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사람들을 한 회사에 오래 다니게 만들까?

2019년 5월에 ‘일하는 사람들의 컨텐츠 플랫폼’ Publy의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션 글로 발행한 글입니다. Publy에서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중단했기에, 제가 작성했던 본문(‘큐레이터의 말’)을 Publy 동의 하에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삼성전자에서 8년 동안(사실 이제 삼성전자 전체 평균 근속 기간이 10년이 넘었다고 들어서, 8년이 그리 길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 있겠네요) 일 할 수 있었던 요인을 제 경험과 고민을 토대로 풀어내봤습니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었던 비결

나는 첫 직장인 삼성전자에서 8년이나 일했다. 만 8년을 채우고 퇴사하는 날, 시원섭섭했던 그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재밌게도 입사 시 목표는 3년을 채우고 장기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떻게 8년을 일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인생과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바로 배움과 성장이다. 이 부분을 회사가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S/W 엔지니어로 입사 후 3년 간 개발팀에서 일했고, 이후 상품기획 업무 3년, 그리고 해외영업 부서에서 2년 동안 일하며 여러 직무를 경험했다.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성격이었지만, 단순히 계속 ‘다른 일’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사용자와 회사(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개발팀에서 S/W의 일부분을 개발하는 일보다는 제품과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의 더 영향력이 커보였고, 실제 고객(스마트폰/태블릿을 구매하는 통신사나 리테일 업체)과의 접점에 있는 해외영업 업무가 더 임팩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쿠팡으로 이직을 결심한 계기 중 하나도 내 제품의 실제 사용자를 더 가까이에서 분석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오해는 마시길. 지금 돌이켜보면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업무는 없었고, 오히려 개발자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운이 좋았는지,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일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여러 직무를 거치면서 나에게 맞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고, 업무 능력도 많이 성장했다. 

스스로 차근차근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회사의 인사 시스템이 이를 지원해주지 않았거나, 보수적인 문화가 가득한 조직이었다면 조직 이동은 힘들었을 것이다. 회사에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 경험을 역으로 생각해 봤다. 회사가 좋은 직원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직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파악한 후, 직원들이 가장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조직과 일을 찾아주는 게 아닐까 한다. 진부하고 나이브한 생각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리소스’를 관리하는 게 아닌 ‘사람’을 관리한다고 생각한다면, 어찌보면 당연한 생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회사의 가치와 문화는 왜 중요한가

이 경험을 역으로 생각해 봤다. 회사가 좋은 직원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UC버클리와 스탠포드 비즈니스스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직원들이 회사에 잘 적응하고 근속할 수 있게 하는 두 가지 요인은 1)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 2) 조직문화와 얼마나 공명할 수 있는지였다고 한다. 

이를 회사(혹은 미래의 창업자)와 직원(혹은 구직자) 입장에서 각각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내가 스타트업의 CEO인데 우리 회사에 직원을 끌어오고, 열심히 일하게 하고, 오랫동안 같이 일 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원들의 입맛에 맞추기보다는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내가 이루고자 했던 일, 풀고자 하는 문제와 지향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잘 뽑는게 최선일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본다면 대표가 없어도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할 것이다. 이를 통해 목표하던 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직원의 이탈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직이나 구직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이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가 나와 같은지, 이 회사의 업무 문화가 나와 맞는지 등을 면밀히 알아보고 지원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복지와 보상도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매일 ⅓ 이상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야 하는데 가치와 문화적인 핏이 맞지 않는 조직에서 일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의 경우 네덜란드에 있는 Booking.com으로의 이직을 긍정적으로 고려했던 이유는몇 가지가 있다. 우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동료들과 좌충우돌 영어로 업무를 하는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좀 더 성숙한 제품관리 조직에서 많이 배우고 싶었으며, 한국보다 훨씬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조직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두살배기 아이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승진과 연봉도 중요하지만 가족, 특히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 배움과 성장, 그리고 자율이라는 내가 지향하는 가치·문화와 회사가 어느 정도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공부하고 일해 본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직과 이민을 결정할 수 있었다. 

나를 잘 안다는 것

회사나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가 내가 지향하는 바와 같은 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30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어느 해 연말, 혼자 회고의 시간을 가지면서 종이 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언제 행복한지 등을 써내려가면서 알게된 것이었다.

그 전까지는 스스로를 ‘호기심은 많지만 끈기가 부족하고, 자주 관심사를 바꾸는 사람’으로 파악했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깨닫고 나서는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게 됐다. 설령 새로운 직장·조직에서 생각보다 성과가 안 난다 하더라도 매달 혹은 매분기 나를 되돌아보면 나는 항상 ‘나아져 있었다’. 그리고 계속 나아지다 보면 예전과 같이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건 조직도 나를 믿어주고 기다려주었기 때문이다. 빠른 시간 안에 숫자로 보이는 성과를 요구하는 조직이었다면 훨씬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직원의 적응과 성장을 기다려주는 것 역시 회사나 조직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문화다. 

창업도 해 본 적 없고, 큰 조직을 이끌어 본 적도 없다.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다만 내가 확실히 아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어하고, 어떤 업무 문화를 좋아하는가’이다. 

이걸 알면 내가 어떤 회사에 가면 더 즐겁고 열정적으로 일 할 수 있을 지 알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창업을 한다면 어떤 조직문화의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바로 알기 위해 노력하고, 회사도 지향하는 가치를 확실히 하고, 더 나아가 회사가 조직원 개개인의 가치를 바로 알아준다면, 직원도 회사도 윈-윈 하고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소프트 스킬, 커뮤니케이션을 여는 열쇠

2019년 4월에 ‘일하는 사람들의 컨텐츠 플랫폼’ Publy의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션 글로 발행한 글입니다. Publy에서 파이낸셜 타임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중단했기에, 제가 작성했던 본문(‘큐레이터의 말’)을 Publy 동의 하에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지난 12년의 경력 중 이직을 두 번 경험했다. 경력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두 번 모두 환경의 변화가 굉장히 컸다. 첫번째는 삼성전자에서 8년간 일하다 쿠팡으로 다른 직무로 이직한 경우였고, 두번째는 멀리 네덜란드에 있는 Booking.com 본사로의 이직이었다. 두 번 모두 초기에는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업계와 제품에 대해 공부하고, 업무에 필요한 스킬을 익히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다. 

처음에는 해당 직무를 일단 ‘수행하기 위한’ 하드 스킬 위주로 업무를 익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더 잘하기 위해서’는 소프트 스킬이 필수적이라고 느꼈다. 

삼성전자에서 스마트폰 상품기획과 해외영업 업무를 하다가 쿠팡으로 옮겨서는 ‘제품관리자(당시 쿠팡에선 Product owner라고 불렀다)’라는 타이틀로 첫 업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장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프로세스를 위주로 공부했다. 애자일 개발 방법론, 데이터 분석(SQL), 웹 서비스가 기술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을 익혔다. 

무엇보다 당장 팀이 돌아가야 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개발팀과 함께 해결방안을 구상하고, 실행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실행(신규 기능 런칭 혹은 제품 개선)한 후 다시 데이터를 확인하는 싸이클을 멈추지 않고 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런 하드 스킬이 필요했다.

그러나 업무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나자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더 큰 임팩트를 내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품관리자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바로 관련부서(stakeholder)와의 업무 조율이다. 새로운 결제 서비스를 런칭하는 과정에서 나는 주문 관련 개발팀, 고객서비스 담당부서, 회계 및 자금 부서, 대외정책팀, 법무팀, 그리고 금융사 및 결제 관련 협력업체 같은 외부업체들과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서비스를 기획하고 런칭 마케팅 계획을 세웠다. 

각자 바쁘게 돌아가는 부서에 새로운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계획한 일정 내에 작업을 모두 끝마치고 서비스를 런칭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서비스가 왜 필요한지, 누가, 어떤 부분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등을 관련 부서가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문서화해서 공유하고, 직접 만나서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특히 결제 서비스 런칭에는 보다 세심한 준비와 조율이 필요했다. 새로운 결제 서비스를 고객이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취소 및 환불 정책은 어떻게 되는지, 결제 및 취소 관련 내용은 (고객 및 상담원 각각의 입장에서) 어디에서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등의 내용을 고객 상담원이 숙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본사 사무실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고객서비스 부서에 방문해 상담원들을 직접 교육했고, 질문과 답변을 통해 상담원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기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제품팀에서 직접 상담원 교육을 하는 일은 없었던 터라 고객서비스 부서에서 좋은 피드백을 받았고, 일정 내에 서비스 런칭을 하는데도 도움이 됐다. 

한국에서 10년 간 일한 후 네덜란드에서 일하게 된 것도 큰 변화였다.

유럽에서 제품관리자로 일하면서 처음에는 우리가 이걸 왜 하는지, 왜 이것부터 해야 하는지, 이걸 하면 뭐가 좋아질지 같은 질문에 계속 답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업무 속도는 한국이 훨씬 빠르지만, 이곳은 한국보다 ‘왜’에 더 집중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명확한 가설을 내세우지 않으면 팀원들을 움직이게 하기 힘들다. 

사용성을 개선하는 경우처럼 통계 데이터로 증명하기 어려울 때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때는 조직 및 제품의 비전을 기반으로 그 당위성을 ‘스토리’로 풀어낼 필요도 있다. 동료들에게 우리가 가는 길과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 하기 위해 ‘내가 어떤 식으로 대화를 이끄는지’에 대해 동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고, 어떻게 하면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있을지 친한 동료들 및 매니저와 상의해보기도 했다. 그 덕분에 나름의 전략을 짜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잘 짜여진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미팅을 앞둔 경우, 에버노트 등에 내가 할 이야기를 미리 적어 논리의 타당성을 검토했다. 그런 다음 믿을만한 동료에게 피드백을 받아 메시지를 다듬고, 미팅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들과 사전 1:1 대화를 통해 핵심 메시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회사에서 제공한 ‘Art of Influence’라는 4일짜리 트레이닝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트레이닝을 통해 내 커뮤니케이션 타입을 파악했고, 상대방의 타입을 파악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서로 다른 타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익혔다. 이후 지금까지 실습을 계속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고,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면서 또 하나 느낀 점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문화적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것이다.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 때도 있다. 특히 네덜란드와 한국은 여러 면에서 반대편에 있다. 예를 들어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경우 네덜란드인들은 직접적(direct)으로 얘기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돌려 말하는(indirect) 편이다. 또 한국에서는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돌려서 말하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강하게 부정하는 일은 피하는 편이지만(avoid confrontation), 네덜란드인들은 상대방이 나보다 몇 직급 높은 상사더라도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당당히 말하는(confrontational) 문화다. 

애초에 이런 부분을 미리 염두에 두고 커뮤니케이션을 했다면 서로에게 잘 맞춰갈 수 있었을 테고, 불필요한 오해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내용을 배운 적이 없었다. 동료들도 이런 부분은 잘 몰랐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네덜란드인 동료의 직설적인 피드백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였고, 한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 때 한 동료가 추천해 준 The culture map이란 책을 읽고서야 상황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일례로 미팅 도중 러시아인 동료가 무안할 만큼 나에게 강하게 반론을 제기하거나, 네덜란드인 동료가 1:1 대화 중 “인용, 너에게 실망했어”라고 대화를 시작했을 때 기분이 나빴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나에게 나쁜 감정이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식이 ‘다른 것’ 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스트레스가 많이 완화됐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누가 이런 것 좀 가르쳐 줬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됐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와튼 스쿨(Wharton School)의 사울 P 스타인버그 경영학 교수(Saul P Steinberg Professor of Management)인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MBA 과정에서 소프트 스킬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어쩌면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랜트 교수에 따르면 소프트 스킬이 “가치 있을 뿐 아니라 가르칠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많이 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스킬을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스 기사 중)

여러 경로를 통해 배운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중 하나는, 우선 내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과 하는 것이다. 

동료들의 피드백을 통해 나를 알아보는 것도 좋다. 솔직하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잘 주고 받는 것도 스킬이며, 이런 스킬들은 모두 ‘배울 수 있다’. 관심을 갖고 나를 지켜본다면 내가 무엇을 잘 하고, 무엇이 필요한 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책에서 길을 찾을 수도 있고, 온/오프라인 트레이닝 등을 통해 이런 소프트 스킬들을 배울 수도 있다.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방법도 있지만 필요할 때 적절한 트레이닝을 받는 것도 성장을 위한 좋은 방법이다. 세계 유수의 경영대학원들도 현장에서 피드백을 받아 꾸준히 교과과정을 개선해 나간다. 그래야 ‘경쟁력 있는 졸업생’이라는 좋은 산출물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 수업은 LBS 경력개발센터의 피드백을 반영한 것이다. “채용 담당자들은 학생들이 자신을 너무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졸리 교수의 설명이다. “학생들이 거만하기만 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는 학생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 그 이상을 이 수업이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관계의 중요성이 커집니다. 예를 들어 이사회에 들어가면 엑셀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쌓아 나가게 되죠.”

다른 나라, 같은 고민

얼마 전에 KSAN(네덜란드 한국 학생회) 주최로 네덜란드에 있는 한국인 학생들에게 IT 업계의 업무 문화와 환경, 내가 하는 일, 그리고 머신러닝 등의 기술이 실무에서 어떻게 활용되는 지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기술보다는 ‘진로’에 초점을 맞춘 행사로, 나를 포함한 4명의 연사가 돌아가면서 본인들 분야 관련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마지막에 4명의 패널이 앞에 나와 질문/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2시간 정도로 짧은 행사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3시간이 훌쩍 넘을 정도로 길었고, 특히나 학생들의 질문들이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많아서 시간이 꽤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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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행사 홍보 문구(많이 과장 되어 있다)
델프트 공대에서 열린 행사 모습(YTN 취재 기사 중)

생각보다 간절하게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하는 친구들을 보고, ‘사회’에 대한 동경과 함께 두려움이 가득했던 12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특히 해외에는 대규모로 신입사원을 뽑는 ‘공채’도 없고, 아시아인으로서 minority이기 때문에, 더 진로 고민이 ‘구체화’ 될 수 밖에 없다. ‘회사’만 들어가면 되는 게 아니고 ‘어떤 일’을 하느냐에 대한 고민도 미리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남학생의 경우는 ‘군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기에, 군대를 다녀온 후 다시 해외로 나와 학업이나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민을 많이 했을 수록, 네덜란드라는 나라(혹은 해외)에서 일하고 살고 싶은 생각이 강할수록, 진로에 대한 고민은 더 간절해 질 수 밖에 없다.

질문을 나에게 돌려봤다. 나는 왜 여기 나와 있을까? 한국에서 나름 직장생활 잘 하고 있었고, 거쳐온 회사들에서 능력/성과도 인정 받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계속 달고 살았다. 직장에서 ‘성공’을 하기 위해선 내 시간을 헌신해야 하는 문화. 허나 회사를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했던 아버지 세대와 같이 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내가 삼성전자라는 껍데기를 벗으면 내 가치는 얼마 짜리일까?’와 같은 고민을 달고 살았다. 그러던 중 네덜란드에 있는 회사로 취업을 성공하여 이직과 함께 이민을 하게 되었다. 네덜란드라는 곳의 흔히 말하는 워라벨(Work life balance)는 확실히 보장되고, 미세먼지도 거의 없었다. ‘아이가 행복한 나라 세계 1위’.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부러워할 가능성이 높은 환경이다.

하지만 이민 후 1년 반이 지난 지금 내 고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 얼마나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가슴에 품고 있다. 내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은 편이긴 하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내 한 몸(이젠 내 한 가족) 챙길 사람은 나 뿐이다’ 마음가짐으로 18년을 살아왔다. 독기까진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살아왔고, 꾸준히 자기계발을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고, 직장문화가 인간적인 네덜란드에 와서도 나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 계속되는 긴장감은 젊을 때는 자기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내 진로 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챙겨야 하는 현재 상황에서는 오히려 일찍 지쳐버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왜 계속 긴장을 놓지 않고 있을까?

첫번째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유전적으로 폐가 안 좋을 가능성이 높은데, 미세먼지가 많은 환경에서 내가, 그리고 내 (유전자를 받은) 아들이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는 정말로 ‘살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심리적인 배수진을 치고 있다.

두번째 이유 — 아마도 가장 큰 이유 — 는 아마도 나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계속 minority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는 굉장히 international한 회사다. 실무자급(나는 Tech 부서에 있다)에서는 어림잡아 20~30% 정도만이 네덜란드인 정도로 보인다. 허나 Director급(부장, 이사 급) 이상을 보면 네덜란드인 비중이 상당히 높다. 훨씬 더 로컬한 회사인 경우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하지 않을까 한다. 어떻게 보면 외지인으로서 ‘유리천장’을 좀 일찍 확인한 것 같다.  사실 아직 승진 프로세스를 진행해 본 적도 없고, 평가가 나쁘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이직 후 1년 반 동안 내 생각보다 업무 성과가 잘 보이지 않아, 자신감이 좀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에서의 생활이 재미있긴 힘들다. 나는 여지껏 거쳐온 두 직장에서, 일이 힘들 때는 많았어도, 항상 ‘재미있었다’. 재미가 없으면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요즘 벌써 ‘재미가 없다’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다행히도 유럽에 있는 네덜란드에서 ‘해고’는 쉽지 않다. 그러나 출근하는 게 즐겁지 않으면 삶이 즐겁지 않는 것과 같다고 본다. 아무리 야근이 없는 네덜란드라고 하지만, 하루 24시간 중 1/3은 회사에 있다. 이 시간이 즐거워야 삶이 즐거워 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사무실에서의 시간이 즐거워질까? 사실 아직까지 ‘일을 잘해서 성과를 내야지!’ 외에는 답을 찾진 못했다. 이 답도 지속가능한 답은 아닌 것 같다. 20년 동안 계속 성과를 잘 내긴 쉽지 않을테니까.  그래서 결국은 ‘내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한국에 있는 직장인들도 많이들 이 생각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에 있으나, 네덜란드에 있으나, 살아남는 것에 대한 고민은 똑같고, 그 최종 종착점도 비슷해 보인다. 다만 내가 가진 장점/단점이 환경(국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이에 따라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함께 달라진다. 정답은 없다.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환경(이민 환경)을 파악하고, 이 환경에서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 후에, 나름의 해결책을 도출한 후 기회를 찾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수천 km를 날아와서 연고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다. 그런데 내 고민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삶의 ‘재미’라고 해야 할까?

한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갑질

며칠 전 네덜란드 한인회 웹사이트에 ‘L모 기업 지사장의 갑질’ 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모 한국회사 네덜란드 지사장의 한국인 현채인(주재원이 아닌 현지에 살고 있는 한인)에 대한 갑질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글 속의 지사장은 한국인 현채인들을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욕설을 하고, (지사장 본인의) 사적인 일을 시키고, 마음에 안드는 직원은 변호사와 계획을 세워 내보내는 등 욕이 저절로 나올 만큼 심한 내용이었다. 글을 읽으며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었으면 이런 곳에까지 글을 올렸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 한국에서 일하던 회사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있었다. 브라질 법인 임원이었던 그 사람은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었고, 한인 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막 대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내부 직원이 ‘인격 모독’으로 노동청에 고소를 하게 되고, 브라질에서 거의 추방 당했던 걸로 기억을 한다.

물론 위 두 가지 사례들은 ‘심한’ 케이스에 속한다. 하지만 위와 같이 막 나가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한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막 대하는 경우를 해외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본인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 의전을 한다던지, 현지인들이 다 퇴근한 후에 한국인들만 남아서 일하던지, 같은 ‘현지 채용’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 시점에서 나는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그럴까? 이역만리 먼 곳 까지 나와서 왜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이를 아래와 같이 4가지 이유로 설명해 보았다. 4가지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복합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1. 회사 구조의 이유

한국에서 해외영업부서에서 일하며 실제로 대기업의 해외법인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 지 그리고 법인 내 상황은 어떤지 경험할 수 있었다. 회사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법인의 주재원들은 영업 실적은 기본이고, 본사가 매일 문의/요청하는 업무를 처리하는 데 바쁘다. 본사와 시차가 많이 난다면 더 힘들다. 낮에는 현지 업무하느라 바쁘고, 새벽이나 저녁에는 본사와 통화하고 미팅하느라 바쁘다. 이런 상황에서 본사가 보내오는 숙제를 그대로 현지 직원들에게 위임하기도 힘들다. 이메일 자체가 영어로 되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한글로 메일을 보내오는 경우도 많다. 업무를 지시하거나 요청할 때 주재원이 영어나 ‘현지어’를 원활하게 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 이럴 경우 요청하는 사람도, 요청받는 사람도 힘들다. 

그래서 법인장이나 주재원은 한국인 현지채용인에게 일 시키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본사에서는 손님(주로 임원급) 의전 등 본 업무의 범위를 넘어서는 업무를 시키는 경우도 다반사인데, “내 일이 아닌데 왜 시키느냐”라며 반발할 게 뻔한 현지인에게 시키느니, 상대적으로 일 시키기 편한 한국인에게 일을 시키게 된다. 

2. 현지 기업 취업의 어려움

한인 현채인들도 한국회사가 본인들을 채용하는 이유를 안다. 본인들의 장점(한국어로 업무 가능하고,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점)을 활용하여 취직을 하고 업무를 한다. 이 점이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족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인 현채인들이 현지 기업으로 쉽게 이직을 해서 수입을 대체할 수 있다면, 한국 기업의 부당한 요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며, 한국 기업에서도 직원들의 이탈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를 덜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인들이 현지 기업으로 이직을 해서 일하는 경우를 많이 보진 못했다. 언어(현지어)의 문제가 가장 클 것이라 생각한다. 영어로 일을 할 수 있더라도 현지인들이 대부분인 회사에서 영어로 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사무실에서는 직접적인 업무 외에도 많은 정보들이 구두로 오고 간다. 이런 정보들을 접하지 못하면 업무 효율 뿐 아니라 승진 등 보상 관련 부분까지도 불이익을 보기 쉽다. 

이런 제약사항을 회사도 안다. 그래서 좀 더 쉽게 한인 현채인을 대한다고 생각한다. 

3. 조직 문화의 이유

한국 사람들의 경직된 조직문화의 중심엔 상명하복에 익숙한 군대문화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군대는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조직이며, 하급자가 상급자에 도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런 특징이 그대로 조직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본사에서 떨어진 폐쇄적인 구조의 법인/지사에서 법인장/지사장은 사무실을 군림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보다 돈이 위에 있다는 인식,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권리는 존중하지 않는 천민 자본주의가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결합하면 무서운 결과를 야기한다.  

4. 폐쇄적인 이민 사회

미국은 잘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의 한인 사회는 굉장히 작다. 2017년 외교부 자료로 약 3천명 정도의 한국인이 네덜란드에 거주한다.(영주권, 시민권자 포함) 작은 사회이다 보니, 한국 회사에서 다른 한국 회사로 이직을 할 시 ‘평판’에 민감할 수 있다. 회사의 부당한 요구에 적법하고 정당하게 대응을 하고 퇴사를 하더라도, 이전 회사의 주재원 혹은 법인장이 부정적인 평가를 퍼뜨린다면, 이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외의 한인 사회는 상당히 폐쇄적이며 입소문이 빠르게 퍼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인 현채인은 회사에 강하게 어필하지 않고, 어느 정도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이다. 

한인 현채인이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회사 측면에서는 업무 효율도 높일 수 있고, 자국민에게 일자리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직원 측면에서도 일자리를 얻어 본인의 경력을 이어갈 수 있으며 현지에 남아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win-win 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상적으로 돌아가진 않는다. 위에서 얘기한 조직 문화와 실적주의 등이 엮이다 보면,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고 가해가자 된다. 한국 사회는 경쟁적이며 빠르게 돌아간다. 본사에서의 빠른 속도와 실적을 그대로 해외의 법인에 요구를 하게 되고, 이 부분에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본다. 나라마다 사회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사회가 돌아가는 속도가 다르다. 하지만 한국 회사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이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본국/본인의 속도를 요구한다. 이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현지의 한국인들이다. 

하지만, 이 한국인들은 work-life balance를 위해, 본인과 배우자 그리고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이민을 택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한국 회사에서 무리한 요구를 계속한다면, 이는 직원들 측면에서도 지속 가능하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런 문제들이 곪고 있다가 터진 것이 바로 이번 L사 사건이다. 



그럼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너무 거대담론이 될 것 같고, ‘개인 혹은 인간을 존중하는 의식이 자리잡아야 한다’와 같은 나이브한 소리만 하게 될 것 같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답은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화란(네덜란드) 한인 커뮤니티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어 질 지, 어떤 식으로 사건을 회고하고 미래를 그려나갈 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우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좀 더 들어보고, 생각을 나눠보고, 그 후에 해결책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나는 어떻게 해외취업을 했는가?

네덜란드에 있는 Booking.com에서 Product manager로 일하게 된 지 이제 벌써 1년 반이 되었다. 2017년 봄, 이민/이직을 결정하고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는 동안, 그리고 여기 와서 일하는 동안에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취업하셨어요?”였다. 나는 한국에서 공부했고, 한국에서만 일했고, 취업 당시 한국에 있었다. 아마 이 글을 읽게 될 많은 분들도 같은 상황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뒤돌아보니까 나는 네덜란드에서 살고 일하는 얘기만 했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얘기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 글은 절대 “이렇게 하면 해외취업 할 수 있다”가 아니다. 단 1회 뿐인 해외 이직 경험을 가지고 일반화된 글을 쓰고 싶진 않다. 위에서 얘기했지만 이 글의 목적은 내 경험과 생각을 공유함에 있다. 이 글을 해외취업을 위한 왕도보다는, 한 사람(글쓴이)이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식으로 준비를 했는지를 참고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준비가 막연한 사람을 위한 팁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해외에서 외국인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은 Tech 업계에 있다. 이 점도 참고해서 읽었으면 좋겠다.

긴 글 읽을 시간 없는 분을 위해 본문 내용을 아래와 같이 요약해 보았다.

1. LinkedIn 프로필을 글로벌 기준에 맞게 업데이트 해라 : HR / 헤드헌터 레이더망에 들어가기 위해선 LinkedIn에 이력서를 지속 업데이트 해놔야 하며, 당연히 영어로 적어야 하고, 글로벌 기준에 맞는 직무명으로 적어놔야 한다.

2. 면접 전 사전조사는 필수다 : 면접 전에 해당 회사의 업무 문화, 현재 상황 등을 자세히 알아보고, Glassdoor 등을 통해 면접을 어떤 식으로 보는 지, 주로 어떤 질문을 하는지 최대한 알아봐라.

3. 미리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머리 속에 정리해 놓아라 : 면접 전에 예상 질문을 최대한 많이 생각해보고 답변을 어떻게 할 지 최소한 키워드라도 적어놓고 숙지했다.

4. 질문에는 간결하게 대답해라 : 면접 중 질문에 대해서는 두괄식 + 짧은 문장으로 답변했다. 영어에 진짜 자신있지 않은 경우 말이 꼬이기 마련이다.

5. 열정을 보여라 : 회사에서 요구했던 것보다 더 많이 준비를 해갔고, 이를 당당히 알렸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서 하나씩 설명해 보겠다.


LinkedIn 프로필 업데이트

HR / 헤드헌터 레이더망에 들어가기 위해선 LinkedIn에 이력서를 지속 업데이트 해놔야 하며, 당연히 영어로 적어야 하고, 글로벌 기준에 맞는 직무명으로 적어놔야 한다.

아래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나는 LinkedIn을 통해 네덜란드에 있는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이에 Booking.com(이하 ‘회사’라고 하겠다)과 면접을 진행하게 되었다. 채용 담당자와 통화하기 전에 헤드헌터와 먼저 통화를 해서 양쪽(회사와 나)이 서로 궁합이 잘 맞을 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내가 회사의 문화와 잘 맞을 지, 내 경력이 그쪽에서 찾는 역할과 맞을 지, 네덜란드로 이주할 용의가 있는지, 회사에서 맞춰 줄 수 있는 연봉 범위가 내 기준과 맞을 지 등) 구체적인 내용을 떠나 전화통화 처음에 내가 한 질문은 “어떻게 나를 알고 연락하게 되었나?”였다. 이에 대한 헤드헌터의 답은 간단했다. 회사에서 찾고 있는 직무가 Senior Product Owner 였는데, 당시 내 LinkedIn 프로필에 등록된 쿠팡에서의 직무/직급이 Senior Product Owner였기 때문이다. 즉, 검색어와 내 직무가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례를 보자면, 최근 회사에서 기존 다년간 Product owner라고 써오던 직무를 Product manager로 공식적으로 변경하였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 하나가 ‘Product manager’가 좀 더 업계 standard에 가깝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Product owner와 Product manager의 업무는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허나 당장 Glassdoor에서 이 두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Product manager” 키워드의 검색결과가 훨씬 많다.

Glassdoor에서 미국 내 Product owner, Product manager Job 검색 결과 (19년 1월 기준)

위 두 가지 사례를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업계 표준에 가까운 직무명으로 프로필을 업데이트 하는 게 좋다’ 였다. 특히, 한국에서 해외로 취업을 하고자 하는 경우, 한국어로 쓰던 직무명을 그냥 영어로 번역하면 어색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부분을 대충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해외 취업을 위한 첫째 단계가 바로 우선 HR 혹은 헤드헌터의 ‘눈에 띄는’ 것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생각해 보자. 나는 쿠팡 전에 삼성전자에 있으면서 ‘상품기획’ 업무를 한 적이 있다. 한국 사람에게 상품기획(자)라고 얘기하면 대부분은 알아 들을 것이다. 허나 ‘상품 기획자’를 영어로 Product planner라고 직역해서 Glassdoor에서 검색해보면 극소수의 검색 결과만 나온다. 그렇다면 미국에는 ‘상품 기획’을 하는 사람이 없을까? 스스로 생각해 보기 바란다.  (아래 참고)

그럼 어떻게 하면 업계 표준에 가까운 직무명을 찾아볼 수 있을까? 바로 LinkedIn을 활용하면 된다. 나와 같은 업계의 회사명으로 검색해서, 비슷해 보이는 직무를 가진 사람을 찾아보고, 그 사람의 프로필을 읽어봐서 내가 하는 일이랑 비슷하면 우선 1차 기준 통과다. 그 다음 단계로는 그 사람의 직무명(예, Product manager)으로 다시 한 번 LinkedIn 검색을 해서 여러 사람을 찾아보고, 검색 결과가 많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업무가 내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면 그 직무명을 내 프로필에 당당히 올리면 된다. (직무명 말고도 업무 상세내용도 다른 사람들 것을 참고해서 쓰면 훨씬 수월하다. 물론, 그냥 copy하면 안된다.)

또 하나, 내가 회사에서 ‘과장’이라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Manager’라고 올리진 말자. 한국에서는 ‘과장’, ‘차장’ 등의 직급이 중요해 보일 수 있지만, 해외에서는 내가 한 일, 내가 맡은 책임의 크기 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Manager 외에 내 직무도 꼭 함께 적어야 한다. LinkedIn 잠시만 돌아다녀도 좋은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LinkedIn 프로필을 한국어로 적는 경우도 봤는데, 한국 내 한국 기업으로 이직하려는 경우가 아니면 당연히 영어로 프로필을 업데이트 해야겠다.

면접 전 철저한 사전조사는 필수 

면접 전에 해당 회사의 업무 문화, 현재 상황 등을 자세히 알아보고, Glassdoor 등을 통해 면접을 어떤 식으로 보는 지, 주로 어떤 질문을 하는지 최대한 알아봐라.

현재 회사 면접 프로세스 진행 전에 Glassdoor나 Google, Youtube 등에서 ‘Booking.com interview question’ 등의 키워드로 검색을 많이 해봤다. 이직 경험이 딱 한 번 있었기 때문에, 면접이 익숙하진 않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한국에서만 10년 넘게 일하다가 해외 업체와의 면접을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화/프로세스/언어 적으로 모르는 게 많았다. 그래서 검색을 많이 했고, 내용을 정리하고, 예상 질문 리스트도 뽑아서, 모든 예상 질문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놓았다.

회사의 크기에 따라 검색 결과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이런 경우에 놓인다면 다음과 같이 했을 것이다.

1. LinkedIn에서 해당 업체명으로 검색을 해보고, 나와 connection이 있을만한 사람(학교, 국가 등)을 찾아 연락해 본다. 실제 이전 직장인 쿠팡에 입사할 때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던 것이, 당시 쿠팡에 다니던 지인(친하진 않았지만 안면은 있던 직장 동료)의 팁이었다. “케이스 면접을 봐”(컨설팅 업계에서 주로 쓰는 방식)라는 짧은 한 마디를 듣고, 케이스 면접 책을 구입해서 주말 내내 읽고 생각하고 정리하면서 준비를 했었고, 실제 면접 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보가 하나라도 더 있으면 플러스다.

2. HR에 당당하게 회사 자료를 요구한다. 회사도 나를 평가하지만, 나도 회사를 살펴보고 입사를 결정해야 한다. 해외 취업이라고 아무데나 가려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HR에 해당 회사의 문화, 업무 프로세스, 추구하는 바 등을 구체적으로 물어볼 것이다. 보통 실무자와 면접 전에 HR과 1차 면접이 있을테니, 회사의 외적인 자료는 회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알아보되, 내부의 문화나 업무 방식 등에 대한 부분은 HR과의 전화 통화 시 구체적으로 물어볼 것이다.

면접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 정리/숙지

면접 전에 예상 질문을 최대한 많이 생각해보고 답변을 어떻게 할 지 최소한 키워드라도 적어놓고 숙지했다.

면접 예상질문을 최대한 많이 적어보고, 모든 질문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답을 적어봤다. 그리고 반쯤 암기하듯이 숙지했다. 예상질문은 아래와 같은 경로를 통해 뽑아봤다.

1. Glassdoor 검색 (위 참고)

2. 직무명으로 검색 (예, product manager interview question)

3. 일반적으로 물어보는 면접 질문 리스트업 (왜 지원했니, 장/단점, 5년 후에 뭐하고 있을 것 같아? 등)

해외 취업의 경우, 최종 면접 전까지는 화상 혹은 전화로 면접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목소리 외의 방법(예, 바디 랭귀지, 시각적인 도움 등)으로 맥락을 전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높으므로, 무조건 내 생각을 또박또박 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미리 생각을 정리해 두었다.

질문에는 짧고 명료하게 대답해라

면접 중 질문에 대해서는 두괄식, 그리고 짧은 문장으로 간결하게 답변했다. 영어에 진짜 자신있지 않은 경우 말이 꼬이기 마련이다.

영어를 못하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쿠팡에서 종종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바로 영어 문장을 길게 끌게 되면 말이 꼬이게 되고, 말이 꼬이게 되면 내 생각도 꼬이게 되어서, 요점이 잘 드러나지 않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질문에는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답변하려 노력했다. 우선 내 생각을 말하고(요점),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간결하게 얘기했다. 그 덕분인지 암스테르담에서 치른 최종 면접에서 아래와 같은 피드백을 받았었다. (피드백은 원래 따로 안주는데, 나는 면접 후 “합격하던 안하던 피드백을 달라”고 HR 담당자에게 요청했었다)

+ Structured, disciplined, yet creative.

+ Very good communication skills. Able to describe work with clarity.

+ very clear communication – to the point, understands when to explain more/less

열정을 보여라!   

회사에서 요구했던 것보다 더 많이 준비를 해갔고, 이를 당당히 알렸다.

세 차례 전화 면접을 합격하고 암스테르담에서 치를 최종 면접 관련 메일을 받았을 때, 과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특정 Business case에 대해 내 생각과 계획을 준비해서 발표하라는 것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혼자 생각을 정리한 후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를 ‘실제 업무 상황’이라 가정하고 ‘사용자 리서치’를 우선 하고, 리서치 결과를 토대로 문제점을 정리한 후, 이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 지 몇 가지 케이스를 준비해 갔다. 누구도 사용자 리서치를 하라고 하진 않았으나, 모든 문제와 기회는 고객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을 갖고, 퇴근 후에 지인들을 만나 실제 Booking.com 웹사이트/앱을 사용해보라고 하고, 어떤 불편함을 겪는 지를 관찰하고,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개선사항을 가설화했다.

사실 이번 5번은 직무 등 상황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이에 실제 리서치를 하는 등 구체적인 내용을 참고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면접관도 사람인지라, 면접자가 정말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열정을 보이면, 적어도 마이너스는 아니다. 보통은 플러스일 것이다. 실제 면접 중에 “내가 면접을 위해 직접 사용자들을 만나서 조사를 해봤고 이게 그 결과야”라고 내가 한 일을 언급했고, 면접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종면접 후 받은 피드백을 보면 아래와 같은 항목을 볼 수 있다.

+User focused – conducted mini-user test to prepare for interview

 


간절함 한 스푼 넣고 자신감을 가지고 부딪쳐봐라

위에서 길게 얘기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1. LinkedIn 프로필을 글로벌 기준에 맞게 업데이트 해라

2. 면접 전 사전조사는 필수다

3. 미리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머리 속에 정리해 놓아라

4. 질문에는 간결하게 대답해라

5. 열정을 보여라. 면접관도 사람이다

그러나 위 다섯 가지만 잘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언어에 대한 자신감 문제는 크다. 주위에 보면 해외취업을 하고는 싶으나 ‘나는 영어를 못해서….’라면서 도전을 주저하는 사람들을 본다.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영어가 장벽이라면 노력을 해서 영어 실력을 끌어올린 후 도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취업은 실력 이전에 간절함의 문제인 것 같다. 나의 경우 간절함이 컸다. 결혼 후 아기를 낳은 상황이었기에, 미세먼지가 없고 경쟁이 덜 한 곳, 개인의 삶이 존중되는 곳으로 가서 살고 싶었다. 캐나다로 가서 컬리지 졸업 후 개발자로 재취업을 하려는 계획도 추진했었고(실제 현지 실사도 가보고, 언어 시험도 보고, 학교에 지원도 했다), 미국행도 병행 추진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온 해외 취업의 기회였고, 잡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감을 가지려고 하진 않았다. “이거 아니면 안돼”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면접을 망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점을 조금 바꿨다. “좀 잘 되면 최종면접 가서 암스테르담 공짜로 관광하겠네?”가 합격 전까지 내 마인드였다. 마인드 컨트롤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만 말이다.

현재 회사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당연하겠지만) 해외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보다 똑똑하거나 일을 잘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언어의 장벽이 크게 느껴지겠지만, Tech 업계 기준에서보면 한국은 상당히 기술적으로 진보된 나라이고, 오히려 이곳이 더 후진적인 (개인 생각이다) 케이스도 종종 본다. 실력의 차이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감이 없다면 준비를 많이 하면 된다. 내가 했던 것처럼. 다른 고민은 일단 최종 합격을 한 후 해도 된다.

그러니, 간절함을 가지되, 기대치를 좀 낮추되(공짜 관광하러 간다고 생각해라!),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해보자.