했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깨닫고 나서는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됐다. 설령 새로운 직장·조직에서 생각보다 성과가 안 난다 하더라도 매달 혹은 매분기 나를 되돌아보면 나는 항상 ‘나아져 있었다’. 그리고 계속 나아지다 보면 예전과 같이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건 조직도 나를 믿어주고 기다려주었기 때문이다. 빠른 시간 안에 숫자로 보이는 성과를 요구하는 조직이었다면 훨씬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직원의 적응과 성장을 기다려주는 것 역시 회사나 조직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문화다. 

창업도 해 본 적 없고, 큰 조직을 이끌어 본 적도 없다.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다만 내가 확실히 아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어하고, 어떤 업무 문화를 좋아하는가’이다. 

이걸 알면 내가 어떤 회사에 가면 더 즐겁고 열정적으로 일 할 수 있을 지 알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창업을 한다면 어떤 조직문화의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바로 알기 위해 노력하고, 회사도 지향하는 가치를 확실히 하고, 더 나아가 회사가 조직원 개개인의 가치를 바로 알아준다면, 직원도 회사도 윈-윈 하고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나라, 같은 고민

얼마 전에 KSAN(네덜란드 한국 학생회) 주최로 네덜란드에 있는 한국인 학생들에게 IT 업계의 업무 문화와 환경, 내가 하는 일, 그리고 머신러닝 등의 기술이 실무에서 어떻게 활용되는 지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기술보다는 ‘진로’에 초점을 맞춘 행사로, 나를 포함한 4명의 연사가 돌아가면서 본인들 분야 관련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마지막에 4명의 패널이 앞에 나와 질문/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2시간 정도로 짧은 행사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3시간이 훌쩍 넘을 정도로 길었고, 특히나 학생들의 질문들이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많아서 시간이 꽤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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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행사 홍보 문구(많이 과장 되어 있다)
델프트 공대에서 열린 행사 모습(YTN 취재 기사 중)

생각보다 간절하게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하는 친구들을 보고, ‘사회’에 대한 동경과 함께 두려움이 가득했던 12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특히 해외에는 대규모로 신입사원을 뽑는 ‘공채’도 없고, 아시아인으로서 minority이기 때문에, 더 진로 고민이 ‘구체화’ 될 수 밖에 없다. ‘회사’만 들어가면 되는 게 아니고 ‘어떤 일’을 하느냐에 대한 고민도 미리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남학생의 경우는 ‘군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기에, 군대를 다녀온 후 다시 해외로 나와 학업이나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민을 많이 했을 수록, 네덜란드라는 나라(혹은 해외)에서 일하고 살고 싶은 생각이 강할수록, 진로에 대한 고민은 더 간절해 질 수 밖에 없다.

질문을 나에게 돌려봤다. 나는 왜 여기 나와 있을까? 한국에서 나름 직장생활 잘 하고 있었고, 거쳐온 회사들에서 능력/성과도 인정 받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계속 달고 살았다. 직장에서 ‘성공’을 하기 위해선 내 시간을 헌신해야 하는 문화. 허나 회사를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했던 아버지 세대와 같이 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내가 삼성전자라는 껍데기를 벗으면 내 가치는 얼마 짜리일까?’와 같은 고민을 달고 살았다. 그러던 중 네덜란드에 있는 회사로 취업을 성공하여 이직과 함께 이민을 하게 되었다. 네덜란드라는 곳의 흔히 말하는 워라벨(Work life balance)는 확실히 보장되고, 미세먼지도 거의 없었다. ‘아이가 행복한 나라 세계 1위’.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부러워할 가능성이 높은 환경이다.

하지만 이민 후 1년 반이 지난 지금 내 고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 얼마나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가슴에 품고 있다. 내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은 편이긴 하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내 한 몸(이젠 내 한 가족) 챙길 사람은 나 뿐이다’ 마음가짐으로 18년을 살아왔다. 독기까진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살아왔고, 꾸준히 자기계발을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고, 직장문화가 인간적인 네덜란드에 와서도 나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 계속되는 긴장감은 젊을 때는 자기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내 진로 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챙겨야 하는 현재 상황에서는 오히려 일찍 지쳐버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왜 계속 긴장을 놓지 않고 있을까?

첫번째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유전적으로 폐가 안 좋을 가능성이 높은데, 미세먼지가 많은 환경에서 내가, 그리고 내 (유전자를 받은) 아들이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는 정말로 ‘살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심리적인 배수진을 치고 있다.

두번째 이유 — 아마도 가장 큰 이유 — 는 아마도 나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계속 minority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는 굉장히 international한 회사다. 실무자급(나는 Tech 부서에 있다)에서는 어림잡아 20~30% 정도만이 네덜란드인 정도로 보인다. 허나 Director급(부장, 이사 급) 이상을 보면 네덜란드인 비중이 상당히 높다. 훨씬 더 로컬한 회사인 경우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하지 않을까 한다. 어떻게 보면 외지인으로서 ‘유리천장’을 좀 일찍 확인한 것 같다.  사실 아직 승진 프로세스를 진행해 본 적도 없고, 평가가 나쁘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이직 후 1년 반 동안 내 생각보다 업무 성과가 잘 보이지 않아, 자신감이 좀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에서의 생활이 재미있긴 힘들다. 나는 여지껏 거쳐온 두 직장에서, 일이 힘들 때는 많았어도, 항상 ‘재미있었다’. 재미가 없으면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요즘 벌써 ‘재미가 없다’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다행히도 유럽에 있는 네덜란드에서 ‘해고’는 쉽지 않다. 그러나 출근하는 게 즐겁지 않으면 삶이 즐겁지 않는 것과 같다고 본다. 아무리 야근이 없는 네덜란드라고 하지만, 하루 24시간 중 1/3은 회사에 있다. 이 시간이 즐거워야 삶이 즐거워 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무실에서의 시간이 즐거워질까? 사실 아직까지 ‘일을 잘해서 성과를 내야지!’ 외에는 답을 찾진 못했다. 이 답도 지속가능한 답은 아닌 것 같다. 20년 동안 계속 성과를 잘 내긴 쉽지 않을테니까.  그래서 결국은 ‘내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한국에 있는 직장인들도 많이들 이 생각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에 있으나, 네덜란드에 있으나, 살아남는 것에 대한 고민은 똑같고, 그 최종 종착점도 비슷해 보인다. 다만 내가 가진 장점/단점이 환경(국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이에 따라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함께 달라진다. 정답은 없다.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환경(이민 환경)을 파악하고, 이 환경에서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 후에, 나름의 해결책을 도출한 후 기회를 찾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수천 km를 날아와서 연고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다. 그런데 내 고민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삶의 ‘재미’라고 해야 할까?

한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갑질

며칠 전 네덜란드 한인회 웹사이트에 ‘L모 기업 지사장의 갑질’ 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모 한국회사 네덜란드 지사장의 한국인 현채인(주재원이 아닌 현지에 살고 있는 한인)에 대한 갑질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글 속의 지사장은 한국인 현채인들을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욕설을 하고, (지사장 본인의) 사적인 일을 시키고, 마음에 안드는 직원은 변호사와 계획을 세워 내보내는 등 욕이 저절로 나올 만큼 심한 내용이었다. 글을 읽으며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었으면 이런 곳에까지 글을 올렸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 한국에서 일하던 회사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있었다. 브라질 법인 임원이었던 그 사람은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었고, 한인 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막 대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내부 직원이 ‘인격 모독’으로 노동청에 고소를 하게 되고, 브라질에서 거의 추방 당했던 걸로 기억을 한다.

물론 위 두 가지 사례들은 ‘심한’ 케이스에 속한다. 하지만 위와 같이 막 나가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한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막 대하는 경우를 해외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본인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 의전을 한다던지, 현지인들이 다 퇴근한 후에 한국인들만 남아서 일하던지, 같은 ‘현지 채용’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 시점에서 나는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역만리 먼 곳 까지 나와서 왜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이를 아래와 같이 4가지 이유로 설명해 보았다. 4가지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복합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1. 회사 구조의 이유

한국에서 해외영업부서에서 일하며 실제로 대기업의 해외법인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 지 그리고 법인 내 상황은 어떤지 경험할 수 있었다. 회사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법인의 주재원들은 영업 실적은 기본이고, 본사가 매일 문의/요청하는 업무를 처리하는 데 바쁘다. 본사와 시차가 많이 난다면 더 힘들다. 낮에는 현지 업무하느라 바쁘고, 새벽이나 저녁에는 본사와 통화하고 미팅하느라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본사가 보내오는 숙제를 그대로 현지 직원들에게 위임하기도 힘들다. 이메일 자체가 영어로 되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한글로 메일을 보내오는 경우도 많다. 업무를 지시하거나 요청할 때 주재원이 영어나 ‘현지어’를 원활하게 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 이럴 경우 요청하는 사람도, 요청받는 사람도 힘들다. 

그래서 법인장이나 주재원은 한국인 현지채용인에게 일 시키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본사에서는 손님(주로 임원급) 의전 등 본 업무의 범위를 넘어서는 업무를 시키는 경우도 다반사인데, “내 일이 아닌데 왜 시키느냐”라며 반발할 게 뻔한 현지인에게 시키느니, 상대적으로 일 시키기 편한 한국인에게 일을 시키게 된다. 

2. 현지 기업 취업의 어려움

한인 현채인들도 한국회사가 본인들을 채용하는 이유를 안다. 본인들의 장점(한국어로 업무 가능하고,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점)을 활용하여 취직을 하고 업무를 한다. 이 점이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족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인 현채인들이 현지 기업으로 쉽게 이직을 해서 수입을 대체할 수 있다면, 한국 기업의 부당한 요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며, 한국 기업에서도 직원들의 이탈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를 덜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인들이 현지 기업으로 이직을 해서 일하는 경우를 많이 보진 못했다. 언어(현지어)의 문제가 가장 클 것이라 생각한다. 영어로 일을 할 수 있더라도 현지인들이 대부분인 회사에서 영어로 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사무실에서는 직접적인 업무 외에도 많은 정보들이 구두로 오고 간다. 이런 정보들을 접하지 못하면 업무 효율 뿐 아니라 승진 등 보상 관련 부분까지도 불이익을 보기 쉽다. 

이런 제약사항을 회사도 안다. 그래서 좀 더 쉽게 한인 현채인을 대한다고 생각한다. 

3. 조직 문화의 이유

한국 사람들의 경직된 조직문화의 중심엔 상명하복에 익숙한 군대문화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군대는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조직이며, 하급자가 상급자에 도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런 특징이 그대로 조직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본사에서 떨어진 폐쇄적인 구조의 법인/지사에서 법인장/지사장은 사무실을 군림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보다 돈이 위에 있다는 인식,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권리는 존중하지 않는 천민 자본주의가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결합하면 무서운 결과를 야기한다.  

4. 폐쇄적인 이민 사회

미국은 잘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의 한인 사회는 굉장히 작다. 2017년 외교부 자료로 약 3천명 정도의 한국인이 네덜란드에 거주한다.(영주권, 시민권자 포함) 작은 사회이다 보니, 한국 회사에서 다른 한국 회사로 이직을 할 시 ‘평판’에 민감할 수 있다. 회사의 부당한 요구에 적법하고 정당하게 대응을 하고 퇴사를 하더라도, 이전 회사의 주재원 혹은 법인장이 부정적인 평가를 퍼뜨린다면, 이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외의 한인 사회는 상당히 폐쇄적이며 입소문이 빠르게 퍼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인 현채인은 회사에 강하게 어필하지 않고, 어느 정도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이다. 

한인 현채인이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회사 측면에서는 업무 효율도 높일 수 있고, 자국민에게 일자리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직원 측면에서도 일자리를 얻어 본인의 경력을 이어갈 수 있으며 현지에 남아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win-win 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상적으로 돌아가진 않는다. 위에서 얘기한 조직 문화와 실적주의 등이 엮이다 보면,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고 가해가자 된다. 한국 사회는 경쟁적이며 빠르게 돌아간다. 본사에서의 빠른 속도와 실적을 그대로 해외의 법인에 요구를 하게 되고, 이 부분에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본다. 나라마다 사회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사회가 돌아가는 속도가 다르다. 하지만 한국 회사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이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본국/본인의 속도를 요구한다. 이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지의 한국인들이다. 

하지만, 이 한국인들은 work-life balance를 위해, 본인과 배우자 그리고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이민을 택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한국 회사에서 무리한 요구를 계속한다면, 이는 직원들 측면에서도 지속 가능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런 문제들이 곪고 있다가 터진 것이 바로 이번 L사 사건이다. 



그럼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너무 거대담론이 될 것 같고, ‘개인 혹은 인간을 존중하는 의식이 자리잡아야 한다’와 같은 나이브한 소리만 하게 될 것 같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답은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화란(네덜란드) 한인 커뮤니티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어 질 지, 어떤 식으로 사건을 회고하고 미래를 그려나갈 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우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좀 더 들어보고, 생각을 나눠보고, 그 후에 해결책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